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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3. 2018

편지4_퇴직자에게

퇴사하는 직원에게

퇴사를 축하합니다. 


퇴사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에요.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마치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이어서 나는 언제나 '굿바이'라고 말할 뿐이었어요. 하지만 오늘 나는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그만큼 은지 님이 우리 회사에 남기고 간 흔적이 깊고 내 마음속에서 저절로 생기는 응원하는 기운이 따뜻하게 퍼지기 때문입니다. 


실로 이 시대는 젊은 사람이 살아가기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넓고 다채로우며 활발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세계가 그렇다는 것이지 막상 나의 세계를 앞에 놓고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며 과연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뿌옇고 막막합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아마 다른 세대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젊은 시절의 통과의례 같은 게 있는 법이니까요. 


다만 그 시절을 통과한 인생 선배로서 몇 가지 조언을 해 볼까 해요. 비현실적인 이야기예요.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보니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모호해요. 그 경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비현실을 시원스럽게 추방해버린 사람일수록 누추했어요. 인간은 누구에게나 그 마음속에 우주가 있습니다. 태양계는 사람 마음속에는 들어갈 수 없지요. 그러나 우주는 틀림없이 사람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 우주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최은지 안에는 어떤 우주가 있나요? 


내 마음속에 규정할 수 없으며 아주 넓은 우주가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과 내가 상당히 대등해져요.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내가 나를 격려하며 내가 내게 용기를 주고 내가 나를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무엇이 내게 올바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주의 물질과 끝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것이 이로운지도 알 수 없어요. 어제 좋은 것이 오늘 보잘것없으니까요. 성공과 실패는 하나의 사건 이상은 아닙니다. 성공하면 기쁘고 실패하면 우울할 뿐이지요. 인생에는 아주 많은 성공과 아주 많은 실패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움직인다 것', '흐른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우주는 동사입니다.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는 우주는 없습니다. 설령 공부하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더라도 움직이고 있거든요.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몇 년 지속되어도 실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중일 거예요. 나는 공부할 때 아주 활발했습니다. 내 몸은 도서관에 꼼짝 않고 있었지만 내 정신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나를 어딘가로 계속 이주시켰습니다. 잡념을 사랑하세요. 잡념은 이 우주의 신묘한 법칙입니다. 인간은 잡념을 통해 허물을 벗고 진화하거든요. 공부하는 동안에, 그리고 내 미래를 조용히 준비하는 그 시간에 아주 많은 잡념이 최은지를 방문할 거예요. 괜찮아요. 수락하세요. 때때로 이불킥도 하겠죠. 때때로 우울하겠지요. 하지만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 우주는 규정할 수 없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상상력보다 상상력이 풍부합니다. 다 잘 될 거예요. 제 나이가 되면 대체로 압니다. 활발하게 살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는데 그것은 젊은 시절에서는 알 수 없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와야 할 곳입니다. 와야 할 곳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몰라도 당신의 우주는 압니다. 그러므로 내 안의 우주를 생각하며 그것을 사랑하세요.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코디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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