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임테기도 다시 보자!
1월의 숙제날은 남편 친구들과 부부동반(예비부부 포함)으로 1박 2일 여행을 가기로 한 전 날과 당일이었다.
우리는 몹시 피곤했지만 여행 전날과 당일 아침, 산부인과에서 내 준 숙제를 하고 출발했다.
숙소에서 남편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친구아이가 다칠세라 (부모보다 더) 졸졸 따라다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아이가 생기면 믿음직스러운 아빠가 되겠구나'싶었고, 남편이 아이를 원하는 마음의 크기도 느껴졌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유일하게 아이가 있는 친구 부부는 둘째 임신 소식을 알렸다.
그 부부를 제외하고 결혼한 부부는 우리뿐이어서 친구들이 자연스레 임신 계획을 물었다.
남편에게 노력하라는 농담도 던졌다.
아무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 임신준비 중인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 때 우리 부부가 가장 애쓰고 있는 일이었어서 표정관리가 잘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답변은 "이제 슬슬 준비하려 해."라고 했던가..
나도 예전에 아기 없이 사는 지인에게 "아기는 안 갖기로 했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지인의 직업은 교사였다.
예전에 교사인 또 다른 지인이 자신은 아이들에게 시달려서 아기를 갖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사람도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하고 멋대로 추측했다.
또, 요즘 워낙 딩크족이 많다 하니 안부에 호기심을 얹어 한 질문으로, 의심 없이 자의에 의해 만들어진 가족형태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없는 이유는 늦은 임신시도와 생식기 건강 문제였다.
경솔하고 무례한 나의 실수였다.
인생을 얼마나 살았다고 내가 아는 게 다인 것처럼 굴다니! 이렇게 민감한 사안을 함부로 넘겨짚다니... 나는 최악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다지만, 다 나은 상처일지라도 내가 건드렸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죄책감에 마음이 오래도록 무거웠다.
그 때의 경험과 기약 없이 시도 중인 임신준비로 임신에 관해서는 상대가 먼저 이야기하기 전까지 가급적 입 꾹! 매우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편의 친구들도 언젠가 나처럼 깨닫지 않을까.
여행에서 돌아온 날은 산부인과에서 지정해 준 날이 아니었다.
하지만 산부인과 진료와 별개로 집에서 체크하고 있던 배란테스트기에 '피크'(배란일 전날)가 떠서 자체적으로 숙제를 했다.
혹시 배란일을 놓칠까 봐 불안한 마음에 심화학습도 마친 셈이다.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아기를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 시절은 참 청춘이었다.
어느새 임신 준비 7개월 차에 들어섰고, 나는 해가 바뀌어 만 34세가 되었다.
(*만 35세부터 노산으로 구분되며 6개월 시도 후에도 임신이 되지 않으면 난임병원을 방문하라고 권한다.)
이번 달에 임신이 되지 않으면 난임병원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오랜 기간 준비하는 부부들은 얼마나 마음고생이 클까 싶었다.
의사가 이번 달에 "내벽이 두툼하고 난포가 잘 터졌다"며 9일 차부터 얼리 임테기를 해보라고 했다.
물론 날짜를 잊지 않고 테스트 중이었지만(잊을 수가 없다), 11일 차까지 소득이 없었다.
그날도 잘 준비를 마치고 휴대폰 갤러리를 뒤적이다가
퇴근 후에 찍었던 임테기 사진이 이상했다.
맙소사! 뭐가 보이는 것 같다!
간절한 엄마들 눈에만 선이 보이는 걸 '매직아이'라고 하는데, 아주 아주 흐린 선이 보였다.
아직 확신이 없었다.
남편에게 알리기 전에 확인받을 곳이 필요했다.
신경이 온통 임신에 쏠려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들락날락하던 맘카페에 사진을 올렸다.
드디어 보기만 하던 그 글을 쓰는 날이 왔다.
'보여용~~'
'저는 그것보다 더 흐렸는데 다음 날 확실히 보이더라구요!'
그 때 익명의 누군가가 달아준 댓글은 무엇보다 강한 힘이 있었다.
사실 보인다고 하면 "무조건 믿습니다!!!" 할 준비를 하고 보는 댓글이었다.
그 날 밤, 나는 분명 변함이 없는데 새로운 사람이 된 듯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어떤 스위치가 'On'으로 켜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의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