무지개다리.

나의 쿠키를 보내며.

by Celine

2020년 3월 16일 월요일 오후 3시 15분 나의 쿠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습니다.

5시 장례식장으로 옮겨져 6시 화장을 시작한 후 8시 끝났습니다.

다음 날 화요일 쿠키의 회색 재는 맑고 투명하고 영롱한 작은 돌조각이 되어 7개의 병에 담겼습니다.

수요일 쿠키는 오후 4시 13분경 저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쿠키를 껴안자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쿠키의 애착인형은 쿠키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였습니다.

나에겐 생명과도 같았던 소중한 아이.


누군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셀린! 쿠키가 너의 소울메이트였었다고 말했을 때 나는 질투를 느꼈었어. 그러나 누구보다 나는 쿠키가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어"

쿠키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사람보다 내가 더 사랑했던. 그리고 믿고 서로 의지했던.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일이란 쉽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힘겨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루에도 공황이 여러 번 찾아와 움직이기가 힘듭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쿠키의 사진입니다. 이촌한강공원에서.


새벽녘 꿈을 꾸었습니다. 동네 골목길을 걷던 나는 쿠키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러나 쿠키는 나의 쿠키가 아니였습니다. 나를 바라보고는 그냥 지나치더군요.

꿈에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힘들던지 다리에 힘이 없어 택시를 타려 하였으나 그 어떤 택시도 나를 모른 체 하더군요. 5분밖에 안 되는 거리를 겨우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꿈이었습니다.



나는 쿠키와 영원히 함께하리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였을까요? 사람의 세상이 무서워 몸서리치던 쿠키를 위해서 였는지 아니면 내가 주변인들을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하려던 맘이 컸을까요? 선택은 하였으나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딸에겐 아직 쿠키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딸은 아마도 저보다 더 큰 충격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것을 저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되어 딸이 한국에 왔을 때 쿠키를 안겨주려 작은 돌로 만들었습니다. 딸이 안고 슬퍼할 쿠키가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딸이 캐나다로 돌아갈 때 쿠키를 함께 보내 주려 합니다. 쿠키는 저보다는 딸에겐 더 큰 삶의 의미이기에. 글을 쓰며 혹여나 딸이 이 글을 읽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쿠키에게 엄마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글을 써 봅니다.



사랑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나의 사랑 귀한 내딸!



이촌동에서부터 어린 쿠키에게 예방주사를 처음 놓아주시고 쿠키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여주신 서래마을 이을동물케어의 황선희 수의사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께서 흘리시던 그 눈물 잊지 않겠습니다.



저는 잠시 쉬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쿠키와의 마지막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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