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짱고책방

세상의 모든 승준에게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남자친구> 민지형 저

by 짱고아빠

한국에서 태어난 남자의 한 사람으로 페미니즘만큼 곤욕스러운 주제도 없다. 가능하면 이 이슈를 피해 가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서 버티고 선 페미니즘을 만날 때가 있다. 아니 사실 내가 보지 않으려 해서 그렇지 페미니즘은 예전에도 지금도 도처에 만연하다. 언젠가부터 내가 정한 태도는 `모르면 가만히 있자` 다.

사실 절대 다수의 남자들이 나와 같은 입장일 거다. 태어나 여자를 한번 때려본 적도 없고, 성추행 같은 전력에 휘말린적도 없다. 여자 후배에게 함부로 커피 심부름 한번 시킨 적 없고, 얼평몸평옷평 따윈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우리반 반장은 늘 여자였고 그 반장에게 전교회장 남친이 생겼다는 이야기에 그녀의 이름을 방구석에서 혼자 목놓아 불러본 적은 없지만 스토킹을 해본적은 없다. 그런데 내가 왜??


다행히 머리가 자라며 내가 직접 때린 적이 없어도 알게 모르게 시스템 속에서 내가 받아온 것들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는 남자란 이유로 모든 곳에서 꽤 많은 것들을 누려왔었고, 조선 사회는 백 년 전에 지나갔다지만 우리 사회는 대부분 남자에게 관대한 사회가 맞았다.


이 소설은 여기서 출발한다. 주인공 `승준`은 오래된 여자친구를 두고 4년이란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돌아온 그는 소위 `메갈`이 되어버린 전 여친을 우연히 만나고 얼렁뚱땅 또 한 번 연애를 시작한다. 책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페미니즘에 큰 관심이 없는 남자의 사고를 제법 정확하게 묘사한다. 행동은 아닐지언정 사고에서 그 사고가 나타나는 말에서 어쩔 수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그의 한남끼에 찔리는 부분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꽤 많았다.

이 밖에도 임신중단 합법화, 몰카, 데이트 폭력 등 우리 사회가 내재한 이슈들이 제법 등장한다. 특히 승준 친구의 결혼식 에피소드에서 승준의 친구들이 쉽게 던지는 농담, `애 하나 더 가질까`, `남자 쪽 부모님이 먼저`라는 식의 이야기와 `결혼 안 할 거면 연애는 왜 하느냐`는 물음은 꽤 많은 화두를 던진다. 사실 이 문제들은 여자들의 문제뿐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장기하의 노래 중 `그건 니 생각이고`란 노래가 있다. 처음에 이 노래를 부를 때 내가 화자가 되어 신났었는데. 언젠가 내가 노래의 대상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도한 맨스플레인에 `그건 니 생각이고`를 외치는 이들을 발견했을 때의 외로움. 바라기는 세상의 모든 승준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쉽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세상 반대편에 서 있는 것 같은 이들과 가까워 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어렵다는 거 나도 안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 민지형 저 / 나비클럽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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