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을 하고 어느덧 네번째 방학을 아이들이 보내고 있다.
4학년, 2학년 여름방학에 엄마 없는 여름방학 시간을 메우느라 우리 형편에 가분한 키즈수영장을 매일 보냈고, 아이들을 걱정한 아빠가 수시로 점심을 챙기러 30분거리 회사에서 왔다갔다 하거나, 근처 식당에 전화해서 아이들의 점심을 예약하면서 한 달을 어찌어찌 보냈다. 여름방학은 1달여 밖에 안되었는데, 겨울방학은 무려 두 달! 하지만 육개월만에 부쩍 자란 아이들은 나름 둘이서 카드를 들고 사먹거나, 배달음식을 받아서 잘 차려 먹었다.
그 시절 문제는 '밥'이었고, 점심만 잘 먹어도 기특하고 대견했다.
둘이서 밥을 먹고 시간에 맞춰 학원가는 것만으로도 무한감동을 하던 1년이 지나고, 5학년과 3학년이 된 아이들의 여름방학. 이제는 유부초밥이나 주먹밥 같은 간단한 요리로 하루,이틀 정도는 집밥을 차려 먹고 씽그대로 먹은 그릇들을 옮겨놓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스스로 계획표를 세우기는 했지만, 텔레비전과 유튜브 유혹에 빠진 여름방학은 하릴없이 시간이 훅 지나갔다. 엄마는 눈물콧물 쏙 빠지고 잔소리를 퍼붓었지만, 어른시절 엄마가 일을 나가신 뒤 동생과 하루종일 놀고 또 놀던 유년의 나를 떠올리며 잔소리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후회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6학년과 4학년을 앞둔 겨울방학을 맞았다.
지난 여름 방학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이들도 아쉬움으로 남았는지 방학 시작부터 갓생을 살겠노라고 벼르고 벼렸다. 다이어리와 스터디스케줄러까지 준비를 한 아이들은 매일 10개씩의 할 일일 정해두고 체크리스트를 성실히 이행하려고 애썼다. 전 방학에는 엄마가 하루 숙제처럼 체크리스트를 정해두고 가면 아이들이 해내는 방식이었지만 이번 방학부터는 스스로 할 일을 정하고, 체크하기로 했다.
기특하게도 막내 행복이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는 않으나 많은 과제들을 거의 매일 다 해냈다. 차곡차곡 성실히 시간을 보내다보니, 학기 중에 미뤄두었던 문제집을 거의 다 풀었고, 국어사전 필사, 독후감 쓰기, 영어일기 쓰기, 동화쓰기 공책 페이지가 서서히 채워져가고 있었다 . 아직 어리기만한 아이가 그렇게 성실히 자기 할 일을 해내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반면, 6학년 감동이는 체크리시트 완성률은 평균 50퍼센트를 넘기지 못하는 듯 했다. 그래도 이번 방학 우리들의 목표는 진정한 자기주도 학습의 길로 돌아서는 것이었으므로 점점 더 나아지길 기대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1월 설날이 시작되기 전, 큰 아이가 전화를 걸어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 딴짓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본인에 대한 한숨이었다. 순간, 화가 확 치밀어 올랐다.
"혼자서 한시간 넘게 있었는데 뭐했어?:
"그냥 네이버 봤어요. 뜨는 뉴스나 그런거..."
