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의 전설

내가 원하는 천사 -허연시집 중에서

by Celine


어떤 방의 전설

- 내가 원하는 천사/허연/문학과지성사/2018-중에서


아침마다 빨랫줄에 앉아 울고 가는 까마귀가 있었고, 마름모꼴로 생긴 방이었다. 어느 계절이었다. 세상에 나갈지 말지를 고민했다. 방에서 나오면 철제계단이 있었다. 철제계단을 감당하면 그다음 골목들과 간판들과 주택들. 이런 것들을 감당해야 했다.


번번히 포기했었다. 철제 계단 앞에서 돌아서곤 했다. 하루 종일 뒹굴던 작은 방에는 주술 같은 연속무늬가 있었다. 하나씩 세다 보면 무늬들은 엄청난 속도로 자기들끼리 만나고 헤어졌다. 그 방도 벅찼다.


새로 만들어진 것들을 피해 내가 살았다. 미래는 서툰 권력이다. 난 방을 나가지 않았다.





아침 커피를 들고 나오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시집에서 읽은 글이다. '하루 종일 뒹굴던 작은 방에는 주술 같은 연속 무늬가 있었다. 하나씩 세다 보면 무늬들은 엄청난 속도로 자기들끼리 만나고 헤어졌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의 마음은 무언가에 세게 얻어 맞은 듯 아팠다. 트라우마! 영원히 헤어질 수 없는 적과의 동침!


이 아침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숨고르기를 하여야겠다.


<사람이 모두 돌아간 후 초승달 뜬 하늘은 물과 같구나ㅡ펑즈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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