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line Jan 01. 2020

새해 아침 짧은 단상.

내 마음에도 눈이 내린다. 하얗게 아주 하얗게.

새해라는 설렘을 느껴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눈을 뜨니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다. 열흘 가까운 시간 동안 어두운 블라인드로 갇혀 있던 나의 집은 오늘에서야 창을 열었다. 집을 조금 더 따듯하게 만들고 싶어 보일러 온도도 올렸다.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이다.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시고 예전과 다름없는 일상의 시작이다. 지난 연말 서울에서 보내는 동안 호텔에 있던 나의 쿠키를 어제 안는 순간 오줌을 찔끔거리며 나의 입을 무조건 마구 빨아대던 그 입이 어찌나 이쁘던지. 그런데 쿠키가 가벼워졌다. 나의 손이 닿지 않았던 그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 브런치의 글 몇 개를 읽으며 글이 다시 쓰고 싶어 졌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내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냥 그냥. 정말로.  사실 나는 새해를 맞이하고 또 한 해를 보내며 나의 마음이 어쩌고 하는 글을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오늘 아침 그들에게 한 없이 부끄러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눈을 가리는 순간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나만의 감정이 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느끼며 살아가는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명상을 하기 위해 눈을 가리고 내 안을 바라보는 작업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리고 싶다.) 그러나 눈을 가렸던 그 천 조각을 나의 몸에서 떼어내는 순간,  찬란한 빛이 망막을 통해 들어오며 그 빛에 눈이 시려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게 된다. 세상을 바라볼 시간을 눈에게 아니 망막에게 잠시 내어 준 후 다시 쏟아지는 빛을 맞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눈을 떠 바라본 세상은 환하디 환하다. 그래 나는 지금까지 쏟아지는 빛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이었구나 라는 찰나의 생각이 이 아침 나의 온몸을 휘감으며 정신이 몽롱하다.


며칠 전 김창옥 교수의 강의에서 들었다. '상처가 없는 어른은 없으며 상처가 있기에 우리는 모두 어른이라고.'

'그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안고 살아가는 가에 대한 것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상처 받은 또 다른 나를 내가 잘 보살피고 안아주고 사랑해 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숙한 어른이 해야 할 행동이라는 것을.



늘 모자라고 미성숙한 저를 제대로 된 어른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작가님들에게 새해 무난하시기를 소망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그냥 우리 하루하루 별 일없이 지내기로 해요. 사랑합니다.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


눈이 오니 어린 시절처럼 마냥 좋지만은 않다. 차의 눈을 또 어떻게 하지? 눈을 치우러 내려가기가 귀찮다. 그래도 누군가 커피 제안을 한다면 총알 같이 뛰쳐나갈 것 만 같다. 그러나 이 곳에서는 나를 불러줄 이가 있으려나?



https://www.youtube.com/watch?v=JYX9lpQWv6E&list=RDJYX9lpQWv6E&start_radio=1&t=4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7&v=QXuHyCkADTw&feature=emb_logo

드리마 모래시계 ost중 러시아 민요 백학.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의 끄적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