아이는 말끝을 흐렸다. 웹툰과 웹소설, 유튜브로 방학을 꽉 채운 전력이 있는지라 '의심'이 발동했다. 중요한 시기인데 그런 소모적인 것들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들이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났다. 그래도 최대한 꾸욱꾸욱 눌러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엄마도 그렇게 시간을 소비하고 나니 점점 더 내 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ㄴ노라고, 너는 좀 더 열심히 살아서 네 꿈과 가까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 최대한 순화한 언어로 적었다. 하지만 보내고 나니 잔소리 같기도 해서 살짝 후회하려는 찰나, 아이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진심으로 고맙단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방학의 절반을 보내고 2월을 맞았다. 큰 아이도 이제 새롭게 다졌을 거라 생각했다. 2월 첫번째 월요일, 아이는 학생회 회의가 있어 오전 내내 학교에서 회의를 했고, 오후시간 내내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큰 아이의 스터디 스케줄러와 문제집들을 점검해보았다. 아이가 허투루 시간을 쓰지 않게 함께 목표를 세우고 큰 아이도 꾸준히 성실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고민해봐야지 하는 취지였다. 하지만 거의 풀지 않은 채 남겨진 5-2학기 문제집(이것도 엄마는 사는 것을 반대했다. 몇 해동안 풀지 못하고 고스란히 버린 문제집이 생각났고 책이나 더 읽으라고 했지만, 본인이 우겨서 한사코 풀겠노라고 해서 샀던 문제집이다!!!!)과 새것 같은 영어문법 문제집(이것도 본인이 원해서 산 것!)을 보니 도대체 뭘 했나 싶었다. 스터디스케줄러를 보니 학원 숙제, EBS 온라인 강의 듣기가 간간히 체크되었고, 그나마 다이어리와 어린왕자 영어책 필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둘째와 같은 시간을 보내는데 왜 이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거지?' 의심이 확신이 되어갔다.
"뭔가 이뤄진게 하나도 없네. 그나마 몇 장 푼 것도 채점도 안하고, 채점은 안한 건 안푼거나 마찬가지지! 도대체 뭘 한거야 그동안?"
날카로운 말들이 큰 아이를 향해 쏟아졌다. 시간은 어느덧 밤 11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서둘러 잠자리로 몰아넣었다.
"에휴"
한숨을 쉬면서 신랑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신랑이 내 마음 속 불안을 움켜쥐었다.
"감동이도 스케줄러도 꾸준히 쓰고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 거겠지. 여보 마음 속엔 행복이처럼 성실하게 딱딱 해내는 게 좋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감동이는 이런저런 거가 궁금하고 호기심이 많은거야. 그래서 이것 하다가 저것도 좀 보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훅훅 가고 그러는 거 같아. 그래도 영어책 필사나 학원 숙제는 성실히 다 해가잖아. 또 자기가 스페인어도 배운다고 하고. 나도 좀 이런저런거에 관심이 많고 다 성실히 해내지는 못해서 나는 이해가가! 감동이가 좀 더 해냈으면 좋겠는 방향이 있으면 차라리 딱 방향제시를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랬다. 이제 6학년을 향해가는 큰 아이는 세상 온갖 소식과 잡동사니에 관심이 너무 많았다. 일명, 딴짓 시간이 길었다. 방학인데! 좀 딴짓하고, 좀 게으르고, 좀 시간을 허비한 들 어떠랴! 아직 초등학생일 뿐인데.
하지만 자기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감동이에게 방학인데, 미래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한다고 재촉하는 그런 나쁜 엄마가 되기 싫은 마음과 그래도 스스로 아이가 알아서 척척 성실하게 하루하루 갓생을 살았으면 하는 터무니 없는 욕심이 오늘의 잔소리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정작, 내가 아이에게 분명하고 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확신도 없으면서 말이다.
여기까지가 지난 밤의 이야기,
한파 속에서 출근을 한 뒤 얼마지나지 않아 큰 아이에게 카톡이 왔다.
책상 서랍 청소를 해야하는데 분리수거할 것들을 어떻게 해야하냐는 질문이었다. 엄마의 못난 잔소리에도 자신이 갈 방향을 새롭게 다지면서 책상 서랍을 정리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미루어짐작해본다.
그것이 아니래도, 믿고 기다리고,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면서 아이의 길을 찾아가는 현명한 엄마가 되기 위해
다시금 고군분투해야겠다. 그 얼마나 인간미 넘치는 모녀지간! 아마도 다~~잘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