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반성문

by 동그라미

긴 겨울방학이 끝났다. 이제 아이들 밥 걱정이나 유튜브에 빠질 염려도 내려 놓아도 된다. 그렇다고 마냥 개학이 반갑지는 않다. 두 자매가 그럭저럭 사이좋게 지내던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선생님과도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유연하게 학교에 적응을 해왔다. 그렇지만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큰 아이는 2시 경, 둘째는 12시가 좀 넘으면 하교시간인데 둘 다 두시가 훌쩍 넘도록 연락이 없다. 세시가 다 되어서야 둘째에게서 문자가 왔다. 담임은 여자선생님이시고, 친구들을 사귀지는 못했는데 게임을 하면서 한번씩 이야기는 나누어봤단다. 자세한 건 집에서 얘기하자며... 나름 괜찮은 하루라고 평가한 듯하다. 휴! 다행다. 큰 아이에겐 연락이 없다. 학교 마치면 바로 전화부터 할 친구인데...왜일까? 스멀스멀 불안감이 올라온다. 3시 50분이 넘어서야 드디어 전화가 걸려왔다. 다행히 선생님은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주 좋기로 소문난 선생님이다. 나도 한번쯤 뵙고 싶었던. 반 분위기도 좀 시끄럽긴 하지만 괜찮았단다.

"발표만 빼면..."

이 한 마디가 귀에 쏙 박혔다.

오늘은 학생회장으로 1학년 신입생들에게 편지 낭독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일주일전부터 편지를 다듬고 리허설도 10번 가까이 했다. 거의 다 외울 정도로.

"발표가 왜? 그렇게 연습을 많이 했는데? 대본을 안 들고 갔어?"


사연은 이랬다. 편지 글에 5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써주신 편지 글 일부를 소개했는데, 마침 선생님이 그 자리에 계셨다고 했다. 그래서 클라이막스였던 그 부분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 지도 모르게 횡설수설하고 내려와버렸다고 했다. 자신이 한 발표 중에 최악이라고.


'뭣이라고! 학생회장으로 첫 공식석상에서! 선생님이 있으시면 어때? 출처도 밝혔는데....교장선생님이 말씀을 너무 잘하신거랑 자기가 무슨 상관인데....그렇게 연습을 해놓고 읽으면 되는 걸 왜? 왜?왜??'


이 모든 말을 다하진 못했다.

"선생님이 있으심 어때? 그냥 하지 그걸 왜?"

이 정도면 했는데 전화기 너머가 조용하다.

"엄마, 저도 지금 너무 속상하고, 그런데 이미 지난 일이니깐 털어버리려고 노력하니깐 더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차차! 또 실패다.

나는 한번도 아이 실수에 대해 쿨하게 그럴 수도 있지란 말을 해주지 못했다.

어제 개학 맞이 편지를 쓰면서는 옆에서 같이 걸으면서 응원해주겠다고 하고선

작심하루도 못되어서 이미 때 지난 충고와 비난을 내비쳤다.


뒤늦게 아이에게 괜찮다고 카톡을 보냈다.

아이는 그게 계속 트라우마가 될까봐 무섭다고 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가볍게 이야기 해주었더라면....

그냥 한번 웃어주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했더라면

아이는 훌훌 털고 늘 하던 대로 앞으로 잘해내갈 수 있었을게 틀림없다.

괜히 아이에게 불안감을 심어준거 같아서 마음이 더 무겁게 내려 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또 이 실수 경험을 잊고 훌쩍 성장할거라 믿는다.

나도 그랬으니깐!!

잘하고 못하고보다 모든 순간 진심과 성실이 더 중요하다.


분명 아이는 최선을 다했으니깐,

조금 부족한 모습도 어른들 눈에는 기특하게 비췄을거고,

무엇보다 새내기 학생들에게도 학생회장 언니도 저렇게 당황할 수 도 있구나

친근해보였을지도 모른다.

모든 걸 다 잘해내는 완벽함보다 실수하고 보완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 더 멋지니깐!!!!


이런 말을 혼자서 속으로 뒤늦게 한다.

오늘 저녁에 아이를 꼭 안고 이 말을 다시 들려줘야겠다.


이렇게 오늘도 엄마 반성문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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