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와 참나 사이에서 발견한 마음의 투명성
일요일 오전, 국립세종도서관 1층 일본소설 코너. 올해 고3이 되는 딸은 각자의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손에 든 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요조의 독백은 거리를 두지 않았다. 그것은 곧장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올해 딸은 고3 수험생, 아들은 중3이다. 직장과 집, 부모님과 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역할에 맞춰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결혼과 육아, 그리고 학위와 직장. 모두 붙잡으려 했지만 동시에 어딘가에서는 조금씩 놓쳤다. 무엇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감각이 위기처럼 찾아올 때, 나는 비로소 묻기 시작했다. 지금 이 역할들을 살아내고 있는 이것이 나인가. 아니면 진짜 나는 이 모든 역할의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가.
불교는 말한다. 고정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와 조건의 흐름일 뿐이다. 이것이 무아(無我)다. 그러나 다른 전통은 말한다.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깨어 있는 어떤 중심이 있다. 그것이 바로 참나(Atman)다.
'나는 없다'와 '진정한 나는 있다.' 이 상반된 두 명제 사이에서 우리는 종종 혼란을 느낀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딱히 어떤 종교를 믿지도 않는다. 그런데 혼자 걷고 싶을 때, 혹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져서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을 때, 나는 어느새 사찰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동학사, 갑사, 마곡사, 관촉사. 대전 가까이에 그런 곳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다행스럽다.
관광하러 가는 것도, 기도하러 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걷는다. 돌계단을 오르고, 처마 끝을 바라보고, 마당 한가운데 서서 잠시 멈춘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목탁 소리, 솔향이 섞인 바람, 기와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햇살.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는 그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제대로 쉬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생각하는 나'가 더 또렷해진다. 직장에서의 나도, 아이들 앞의 아빠도, 부모님 앞의 아들도 아닌. 모든 역할이 벗겨진 자리에 남아 있는 어떤 것.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다'는 감각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아는 그 순간 처음으로 개념이 아니라 감각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이 문득 떠올랐다. 아빠 껌딱지라는 말이 딱 맞던 시절, 어디든 손을 꼭 잡고 따라오던 그 작은 손. 그 손이 언제부터 멀어졌는지 나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그래서 더 먹먹하다. 그 거리가 내 실패인지, 아이의 성장인지, 아니면 그냥 삶이 원래 그런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직장 동료들과 웃으며 이야기할 때,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릴 때, 오래된 지인과 커피를 마실 때. 나는 그 자리마다 조금씩 다른 언어를 쓰고,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짓는다. 그것을 위선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모든 관계 속에서 '나'라는 것이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나이가 들수록 더 선명하게 알아갈 뿐이다.
각 역할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무게. 그 믿음이 동시에 흔들릴 때 찾아오는 것은 공허함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헤겔의 변증법은 말한다. 충돌하는 두 생각은 오류가 아니라 더 깊은 이해로 향하는 과정이라고. 다만 그 과정에는 조건이 있다. 모순을 빠르게 해소하려는 충동을 내려놓고, 그 불편함 안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것. 사찰 마당에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해결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무아를 이해하는 그 깨어 있음, 어쩌면 그것이 바로 참나일지도 모른다. 사라진 자리에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드러나는 어떤 현존. 이 역설 속에서 우리의 인식은 조용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삶도 건축과 닮아 있다. 미스 반데어로에는 말했다. "Less is more." 군더더기를 덜어낼수록 본질이 드러난다는 그의 철학은 근대 건축의 위대한 유산이다. 판스워스 하우스의 투명한 유리 벽,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단순하고 완결된 아름다움. 그것은 비움으로써 오히려 존재의 무게를 드러내는 건축이었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을 이끈 로버트 벤츄리는 그 위대함에 기대어 다른 질문을 던졌다. "Less is a bore." 비움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고. 미스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미스가 열어놓은 지평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물은 것이다. 서로 충돌하는 요소들이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할 때, 오히려 더 풍부한 긴장과 의미가 생겨난다. 그는 이를 "Both-And", 즉 '둘 다'의 미학이라 불렀다.
어쩌면 두 거장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미스의 '덜어냄'과 벤츄리 '공존'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빠인 나, 직장에서의 나, 아들인 나, 그리고 그 어느 것도 아닌 것 같은 나. 올해는 특히 그렇다. 큰 아이가 수험생이 되는 해, 그리고 작년에 입원하신 아버지의 병세가 점점 더 안좋아지고 있다. 그래서 더 단단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그러나 단단함은 하나의 역할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역할과 모순을 동시에 품어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며, 때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순간 자아는 훨씬 넓은 공간이 된다. 모순을 제거하려 할 때 삶은 단순해지지만, 모순을 품을 때 삶은 깊어진다.
건축 이론가 콜린 로우는 현상적 투명성을 이야기했다. 물리적으로 투명하지 않아도 여러 층의 공간이 시각적으로 겹쳐 보이며 동시에 느껴지는 상태. 갑사 대웅전 처마 아래 서 있으면 그 감각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 하나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의 시간과 지금 이 순간의 바람, 그리고 내 복잡한 마음이 동시에 겹쳐진다.
도서관에서 딸을 멀리서 바라볼 때가 있다. 오전 아홉 시에 함께 들어와 오후 여섯 시에 함께 나가는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거의 말을 나누지 않는다. 그런데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다.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것, 존재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배운다. 고3이 되는 올해는 함께 도서관에 갈 날이 많지 않겠지만, 그래서 그 시간은 더 귀하게 남을 것 같다.
아이가 보내온 "응" 한 글자. 짧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다 옮기지 못하는 신뢰가 담겨 있다. 프렌치토스트를 받아들고 말없이 현관을 나선 아이가 남기고 간 온기. 오래된 지인이 무심한 듯 건넨 "요즘 어때?"라는 짧은 물음. 관계는 말의 양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겹쳐지는 깊이로 느껴지는 것이다.
거울이 비어 있기에 무엇이든 비출 수 있듯, 비어 있는 마음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아직도 나를 다 알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 한켠에서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본능과 생각, 그리고 실제 행동 사이에는 언제나 작은 어긋남이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아마 오래도록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고정되는 것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달라지는 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동학사 오르는 길에서도, 마곡사 대웅전 앞에 서 있을 때도, 나는 늘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역할이 모두 벗겨진 그 자리. 비어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 어떤 것.
나는 그것을 오래 찾았다. 그것이 무아이고, 동시에 참나다. 무아는 우리를 과거의 습관과 고정된 정체성으로부터 풀어준다. 참나는 그 자유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깨어 있게 한다.
비어 있기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고, 깨어 있기에 무엇을 담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나를 찾는 삶'과 '나를 내려놓는 삶'을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당신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양식으로 규정하려 하지 마라. 때로는 바람이 지나가는 중정이 되고, 때로는 빛을 받아들이는 창이 되고, 또 때로는 무게를 버티는 기둥이 되는 것.
그 모든 모순과 복합성 위에 비로소 당신이라는 집이 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