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300여편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일본의 47토도후현(都道府県)땅을 다 밟아보고, 일본인조차도 평생가보지 못하는 곳까지 가보고 부산 촌놈이 일본와서 출세했다는 생각이든다. 어떤 취재가 젤 많았는지 자료를 정리해보니, BIG3 “농업”, “도시재생(마을만들기)”, “재래(전통)시장살리기”였다. 대한민국이 참고할수 있는 제대로된 곳을 취재하기위해 일본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긴시간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들만의 노하우로 앞서가는 곳을 다녀왔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위기가 있었다.
희생하는 리더가 있었다.
주민들이 주체였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애착이 강했다.
편가르지를 않았다.
긴시간이 걸렸다.
다음세대를 잇는 리더를 육성했다.
그 첫 스토리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일본온천 유후인(由布院). 일본의 여행유명사이트 쟈란에 따르면, 하코네온천과 쿠사츠온천을 제치고 13년 연속 “동경하고 꼭 가보고 싶은 온천” 1위를 차지했다.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재방문율은 무려 60%에 달한다. 유후인의 성공비결은 뭘까? 관광카르스마로 불리는 이 지역의 료칸3 총사다.
전후 고도성장기 전국의 관광지가 재개발되는 가운데 유후인도 개발의 물결이 번졌다. 1970년 유후인 근처에 골프장건설계획을 시작으로, 1972년 마을에 대형관광시설 건설과 1973년 사파리파크까지 줄줄이 진행될 위기에 쳐했지만, 마을사람들이 모두 반대 운동을 벌여 중단되거나 계획이 변경되었다. 그 중심에 나카야 켄타로우(亀の井別荘대표), 미조구치 쿤페이(由布院玉の湯대표), 시테 코우지(山のホテル夢想園대표) 3총사가 있었다.
당시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었고 땅을 판돈과 레져시설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것이 나겠다는 개발추진파와 유후인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환경을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개발반대파가 두패로 갈려 쉽게 일치단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3총사들은 도쿄의 히비야공원과 메이지신궁 등을 설계한 일본 최초의 임학박사, 혼다상이 유후인을 방문하여 연설한 “독일에 있는 온천지 바덴바덴처럼 숲속에 있는 듯한 마을을 만들어라”와 1971년 독일의 시골마을인 Badenweile에 있는 작은 호텔의 주인장이자 동네의원인 구라테보루상이 해준 “마을에서 중요한 것은 조용함, 녹지 그리고 공간이다. 우리들은 이 세가지를 소중히 지키며, 100년에 걸쳐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생각하고 지키며 왔다”에 영감을 얻고 태어나서 자란 유후인을 옛날 그대로의 경관을 지켜야겠다고 마음속에 다짐하고, 마을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설득시켰다고 한다.
그들은 경관보전활동에 힘을 쏟으면서, 유후인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도 만들었다. JR유후인역을 빠져나오면 바로 만나볼수 있는 마을마차, 1975년 오이타현의 중부지역 지진발생으로 유후인인 전국에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시작한 유후인음악제, 1976년 영화관도 없는 온천마을에서 시작된 유후인영화제 등 수없이 많다. 안타깝게도 51세 나이로 시테상은 세상을 떠났지만, 나카야상과 미조구치상은 유후인온천관광협회 일을 도맡아서 하고, 80대가 된 지금도 미래의 주역이될 세대의 멘토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교류는 자연스럽게 젊은세대들에게 유후인의 철학을 인식시켜줬고, 원활한 세대교차에 윤활유 같은 존재였다. 유후인은 높은 빌딩이 없다. 숙박업은 큰 자본이 경영하는 대형업체도 없고, 음식점도 대부분 개인경영이고 패밀리레스토랑 진출도 반대한다. 그들만의 철학, 유후인의 전원풍경을 사랑하고, 지역주민이 우선이고, 서로 소통을 하며 유후인을 필사적으로 지금도 지켜나가고 있다.
