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느끼는 불교, 건축으로 읽는 마음
마곡사의 고요함 속에서
추석이 지나자, 공기가 달라졌다. 바람이 얇아진다. 햇살이 낮아진다. 사람들의 옷깃이 닫힌다. 그렇게 계절이 한 걸음씩 깊어간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곡사를 찾는다. 봄엔 피어나는 연둣빛 숲이 마음을 맑게 하고, 여름엔 계곡의 물소리가 번뇌를 씻어낸다. 가을엔 단풍이 산사를 물들이고, 겨울엔 고요한 눈빛이 마음을 잠잠하게 만든다. 대전 근교라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고, 무엇보다 마곡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찰 중에서도 유난히 공간이 고요하다.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고, 나무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이 길 위에 흩어진다. 돌계단의 거친 촉감, 바람에 실려오는 흙냄새. 세상의 소음이 차츰 사라지고, 내 안의 생각만 또렷해진다.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불교 신자도 아니고, 특별히 신앙이 있는 편도 아니다. 다만 외부의 신이 아니라 내면의 깨달음으로, 스스로 변화해가는 불교의 길이 인문학적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 번뇌가 소멸된 자유로운 경지 — 그것은 누군가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도달하는 세계였다.
건축을 전공하며 전통건축도 함께 공부했고, 전국의 수많은 문화유산을 답사하며 현장을 직접 보고 체험했다. 이후 한국건축사를 대학에서 몇 학기 강의할 기회를 얻으면서 사찰 건축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저절로 알게 되었다.
사찰은 단순한 종교 건축이 아니라, 해탈로 가는 불교의 여정을 공간으로 구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찰의 고요함 속에서
불교에서 모든 수행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하나다. 깨달음. 번뇌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비워내며, 더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하지만 그 길은 사람마다 다르다. 단번에 통찰을 얻는 이도 있고(돈오, 頓悟), 조금씩 다가서는 이도 있다(점오, 漸悟). 참선으로, 경전으로, 혹은 일상의 노동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 깨달음이라는 열쇠로 해탈의 문을 여는 것이 수행자의 궁극적인 목표다.
한국의 사찰은 바로 이 ‘해탈의 길’을 공간으로 보여준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내면을 비우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몸으로 체험하는 일이다.
한국의 사찰은 단순히 여러 전각(殿閣, 사찰 내 각각의 건물)이 모인 집합이 아니다. 그 안에는 가람(伽藍) 배치, 즉 불교 교리에 따라 구성된 공간의 질서가 있다. 일주문과 천왕문, 해탈문이 '세속에서 진리로 나아가는 길'을 상징한다면, 그 중심에 자리한 대웅전은 '해탈의 공간'이다.
하지만 사찰은 대웅전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주변에는 지장전, 관음전, 응진전, 산신각 같은 전각들이 함께 자리한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역할로 부처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이제 그 여정을 천천히 따라가 보자. 이 이야기를 알고 다시 사찰을 걷는다면, 그곳의 풍경이 전보다 훨씬 깊게 다가올 것이다.
한국의 불교 사찰은 저마다 다른 상징과 정신을 품고 있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 경전의 법을 간직한 해인사, 수행 공동체의 정신을 이어온 송광사 ― 이른바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 불린다. 사찰마다 중심에 둔 가르침은 달라도, 결국 그 모든 길은 하나의 평온으로 향한다.
사찰의 전각 배치는 사찰마다 교리와 시대,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여기서는 한국 사찰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와 상징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세속을 버리고 진리의 세계로
사찰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문이 일주문(一柱門)이다. 기둥이 일렬로 서 있다고 해서 일주문이라 하지만, 그 의미는 훨씬 깊다. ‘일주(一柱)’는 ‘하나의 기둥’, 즉 일심(一心)을 뜻한다.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부처의 길로 들어서라는 가르침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이렇게 물었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일주문은 바로 그 손을 놓는 순간이다. 세속의 욕심과 번잡한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들어설 수 없는 문. 부처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버림에서 시작된다.
번뇌를 마주하고 정화하기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天王門), 혹은 금강문(金剛門)이 나타난다. 사방을 지키는 네 천왕상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우리 안의 번뇌를 상징한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 교만. 부처가 되지 못하게 막는 네 가지 그림자다.
천왕문은 시야를 일부러 막아 안쪽을 바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길은 굽고, 축선은 비껴 있다. 이것이 곧 곡진(曲進), 굽은 길로 들어가는 불교 건축의 방식이다.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공간이 마음을 이끈다. 낮아질수록 마음이 비워지고, 굽을수록 겸손해진다.
이것이 점오(漸悟) — 점진적으로 깨닫는 길이다. 보조 지눌 스님은 이를 돈오점수(頓悟漸修)라 했다. 단번에 진리를 깨쳤다 해도, 오랜 습기를 버리기 위해선 꾸준한 수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에 비해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처럼,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한눈에 드러나는 직진(直進) 배치도 있다. 이런 시각적 직관성은 ‘단번에 깨닫는 통찰’에 비유될 수 있다. 성철 스님은 “단번에 깨달으면 더 닦을 것이 없다”고 했다. 진정한 깨달음이라면 그 순간 수행도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를 돈오돈수(頓悟頓修)라 부른다.
