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Mar.3)
개학이다.
아홉시가 되어야 아침을 먹던 두 딸이 여덟시 이십분에 학교로 나섰다. 새학기에 대한 설레임으로 재잘거리던 아이들이 현관문을 나서자 집안이 고요로 가득찼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 늘 그랬듯 청소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 새학기 스케줄을 어떻게 짤까 컴퓨터에 앉아 고민한다. 한달 후면 2년 6개월의 달콤한 휴직을 마치고 이제 다시 워킹맘으로 돌아간다. 한번도 워킹맘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기분인데, 복직이 이렇게 두려운 이유는 워킹맘으로 살아가던 시절의 그 분주함을 절실히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현관에 서서 아이들에게 손을 흔드는 대신, "빨리빨리"를 외치며 우르르 아이들을 몰고나가 급하게 인사를 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아이들 얼굴을 마주 하겠지. 집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다독이던 엄마를 저녁이 되어서야 간신히 볼 수 있을텐데, 아이들 마음은 괜찮을까?
그 빈틈을 느끼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만큼 아이들이 자랐기를 바래본다.
11살, 9살.
현재 대한민국 나이로는 둘이 합쳐 딱 스무살이다. 두 딸은 모두 집에서와 밖에서 모습이 다르다.
첫째 감동이는 집에선 '허당선생'이라 불리우며 각가지 기상천외한 실수로 가족들을 놀래킨다. 학원을 가면서 교재를 하나도 안 가져간다던가, 새로 산 자켓이나 가방을 잃어버리고 온다던가, 다음 날이 콩쿨인데 책을 학원에 두고 온다던가....원래 나만 하던 실수를 큰 아이가 골고루 나눠서 하고 있다. 엄마의 엄청난 구박을 받으면서. 헌데 밖에선 더없이 똑순이처럼 행동한다. 타고난 학습에 대한 욕심과 엄청난 독서량 덕분에 그럭저럭 '공부 잘하는 초등학생' 대열에 서있다. 또래에 비해 목표지향적인 성향이 강해서 뭐든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아이는 학교 수업 시간에 하는 모든 활동에 진심이다.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재밌냐고 물으면 "오늘 수업 시간에.."라고 시작한 이야기는 거의 수업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아이 이야기 속에 친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 성향이 친구들과 관계에선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집에선 실수를 해서 혼나고, 밖에선 너무 완벽해지려고하다 보니 관계를 놓치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잘 살고 있다. 감동이에게 무언가를 더 잘 하는 건 이제 충분하니 이젠 뭔가 함께 할 수 있는 걸 해보라는 말은 수도 없이 했다. 그러니 아이를 믿고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
막내 행복이는 딱 봐도 막내다. 집에선 모든 가족들이 행복이를 아기처럼 대한다. 아침 잠에서 일어나 식탁까지 걸어나 온 적이 드물다. 아침 잠이 많은 아이를 거의 안거나 업어서 식탁에 앉혀야 행복이 졸린 하루가 깨어난다. 행복이만 보면 아빠나 엄마나 아직도 혀가 짧아진다.
"아구~그랬떠요, 행복이 이거 했떠요?"
이런 우리 부부의 말투에 시어머니는 왜 아기취급이냐고 나무라셨지만 이런 언어는 그냥 자동반사적으로 튀어 나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이는 타고난 사랑꾼 기질과 배려심이 있어 가족들을 잘 웃게하고 만든다.(물론 이런 면이 언니에겐 눈엣가시이기도 하다.) 한 번에 드라마틱한 결과를 내지는 못하지만 특유의 아이답지 끈기와 세심함으로 자기 할 일을 엄마 도움 손길이 거의 없이 척척 잘해낸다. 그런 행복이는 밖에선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른들이 자신에게 너무 잘해주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아이는 특히나 어른들 앞에서 목소리를 듣기가 힘들다. 왠만하면 나서서 발표를 하거나 자신을 표현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행히 깨발랄한 친구가 같은 반이 되어서 어제 쉬는 시간에는 '선생님을 깜짝 놀래켜주는 놀이'를 했다고 했다.
아, 이 개구쟁이 같은 발언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세상이 안전하다고 느껴지면 이 아이는 날개를 활짝 펼칠 것 같다.
음, 써놓고 보니 두 아이에 대한 억양이 다르다. 첫째와 둘째를 다른 선에 두고 보지 않기. 비교하지 않기.
혼자 나이 마흔 넷이 된 엄마는 또 다짐한다.
"넌 몇점?"에 "친구들은?"이란 사족을 붙여 욕심 많은 아이의 경쟁심을 부추겼다. 고치려고 노력했고 서서히 좋아지는 중이다. 내 인생 전반에서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서 불행하던 엄마가 아이와 그 친구들을 놓고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아이까지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만 같아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세상의 아이들은 그냥 모두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주고 인사하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어른에겐 마음을 활짝 열어준다. 내 아이만 특별한 눈으로 보지 않고, 우리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볼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그런 어른들이 많아지면 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훨씬 더 따뜻하고 행복해질테니까!
오늘도 두 아이가 학교에 다녀오면 두 팔 벌려 꽉 안아주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귀를 쫑긋하며 들어주고 마구 공감하면서, 아이의 고민을 절대로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같이 해결할 수 잇는 엄마가 되기 위해 마음 수련해야지. 100마디 말보다 행동 하나가 내 아이를 바꿀 수 있다. 이미 세상의 모든 교육과 육아의 진리를 섭렵했는데, 실천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