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임스 Oct 30. 2019

열심히 했는데요... 최대한 해봤습니다...

당신이 창업하면 만나는 사람들

열심히 했는데요... 최대한 해봤습니다...


최근 초기 창업 조직에서 팀명에 “개발"을 참 많이 사용한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로 구성된 제품개발팀, 마케팅과 그로쓰 해킹을 통해 제품을 알리고 개선하는 고객개발팀, 그리고 각종 사업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하는 사업개발팀 등이다. 특히 사업개발팀이 참 모호한데, 조직이 커지면 전략팀, 운영팀, IR팀, 제휴팀, 홍보팀, 영업팀, 신사업팀 등으로 나뉘지만 초기 조직에는 충분한 자원이 없다. 그래서 사업개발팀이라는 멋진 이름 안에서 각종 일을 다 진행하곤 한다. 나 역시 마케터 1명, 기획 1명, 전략 1명  등 최소한의 구성을 하여 사업개발팀을 신설하고 운영한 적이 있다.


우리의 제품은 B2B 대상의 소프트웨어 솔루션이었디. 어느 정도 영업망과 프로세스, 그리고 레퍼런스가 확보되자 영업팀을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성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사업과 관련된 인력은 사업개발팀으로 분리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업 성과와 영업 기회에 관한 회고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교육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영업과 마케팅의 수단으로 솔루션과 관련된 교육을 종종 무료로 진행했다. 그런데 실제로 이 교육이 유료로 바뀌더라도 관심 있는 잠재 고객이 꽤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될 것 같으면 바로 추진하는 스타일답게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 본 사업 전에 작고 빠르게 실행하여 사업성 검증해보는 것)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의 가설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사업화의 가장 먼저 필요한 “능력 있는 담당자"를 채용하기로 하였다. 수많은 면접을 진행하였는데 사업개발 직군의 그 모호함 때문에 정말 다양한 커리어를 갖고 있는 지원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세 명의 사람 중에 고민하였는데, 첫 번째는 상당히 전략적인 사고와 접근방식에 특화된 기획형 인재였다. 두 번째는 제품을 출시부터 홍보와 마케팅을 해보고 사업화에 성공해본 마케터형 인재였으며, 세 번째는 신규 조직, 신사업팀 경험을 두루 갖고 있는 영업형 인재였다. 


결국 세 번째 지원자를 채용하였고, 그는 빠르게 우리 회사에 합류하였다. 항상 기운 넘치고 신나 있는 그 직원은 나와 주변 동료 직원들에게 새로운 기운을 전파하였고, 같이 일하는 것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친구였다. 하지만 그러한 장점에 수반되는 신중하지 못한 언행과 잦은 실수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일정과 약속을 쉽게 어기는 단점도 보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세상에 누구나 장단점은 있다. 특히 창업 조직에는 장단점의 갭이 아주 큰 사람들이 많다. 대기업에는 그리 특별한 단점도 없고 모든 역량이 다 어느 정도 “괜찮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창업 조직에는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장점과 골치 아플 정도의 치명적인 단점, 둘 다를 갖고 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많이 참았다. 머스트노우 로펌의 조우성 대표 변호사가 CEO를 최고 인내 경영자(Chief Endurant officer)라고도 표현하는 것을 봤는데, 너무 격하게 공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직원의 뛰어난 장점을 인정하여 많이 참고 달래고 도와주고 때로는 심하게 혼내기도 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데드라인'이었다. 항상 서로 합의한 일의 기한을 어기는 것이었다. 퀄리티에 대한 욕심 또는 예외 사항 때문에 그러는 것 치고는 99% 항상 모든 일의 기한을 맞추지 못했다. 대체 왜 데드라인을 어기는 것인지, 그래서 어디까지 되었는지 물어보면 항상 똑같은 답변을 하였다. 


열심히 했는데요... 최대한 해봤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10번 20번이 넘어가자 나는 폭발하였고 정말 많은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사업을 하면서 데드라인은 정말 중요하다. 그것이 조직 내부의 약속이건 외부 고객사와의 약속이건 마찬가지다. 회사는 수많은 작은 일이 합쳐지고 서로 영향을 미쳐서 큰 하나의 일, 그리고 성과로 귀결된다. 그러니 하나가 멈춰버리면 다른 일들도 멈춰버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인 이상 약속을 어길 수도 있고 기한을 연기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연기'가 아니라 아무 말없이 기한이 지나도 그 일을 잡고 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 직원에게 일을 연기해도 좋으니 시간 안에 완수하지 못할 상황이 예상되면, 만 하루 전에만 나에게 미리 일의 진척사항과 얼마나 시간이 더 필요한지 말해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결과는 대동소이하였다. 나와 그 직원은 점점 서로에게 지쳐 갔고, 악순환의 굴레로 빠져들었다. 나는 누적된 경험으로 인해 그 직원을 무책임하다고 고정관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니어도 심하게 피드백을 하였다. 그러니 그 직원은 점점 더 나에게 말을 하거나 연기 요청을 하기가 어려워서 또다시 사전 통보 없이 기한을 어기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대체 왜 나에게 이러냐고, 무조건 일을 해내라는 것이 아니라 못할 것 같으면 미리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다그쳐 봤지만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열심히 했는데요... 최대한 해봤습니다...



