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Apr. 20.)
복직 6일째, 3월31일로 예정되었던 복직이 인사팀의 통보로 4월14일로 연기되었고, 작은 수술로 골방을 차지하고 누워있다가 가까스로 회사에 왔다. 인사팀에서는 자리가 없으니 일단은 휴직 전 부서에 가 있으라고 했다. 이후 외부기관 파견을 제안했고, 아이들 키우기엔 정시출퇴근이 가능한 파견이 낳을거란 생각에 적극적으로 좋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렇게 전 부서에 와서 어정쩡하게 자리는 잡은 채 업무분장은 받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다. 과장님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지만 지금까지 들은 단 한마디의 말은 "좀 있으면 간다며?". 그 이후론 있으되 없는 사람 같은 존재다. 스무명 가까이 되는 직원들도 당연히 갈 사람이라 크게 다가올 마음이 없는 듯하다. 아니, 2년 6개월만의 복직이라 최대한 웃으면서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알 수 없는 벽이 턱 가로막혀 있음을 느끼곤 내 쪽에서도 잠시라도 좋은 인연을 맺어보리란 욕심을 쉽게 내려 놓았다.
바뀐 시스템에 적응하고 빠듯한 출퇴근 시간에 맞추는 연습을 하고, 맞벌이 부모님을 둔 아이들을 적응시키는데 일주일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건 나름 괜찮은 일이었다. 인사팀에서 제안한 파견 기관에 관해 이리저리 알아보고 업무파일에서 좋은 보고서나 계획서 모음을 살펴보기도 하고, 사내 메신저로 반가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조금은 월급받기 미안한 시간을 보낸다. 조만간 이 시간이 그리운 날이 닥쳐올 수 있으니 최대한 적응기간에 의의를 두기로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가며.
늘 육아에 비중을 두느라 회사에서는 딱 내 할 일만 한 것 같아, 이번엔 일도 좀 욕심을 내보고 싶기도 했다. 사실 문서를 뚝딱 만들고 계획을 척척 세우고, 어떤 것을 전체적으로 보는 안목을 키우지 못한 채로 지금의 위치까지 떠밀려왔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최대한 민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잡일을 하더라도 많이 배우고 안목도 키우고 싶다 . 그냥 시간만 떼우면서 돈을 버는 직장인으로 사는 삶은 이제 과감히 버리기로 한다.
육아는 이제 교육으로 넘어갔다. 사실 내가 할 몫의 많은 부분을 학원에 맡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관심은 가져야 한다. 저녁시간에 아이들의 일상을 묻고 최대한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야할테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충실히 다양한 추억을 쌓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 와중에 주1회, 총 10회 동화강좌까지 신청해두었다. 바쁜 시기에 무리가 아닐까 망설임이 컸지만, 지금 동화쓰기 끈을 놓으면 영영 하지 못하게 될 것만 같기도 해서 그냥 저질러 버렸다. 처음 몇일동안은 아이들에게 짜증을 많이 냈고수술 휴유증으로 몸이 더 안 좋아서 집에가서는 금방 지쳐 버렸다. 회사에선 가면을 쓰고 괜찮은 척 지내고...이제 일주일이 지나가고 몸도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으니 새롭게 마음을 다져본다.
육아, 살림, 일, 모든 걸 완벽하게 다 잘해내는 건 불가능할테고, 그럴 역량도 되지 않는데 다 잘하려고 하는 순간 스트레스로 더 엉망진창이 될 거다.
그냥 되는 만큼 즐겁게 해보기로 한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란 말에 공감하고 위로 받았는데, 어제 만난 동기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친구의 두 딸은 무난히 사춘기를 보내며 공부와 인성을 두루 갖춘 엄친딸로 자라고 있었고, 남편은 여유롭고 너그러운 사람이었으며, 친정 식구들은 모두 화목하고 잘 살았다. 팀장으로 보직받은 부서의 상사와 직원들 모두가 너무 좋았고, 친구는 주3회 필라테스 년 100권의 독서, 월2회 음악회를 년간 목표로 삼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했다. 참 열심히 살아서 인생을 잘 관리한 동기가 대단하다 느껴졌다.
그 친구에겐 그런 삶이 행복이였기에 누구 강요하지 않아도 즐겁게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틈틈이 놀고 방황하고 늘어지는 시간이 필요한 한량기질을 어느 정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 그만큼은 살지는 못할 것 같다. 그냥 내 역량이 되는 만큼 내가 즐겁고, 약간의 스트레스를 동반해도 너무너무 하고 싶은 일들을 즐겁게하면서 나도 차곡차곡 순간 내 삶이 꿈꾸던 모습에 가까워졌음을 느끼도록 살아가고 싶다.
이제 다시 워킹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