물론 건축이 곧 교리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찰의 배치에는 늘 이런 생각이 깃들어 있다. 길의 구조가 마음의 여정을 닮아 있다는 것.
한때 이 두 길은 한국 불교의 큰 논쟁이었다. 하지만 건축은 말없이 답한다. “길은 달라도, 도착지는 같다.” 곡진이든 직진이든, 그 끝은 모두 해탈이다.
집착에서 벗어나는 순간
어떤 사찰에는 천왕문 다음 해탈문(解脫門) 혹은 불이문(不二門)이 있다. ‘해탈’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를 의미한다. 굽은 길을 따라 이 문을 통과하는 순간, 가을 햇살이 마당 가득 쏟아진다. 낙엽이 흩날리고, 멀리 대웅전의 처마가 하늘과 맞닿는다. 앞서 시야를 가리던 구조들이 사라지고, 빛이 쏟아지며 마음이 열리는 찰나 — 낮아질수록 멀리 보고, 비울수록 더 많이 담게 된다.
‘불이(不二)’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으며, 속세와 불국토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 해탈문은 바로 그 경지로 들어서는 문이다.
그러나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그 너머에는 대웅전(大雄殿),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있다. '대웅(大雄)'은 '큰 영웅'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를 가리킨다. 온갖 번뇌와 마장(魔障)을 이겨낸 위대한 영웅. 이미 해탈을 이룬 부처가 그곳에 앉아 있다. 좌우에는 지혜와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들이 협시(脅侍, 본존을 좌우에서 모시는 보살)한다.
사찰의 중심 전각은 모시는 부처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 가장 일반적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해인사의 대적광전(大寂光殿), 아미타불을 모신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미래의 부처 미륵을 모신 금산 미륵사의 미륵전(彌勒殿), 그리고 화엄사의 각황전(覺皇殿)처럼 각 사찰마다 다른 이름의 본전이 중심에 자리한다.
화엄사 각황전은 '깨달음의 황제'라는 뜻을 가진 전각으로, 석가모니불을 모신 사찰 본전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편 법주사에는 팔상전(八相殿)이라는 독특한 전각이 있다. 국내 유일의 2층 목조 불전으로,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를 봉안한 곳이다.
이름은 달라도, 그곳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다. 해탈의 공간.
그 많은 전각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고(故) 최순우 선생은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그 기둥에 기대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조용히 되묻었다고 했다. 국내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고려시대 목조건축물로, 단정한 비례와 구조미, 그리고 기둥의 엔타시스(배흘림)가 돋보이는 주심포(柱心包) 양식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절제된 아름다움 속에 오랜 세월의 숨결과 고요한 깨달음의 시간이 함께 머문다.
그러나 대웅전은 여정의 끝이 아니다. 부처는 이미 해탈한 존재지만, 불교, 특히 한국의 대승불교는 개인의 해탈에서 머물지 않는다. 부처가 될 수 있음에도 중생을 위해 스스로 남기로 한 존재들, 바로 보살(菩薩)이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내가 가장 끌리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음에도, 고통받은 이들 곁에 남기로 한 선택, 완전한 해탈보다, 개인의 구원보다 함께 머무는 자비.
대웅전 주변을 둘러보라. 그 뒤나 좌우에는 지장전(地藏殿)과 관음전(觀音殿), 약사전(藥師殿) 등이 함께 자리한다. 이들이 바로 보살들의 전각이다. 해탈과 중생의 세계를 이어주는 연민의 공간. 대웅전의 주축과 연결되어, 부처(해탈)와 중생(삶)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즉, 불교의 자비(慈悲)와 회향(回向, 자신의 공덕을 다른 이를 위해 돌려 나눔)— 깨달음을 나누고,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정신이 공간으로 구현된 구조다.
사찰의 한켠, 조용한 언덕 위에 자리한 지장전(地藏殿), 명부전(冥府殿)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부처가 될 수 있음에도 이렇게 서원했다.
"지옥의 중생이 모두 구제되기 전에는 나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그래서 불교에서는 염라대왕보다 지장보살의 위계가 더 높다고 본다. 지장보살은 불교 안에서 가장 인간적인 보살이다. 자신이 부처가 되지 않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남는 존재.
지장전은 웹툰과 영화〈신과 함께〉로도 익숙하다. 사후 세계의 심판과 윤회의 세계관, 그 근원이 바로 이 지장보살의 서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영화 속 긴장감 넘치는 심판과 달리, 불교의 지장전은 두려움보다 구원의 공간에 가깝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며 향을 피울 때, 우리 마음속엔 자연스레 이런 기도가 떠오른다.