두번째 스토리는 일본의 전통가옥인 갓쇼우즈쿠리(合掌造り)로 유명한 기후현(岐阜 県)의 시라카와고(白川郷)다. 이 가옥은 지붕이 두손을 모은 듯 합장한 모양인데 경사도가 45도에서 60도로 가파르다. 이건 폭설에도 견딜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붕의 재료는 카야부키(茅葺, 억새와 갈대)를 사용하고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지역주민들은 이런 집구조를 활용하여 양잠업(누에를 키우기 위해서는 통풍이 좋고 넓은 실내공간이 필요)과 흑색화약의 원료가 되는 염초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명치유신(明治維新)이후, 해외로부터 화약의 원료인 초석이 수입되고 화학 섬유 등장으로 기반산업이 무너지며 위기가 찾아왔다. 19세기말 1800여채의 전통가옥이 있었지만, 20세기 중반이후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59채가 남아있다.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집을 헐거나 매각하는 사람도 늘고, 화재로 인해 타버린 곳도 있었다. 이런 위기감이 마을사람들을 자극시켰고, 1971년 주민들이 자발적 으로 시라카와고 마을자연환경을 지키는 모임을 발족하여, 3가지의 원칙을 정했다.「売らない팔지않고、貸さない빌려주지않고、壊さない부수지않기」의 주민헌장을 제정하고 마을보존운동을 추진했다. 1976년에는 국가중요전통건물 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 이로인해 예전과 거의 비슷한 인구로 회복되었고, 젊은층도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런 노력은 1995년에 꽃을 피우게되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시라카와고는 국내외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매년 150만명이상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하였다.
시라카와고는 작은공동체이지만 편가르기를 하지 않고, 주민들이 하나로 뭉쳐 결의정신 을 바탕으로 협력하면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연간 150만명이 방문하는 혜택에 안주하지 않고, 마을만들기는 진행형이다. 주민을 대상으로 한 시라카와고인간대학, 정부가 주도하는 지역부흥협력단(지역도우미 역할로 2년 활동 후, 그 지역에 정착하는 경우가 60%정도 된다고 함), 화재로부터 전통가옥을 보호하기 위한 방재시스템은 일본전역 중 최고이고, 3,40년만에 1번씩 초가 지붕교체작업도 한국의 품앗이처럼 적는 200명, 많게는 30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서 다같이 작업한다. 이 모습은 입이 떡 벌어질정도로 장관이다. 시라카와고의 도전은 끝이 없다.
세번째 스토리는 일본3대국제무역항으로 이름을 날린 후쿠오카현(福岡県)의 모지항 (門司港)이다. 1889년 개항한 모지항은 일본정부의 특별수출항구로 지정되면서 최대공업지대를 옆에두고 대륙무역의 기지가 되었다. 최고 많을때는 한달에 200척의 외국선이 입학하고, 국내하고 합치면 한해에 600만명이 드나드는 항구였다. 거리에는 무역상사 빌딩이 가득했고, 서양과 교류가 많다보니 예븐 서양식 건물도 지어지고 아인슈타인박사 부부를 비롯해 많은 유명인들이 방문하는 멋진 도시였다. 1942년 칸몬해협의 해저터널이 개통되고 항만기능이 이전되면서 미국애니메이션 Cars의 스프링스마을처럼 스쳐지나가는 도시가 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멋진 서양식 건물들도 방치되며, 철거작업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위기를 관민(官民)이 하나가 되어 역사적건물 보존활동을 계기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죽어가든 모지항에 연간 3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드웨어측면(역사적건물의 유지보수, 도로정비 등)은 정부가 맡고, 소프트웨어측면 (볼거리, 먹거리 등 관광객을 끌어 모을수 있는 것)은 지역주민들이 담당하며 역할분담 을 철저히 했다. 1995년 6단체로 시작해서, 지금은 36단체까지 늘어났다. 평일,주 말관계없이 연간 600건이 넘는 크고 작은 이벤트를 개최하여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모지항의 명물인 야키카레, 모지항맥주 등 먹거리까지 개발하여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모지항 아트마을이다. 문화가 뿌리 내리는 거리,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마을 만들기를 목표로 폐교를 개보수하여 10여명의 주민들이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도예, 목공, 조각, 유리공예, 현악기 제작 등 다양하다. 또한 상설갤러리 항구의 마티에르는 각종 전시회를 개최해 아트를 중심으로 한 모지항브랜드도 전국에 발신하고 있다. 모지항은 지자체에서 밥상을 차려주고, 그것을 가장 빛낼수 있도록 주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한 애착심에서 만들어낸 성공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한국도 지금 전국적으로 도시재생이 열풍이다. 하지만 공권력으로 밀어부치거나, 투기수단으로 옛건물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데 혈안이다.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 자원과 고유성을 고려하지 않고 국내외 좋은 사례들을 흉내만 내서 하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토머스 에디슨의 명언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처음부터 잘할순 없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전세계 도시재생의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곳을 보면 답이 보인다.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즐길수 있는 컨텐츠를 활용하고, 하드웨어부분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하고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