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2020.02.11.화요일. 이삿짐 싸기엔 적당했던 날. 봄은 오는가?

by Celine

드디어 봄이 오려는건지 2월이 되자 바람이 아직 매섭지만 햇살은 제법 따듯하다.


지난 가을 아들이 나에게 말을 했다. "엄마! 나 이제 혼자 살기 싫어요. 아무도 없는 텅빈 집에 들어오는 것도 싫고, 아플 때 혼자인 것도 싫고, 엄마가 빨리 나아져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 이제 혼자 그만 살고 싶어"

사실 당시 아들의 말을 듣고 조금 멍했었다. 아들은 나와 닮은 구석이 아주 많은 녀석이기에 혼자 있기를 매우 좋아했었다. 전공학과의 특성상 작업이 많아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와 정말 잠만 자고 다시 학교로 향해야만 했기에 누군가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불가능 했었다. (예민해 조금의 소리에도 잠들지 못하고 깨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같은 서울 하늘아래 살면서도 아들은 일찍이 독립을 시켰었다. 그런데 딸이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난 후 아들은 무언지 모르게 허전했던 모양이다. 동생은 만나기 쉽지 않은 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엄마는 휴식이 필요했기에 서울 집을 떠나 시골집으로 내려와 있었던 것이 원인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아들과 논의 끝에 결정했다. 나의 몸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함께 살기로.

짐을 싸는 동안 아들은 압축팩에 나의 옷들을 넣으며 말을 건넨다.

"엄마 어디 패션쇼가요? 아니 뭔 옷이 이렇게나 많아"

"야~~~ 나는 무언가 찾을 때 그것이 안 보이면 불안하고 짜증이나. 그러니까 얼른 다 넣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아들은 계절별로 셔츠, 바지, 점퍼, 코트 몇장씩 딱 정해져 있다. 그나마도 이번 이사를 위해 또 정리를 하였다고 말한다. 그런 아들이 여자의 옷을 보고는 입을 다 물지 못한다. 내가 사치스러운가? 잠시 후 옷들을 뒤져보니 스웨터, 코트, 그리고 반팔 몇장, 체육복 세트가 전부였다.


사람하나 장소를 옮기는데 필요한 것들이 지금 나의 차로 하나 가득이다. 조금 많은 양의 책들과 프린터, 공기청정기, 그리고 감자와 쿠키의 짐들, 엄마가 싸주신 반찬거리 몇가지. 정작 필요한 것들은 가져가지도 못했거늘.

나는 내일 이 곳을 떠난다. 일 년 동안 잘 쉬었다. 집은 다시 텅 비어 있을 것이다. 내 아이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그리고 숨이 살아 있는 곳이기에 나는 이 장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지가 않다. 그닥 좋지 않은 기억도 있긴하지만 그것보다도 내 아이들과 웃고 사랑하고 때로는 울기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문과 벽에는 딸이 세 살 적 적어 놓은 낙서가 그대로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도 지우지 않았다. 엄마 하나만 바라보던 나의 아이들.


앞으로 아들과 함께 생활 곳은 지금의 집보다 많이 작은 크기지만 그래도 넓은 집에서 혼자 덩그러니 넋이 나가 있던 그 때 보다는 아들과 함께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내가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영원히 눈감고 살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 벌써 이렇게 흘러 버렸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는 나도 모르겠다. 주어진대로 하루 별일 없이 잘 지낼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래본다. 그리고 딱 필요한 것만, 딱 생존할 수 있을 만큼만 지니고 산다는 것은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삶에 적응하게 된다면 불편이라는 것은 어느 날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환경과 지구을 위해. 아들의 말처럼 말이다.


아직도 귀에 들린다. "엄마! 패션쇼 가요?"

이런~~ 뜨끔 ㅜㅜ


지난 생일 아르바이트로 아들이 선물한 딸기사랑듬뿍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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