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자격

나는 요즘 이렇게 살고 있다.

by Celine


어린 시절 엄마가 떠 준 벙어리장갑은 손이 매우 시렸다. (눈을 뭉쳐 눈사람이라도 만들려면 장갑에 눈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었다.) 실제 추위가 심했는지 아니면 실의 성분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며칠 전 감자를 데리고 산책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손이 얼어버릴 것 만 같았다.(솔직히 집에만 있다 보니 바깥세상의 변함을 느끼기엔 한계가 있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다있소 매장에 들러 급히 삼천 원짜리 장갑을 끼자 금세 손에 온기가 올라왔다. 집을 향해 조금 걷다 보니 나이가 있으신 아저씨께서 가을점퍼 차림에 박스를 담은 작은 수레와 함께 햇살 아래 앉아 계셨다. 가만히 보니 신기하게도 아저씨 옆에는 회색을 띤 아주 작은 새 두 마리가 새장 속에서 무어라 수다를 떨고 있는 것 아닌가? 아무 생각 없이 감자와 길을 걷던 나는 돌아서 아저씨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아저씨에게 건네었다. "아저씨 이거 쓰던 장갑 아니고 제가 지금 막 사서 낀 장갑이에요. 이거 끼고 가세요."하고 말이다.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저씨는 자신은 장갑이 필요 없다며 급히 자리를 떠나셨다. 이때 난 이어폰을 끼고 있어 아저씨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손짓으로만 알아차릴 뿐이었다.

<8살이 된 나의 전부 감자>

집으로 돌아와 캐나다에 있는 동생과 통화를 하며 "나 아무래도 5지라퍼인가봐" "그러게 언니가 5지랖을 떨었어. 앞으로는 1지랖이나 0지랖만 떨어.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언니의 맘은 이해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행동하지 마" 그렇게 통화를 마친 후 밀려오는 공허함은 나를 공중부양시키는 느낌이었다. 가뜩이나 세상이 싫어 갇혀 사는 주제에 왜 그런 행동을 했었을까? 그저 세상이 무섭기만 하다.

올 겨울의 삶은 참 차갑다. 딸을 떠나보내고 아들은 일에 치여 7월에 얼굴을 본 후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감자와 둘이 매일매일 산책을 하고 새로운 취미인 뜨개질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쩌다 나를 불러내는 동네 친구와 하는 놀이는 이 작은 도시에 새로 생긴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이 지역에서 내가 하는 바깥 활동은 전혀 없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외로움이란 녀석이 눈덩이처럼 밀려와 나를 짓뭉개고는 가 버린다. 그럴 때 느끼는 감정은 '나는 외로울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외로울 자격? 그 감정을 느끼는데 자격이 필요하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잖아 그러니까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라고 말이다. 돌아보면 난 자존감 자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상담과 약물치료를 그토록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를 알기 위해 질문지를 만들기로 말이다. 쉽게는 내가 좋아하는 색깔은? 내가 싫어하는 행동은?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등등의 자잘하면서도 소소한 질문들을 통해 나를 들여다본다면 무언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실은 공부를 위해 떠난 딸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딸의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많다. 오늘은 어떤 명목의 돈을 더 보내달라고 할까? 아~ 이번 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지레 겁부터 먹게 된다. 그냥 안부 전화를 하는 것이 전부인데도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 무게는 나에게 매우 크게 느껴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해결해야 하며 극복하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것들이 벌어지기 일들이 생길 때마다 참 외롭다. 나는 요즘 이렇게 살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MIA_VJ8G74

<제목 화양연화/ 노래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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