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 나이 41세
20대의 나는 아이 넷을 낳고 싶었다.
나의 배우자가 누구든 막연한 '자녀 계획'은 그랬다.
나는 아들도 낳고 싶고, 딸도 낳고 싶은데, 아이들에게는 동성 형제가 있으면 우리 모두 행복하겠다! 하는
단순하고 평화주의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드디어 내 생에 결혼할 남자를 만났다.
결혼을 세 달 앞둔, 만 32세의 나와 남편은 '웨딩검진'이라고도 불리는 산전검사를 예약했다.
임신을 준비하는 예비부모를 위한 건강검진으로,
지금은 정부의 가임력 검사 지원이 있지만, 그 때는 꽤 비싼 비용을 들여야 했다.
비뇨기과에서 검사한 남편의 검사결과는 다음날 빠르게 문자 전송되었다.
성병균 유무, 정액량, 정자밀도, 운동성, 모양의 정상수치와 남편의 수치가 대비되어 상세히 적혀있었고, 말미에 '자연임신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라는 문구가 보였다.
남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는지 어땠는지, 겉으론 덤덤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내가 더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나의 검사결과를 받아보는 데에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내가 검사한 산부인과에서는 이상이 없으면 내원하지 않아도 된다며, 결과는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경험상 이런 경우에는 '이상 없음' 소견을 받아왔기 때문에 당연히 이번에도 같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만이었다.
예상을 깨고, 내원안내 연락을 받았다.
내원날짜는 남편의 생일기념으로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설레기만 했던 '그 날'이 다가올수록 검사결과에 대한 걱정이 점점 더 커졌다.
2주 만에 다시 찾은 병원에서 재회한 의사는 스테이플러가 찍힌 두꺼운 A4용지를 내밀며, 검사결과를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흔한 '질염'과 비타민D 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래프를 보여주며, 평균 나이대의 AMH 수치와 현재 나의 수치를 비교해 주었다.
AMH 수치는 '난소나이'를 나타낸다.
1.28
처음듣는 내 난소나이는 41세였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실제 나이보다 10년 가까이 나이 든 난소라니..
운동을 한다거나 노력한다고 수치가 다시 높아지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폐경이 남들보다 빠를 수 있으니, 자연임신을 하려면 바로 시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권했다.
처음 느끼는 종류의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이 일은 누구에게도 섣불리 말하기 힘들겠다는 걸 직감했다.
수치심보다도 '안 좋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힘을 발휘해서 현실이 될까' 우려되는 조심스러운 마음 때문이었다.
병원을 빠져나와 곧 만나기로 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면담내용을 전하며 울컥하는 감정에 목이 막혔다.
그리고 그 때 깨달았다.
더 이상 아이 넷 낳는 꿈을 꾸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아기를 많이 원한다는 것을.
남편은 못 갖는다는 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소질 없는 위로의 말을 열심히 건네고 있었다.
여행 내내 마음 한편에 짐이 올려져 있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내 검사 결과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하는 걱정과 미안한 감정도 들었던 것 같다.
나의 몸 상태를 나타내는 객관적인 수치를 알게 된 이상 아기가 자연스럽게 생기길 마음 편히 기다릴 입장이 아니었다.
나는 항체가 없는 A형 간염 접종을 하고, 비타민D 고함량 영양제도 구입했다.
그리고 'AMH 수치', '1.28 자연임신' '난소나이 41세' 면담 때 들은 내용을 검색, 또 검색했다.
며칠 후, 인터넷상에서 알 수 있는 AMH수치에 대한 것들은 알만큼 다 알게 되었다.
그 중 AMH수치는 남아 있는 난자의 개수를 나타내는 것일 뿐, 난자의 질은 실제 나이의 영향이 크다는 정보는 실제나이 30대초반인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이 금'인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