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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Oct 13. 2023

어쩌면 공룡이나 유니콘 같은 것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저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울컥거리는 제목이다. 무해한 사람. 내게 해가 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나본 지가 대체 언제였던가. 가족도 친구도 누구도 함부로 믿지 못하는 시대를 살며 경계심을 풀어놓고 누군가 대화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거짓이 숨어있는지 아닌지를 늘 경계하며, 다음 플랜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잔뜩 곤두선 오늘 하루를 보내고 오직 내 편인 고양이와 함께 노란 책을 집어 들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 제목만으로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야"


책의 특이한 점은 보통 단편소설집의 경우 그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의 이름 하나를 가져오기 마련이데 이 책의 제목은 그저 소설에 나온 저 대사 중 일부라는 점이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저 대사는 단편 소설 속 모든 인물의 믿음과 의지와 마음을 관통한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야. 


최근 최은영의 신작 소설이 힙한데 사실 나는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지 오래지 않았다. 전작 <쇼코의 미소>는 분명 읽은 듯했는데 최근에 제대로 새로 읽었고, 이 책이 두 번째 책이다. 읽으면서 먹먹했고, 읽고 나서는 좀 멍했다. 이런 사랑, 이런 관계 그리고 사람.


언젠가부터 관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았다. 불가근 불가원. 입사하던 어느 날 누군가 던져준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모든 이들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상처받지도 주지도 않는. 나의 감정을 쓰지도 뺏기지도 않는 거리에 있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결국 시간이 아깝다는 핑계로.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버겁다는 아저씨는 이제 관계에 서툰 사람이 되어버렸다. 다가오지 않고 다가가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선을 넘지 않는 그런 관계. 그랬다. 사실 우리는 그게 옳다고 말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최은영의 이야기는 달랐다. 그는 7개의 단편을 통해 우리가 잊거나 외면하고 살았던 관계를 아프게 되돌아보게 한다. 10대로부터 이어진 사랑, 가부장제에 갇혀버린 가족, 의지할 거라곤 둘 밖에 없는 남매,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 성소수자를 만나면서 오는 불편함, 어릴 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숙모의 나이가 되자 이해되기 시작하는 이야기 그리고 기댈 곳 없는 타국에서의 연대. 


모든 이야기를 곱씹으며 다시 내 옆의 사람들을 돌아본다. 내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오지 못하는 이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누군가 그어놓은 선을 억지로 넘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의 초초함도 함께.


문득 드는 생각. 이제 '무해한 사람'이란 공룡이나 유니콘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에게 무해한 사람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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