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 존 윌리엄스 저
(스포주의)
모든 걸 가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삶이 퍽퍽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청년 시절의 열애, 사랑스러운 아이, 안정된 직장. 바깥에서 보기에 아무런 결핍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조용히 죽어가고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스토너>도 그런 사람이 있다. 무언가 반전이 있기를 바랐던 가슴이 조용히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무미건조한 소설은 1965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대로 옛날 서점 어딘가에 묻힐 줄 알았던 소설은 오늘에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단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비슷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삶에 관심을 가지는지 생각해 보자면 스토너의 삶이 이야기로서 지나치게 조용하고 불운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유명한 학자가 되지 못했고 학생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지도 못했다. 결혼생활은 불행했고 딸과의 관계도 어긋났다. 우리는 쉽게 이러한 인물의 삶을 실패라고 말하고 그의 삶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오늘 저녁 술안주 거리로 잠깐 입에 올리는 거라면 모를까.
그런데 왠지 그의 삶은 실패와는 조금 다른 결로 남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실패라고 말하기 좀 뭐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충실했고 어떤 순간에도 감정을 내세워 타인을 해치지 않았으며 삶의 조건들이 바뀌어도 중심을 지키려 애썼다. ‘위대한 성공’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을 그는 해냈는지도 모른다.
생의 마지막,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스토너는 질문을 되뇐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이 질문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어느 정도는 잘 살아낸 것 같지만 끝내 어딘가 비어 있는 삶. 아직 다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하게 된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깊어졌던 어떤 순간들에. 아직은 생이 짧은지라 받아들이기도 악다구니를 쓰며 내게 주어진 것들을 거부하기도 한다. 뭐가 됐든 시간은 지나간다.
소설의 작가 존 윌리엄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야.. 반전은 여기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 일에 애정을 가지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온 사람. 스토너는 그저 조용히 그렇게 살아갔을 뿐인데 작가는 그것만으로도 스토너의 삶이 대부분의 사람보다 나은 삶을 산 것이라고 말한다. 그랬다. 이런 삶을 살아내기도 참 버겁고 어려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간다.
그는 불굴의 용기도, 뛰어난 재능도, 드라마틱한 전환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묵묵히 한 생을 걸어냈을 뿐이다. 이렇게만 보면 꼭 우리 아버지들의 삶 같지만 책을 읽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마치 내가 그 책 어딘가에 들어있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도 꽤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쉽게 지나치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런 생이 가장 위대한 서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나에게 질문 하나를 남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