아마 이렇게 까지 사고 치는 직원을 왜 데리고 있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장점과 단점이 너무 명확한 사람이었다. 이 직원은 OJT가 끝난 직후, 당시 우리가 새롭게 추진해보려는 사업의 첫 성과를 일주일 만에 만들어내었다. 회사 내의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면서 밤을 새워 큰 규모의 계약 건을 따낸 것이다. 그 이후에도 다른 사람이라면 망설일 만한 제안이나 제휴 건들을 과감하게 추진하여 만나기 어려운 담당자와의 미팅을 성사시켰다. 치밀한 준비와 전략적인 사고는 없었지만 행동이 빨랐던 사람인 것이다. 사실 많은 CEO들이 이러하다. 그러니 이 직원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개선되기를 기대하고 잔소리를 했던 것이다. 


또한 심각한 문제를 잘 빠져나가는 유머 또한 갖고 있었다. 한 번은 너무나 자주 까먹고 지키지 않는 일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다가 너무 답답하여 같이 옥상에 올라가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XX님 내 아이큐가 140이 넘는데, 나도 정말 모든 것을 스케쥴러에 메모하고 알람을 맞춰놔요. 너무 많은 일이 있으니 이렇게 안 하면 안 됩니다" 어렸을 적 아이큐 테스트에 한번 좋게 나온 적이 있었는데, 사실 지금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조금 충격을 받으라는 목적으로 이 말을 한 것인데, 이 친구는 “알겠습니다!”라고 또 신나게 대답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이러는 것이 아닌가? “대표님 그런데 저도 사실 아이큐가 140이 넘어요" 맙소사!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항상 이러면 역효과가 날 수 있지만, 가끔의 유머는 이렇게 상황을 쉽게 반전시킬 수도 있다. 게다가 대표에게 농담을 하는 직원을 그리 많지 않다. 항상 홀로 책임을 짊어지고, 모두가 어려워하는 위치에 있는 대표에게 이런 농담을 하는 직원은 참 반갑다.


하지만 데드라인은 정말 중요하다. 몇 번이고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프로가 아마추어와 다른 점은 제한된 시간 안에 기대만큼의 성과를 “꾸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한 결과, 예측 가능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프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직원은 아직 아마추어 실력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서 이후 입사하는 신규 직원에게는 데드라인의 중요성을 첫 입사 날 면담 때 강조했다. 나와는 데드라인만 지키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전혀 없을 것이며, 못 지킬 경우에는 반드시 만 하루 전에 연기하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몇 번이고 연기해도 되니 그 부분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 갖지 말고 커뮤니케이션만 잘하자고 당부했다.


Photo by Sonja Langford on Unsplash


그런데 실상 이를 한 번도 어기지 않은 직원은 없다. 나름의 사정과 함께 사전 공유 없이 일정을 어겼으며 항상 비슷한 식으로, 최대한 열심히 해봤는데 못했다는 답변을 하는 것이다. 물론 경력이 있는 직원들은 한두 번의 실수만 하고 그 이후에는 철저히 지켜서 문제없이 업무를 하곤 했다. 즉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차이였던 것이다. 나를 꾸준하게 힘들게 하였던, 그리고 나 역시 많이 괴롭혔던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결국 퇴사를 하였다. 그리고 이후에도 6개월이 채 안되어 이직을 두어 번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끔 생각하면 참으로 아쉬운 사람이다. 분명히 뛰어난 장점이 있음에도 단점 때문에 조직 생활에 잘 적응을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이를 관리해줄 역량이 있는 리더와 만난다면 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경험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결국 프로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필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은 말을 하는 것이 어렵지만 일정을 못 지킬 것 같으면 미리 말해서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에서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원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만들어주는 것 역시 대표의 역할이라고 본다. 내가 조금 더 다가가기 쉬운 대표이고, 무언가 쉽게 제안해볼 수 있는 대표였다면 그 직원은 그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직원에게 자주 먼저 물어보고, 의견을 들었으면 바로 행동을 취해주는 것, 이 두 가지가 대표이사가 직원의 커뮤니케이션을 쉽게 만들어주는 것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다가가지 쉬운 대표가 되자. 

    


이전 11화 달성 못하면 나가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