"부디 그곳에서도 고통이 없기를." 지장보살은 그렇게 끝까지 남아 중생을 품는, 떠나지 않는 부처다.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자리한다. 모든 중생의 고통 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보살, 세상의 고통에 눈을 감지 않는 존재다. '관세음(觀世音)'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소리를 관(觀)한다"는 뜻을 가진다.
그는 인간의 슬픔과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머문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 때 자기도 모르게 읊조린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 짧은 염불 속에는 누군가 나의 고통을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고통에 귀 기울이겠다는 연민의 약속이 함께 담겨 있다.
어른들은 가끔 이렇게 말하곤 한다. "힘들다고 너무 자주 말하지 마라. 그 말도 관세음보살이 다 듣고 계신다." 우리는 힘들 때마다 마음속에서 작은 신음처럼 그 말을 내뱉는다. “이제는 조금 지쳤어요.” “사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한숨조차, 관세음보살에게는 중생의 울음으로 들린다.
그는 세상의 한숨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가장 따뜻한 보살이다. 멀리 하늘 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 안에 머무는 존재다.
삼성각·요사체·표충사, 그리고 함께 머무는 신앙들 - 다양한 길을 인정하다
대웅전 옆에는 조금 의아한 전각이 있다. 삼성각(三聖閣) — 불교의 품이 가장 넓게 드러나는 곳이다. 산신령과 칠성신, 독성나한이 함께 모셔져 있다. 불교와 도교, 토속신앙이 한 지붕 아래 머무는 이 전각은 공존의 미학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까이에는 요사체(寮舍)가 있다. 스님들이 수행하고 생활하는 실제 거처로, 관람객의 출입이 제한된 공간이다. 요사체는 법당과 세속의 경계에 서 있다. 부처의 진리가 일상 속에서 밥 짓고, 잠자고, 예불을 준비하는 삶으로 이어지는 자리다. 그래서 요사체는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수행의 현실적 중심, 즉 ‘성(聖)’과 ‘속(俗)’이 만나는 중도(中道)의 공간이다.
흥미로운 예도 있다. 해남 대흥사의 표충사(表忠祠)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서산대사를 기리는 사당이다. 조선 정조가 직접 사액을 내려 국가 제향까지 올렸다. 불교 사찰 안에 유교 제사가 함께 열린 셈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진정한 깨달음은 배척이 아니라 포용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해졌다. 그러나 이 땅에 이르러서는 토착 신앙을 몰아내지 않았다. 산신령도, 칠성도, 호국의 영웅도 함께 모셨다. 조선의 억불정책 속에서도 사찰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성들의 믿음을 인정하고, 나라의 정신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부처의 제자들을 모신 응진전(나한전), 선종의 스승을 모신 조사전, 사찰을 세운 고승을 기리는 영당 등이 함께 자리한다.
각 전각은 저마다의 의미를 품은 채, 전체 속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그 질서 속에는 위아래가 아니라, 함께 머무는 ‘조화’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사찰의 가람 배치는 단순한 건축이 아니다. 그것은 불교의 우주관을 그려낸 하나의 경전, 걷는 사람마다 각자의 해석으로 읽어내는 살아 있는 철학의 지도다.
우리 삶의 지혜를 공간에 담다
서양 건축이 각 건물의 독립된 조형미로 돋보인다면, 우리나라 사찰은 여러 건물이 모여 하나의 질서를 이룬다. 이것이 바로 집합의 건축, 한국 전통건축의 본질이다.
대웅전, 범종루, 요사채, 탑, 회랑 — 어느 하나가 중심이 아니고, 서로의 위치와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불교의 연기 사상이 그대로 공간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연기(緣起) —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하며 존재한다는 불교의 핵심 사상이 건축 너머, 신앙의 차원에서도 실천된 것이다. 부처가 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모든 길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
건축은 이렇게 말한다. "깨달음은 혼자의 것이 아니다. 함께 있는 순간에 비로소 부처가 된다."
당신은 지금 어디쯤 걷고 있는가?
다시 사찰의 길을 천천히 걸어본다. 일주문에서 손을 놓고, 천왕문에서 번뇌와 마주하고, 굽은 길을 낮게 걸으며, 해탈문에서 시야를 연다. 대웅전에서 부처를 만나고, 지장전 앞에서는 떠나간 누군가를 떠올리고, 관음전 앞에서는 아직 남아 있는 이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삼성각에서는 다름을 품는 법을 배운다.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조금씩 마음이 비워진다.
다음에 마곡사를 다시 찾을 때, 나는 어느 문 앞에 서 있을까. 어쩌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 가볍게, 더 비워진 마음으로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찰을 걷는다는 건, 꼭 무언가를 깨닫기 위한 시간이 아니다. 그저 잠시 멈춰 서서,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돌계단의 촉감을 밟으며 숨을 고르고, 처마 끝 풍경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그렇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은 내려놓고, 조금은 비워내며, 조금은 자신에게 너그러워진다.
그게 어쩌면, 우리가 찾는 평온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발걸음은 멈춰도, 그 여운은 몸 안에서 계속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