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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23. 2020

연인 vs 부부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

    평범하고 여유로운 토요일 저녁이었다. 우리는 치킨을 한 마리 시켜 놓고 과메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남편은 과메기를 좋아한다. 사실 과메기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껍질을 벗겨야 하고 배추와 다시마를 씻어야 한다. 마늘쫑하고 마늘편도 준비하고 초장은 작은 그릇에 잘 옮겨 담아야 한다. 그런 일련의 작업을 남편과 둘이 하고 있었다. 우리는 손발이 잘 맞는 편이라서 기분 좋게 역할을 분담해서 준비를 착착 해 나가고 있었다. 그때 주문했던 치킨이 도착했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막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바삭하게 튀긴 치킨을 뜯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토요일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이다. 그때만은 회사의 골치 아픈 일들도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처럼 멀리 물러나 버린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과메기를 손질하던 손을 씻고 거실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때까지 너무 치킨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남편의 표정이 변하고 있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 같이 하다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남편의 목소리가 곱지 않았다.

" 과메기는 당신이 좋아하는 거잖아. 나는 과메기 좋아하지도 않는데. 당신이 준비해서 먹어"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보아하니 기분이 틀어진 것 같았다. 남편은 화가 나면 늘 그러는 것처럼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나도 딱히 남편의 기분을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남편은 그러고도 조금 더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기다리는 눈치더니 점퍼를 손에 들고 집을 나갔다. 그것도 자신이 지금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똑똑이 알라는 듯이 현관문을 거칠게 닫고 나가 버렸다.


    상황이 심각했다. 손질하다 만 과메기는 그대로 식탁에 놓여 있었다. 저 과메기를 다시 잘 포장해서 냉장고로 집어넣는 것도 심란한 일이었다. 내가 너무했나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치킨이 예상보다 너무 빨리 온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저러나 이 난리통에 치킨은 이미 식어 버리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 화났어? 아빠 어디 갔어?"하고 자꾸 물어댔다. 토요일 저녁의 평화는 이미 산산이 부서져서 날아가 버렸다.


    방학이 되면 나는 고향으로 내려가서 그곳에 있는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그 학교는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야 하는 외곽에 있었다. 그 학교 학생들은 방학에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할 만큼 열성적인 학생들은 아니었다. 도서관은 텅텅 비어 있고 교정은 문을 닫은 것처럼 썰렁했다. 덕분에 나는 갈 때마다 조용한 곳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때 K(현재의 남편)는 콩나물 배달일을 하고 있었다. 남자 친구 아버지는 새벽에 콩나물 배달을 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하고 돌진하는 무면허 운전자의 차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결국  남자 친구의 아버지는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장기 입원을 해야 했고 집의 생계가 막막해지자 장남인 남자 친구가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K는 친척이 타고 다니던 커다란 돼지 트럭을 빌려서 새벽에 콩나물 배달을 시작했다. 그리고 배달일이 어느 정도 끝난 점심때쯤 나를 보러 학교 도서관으로 찾아왔다. 남자 친구가 커다란 돼지 트럭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 저렇게 커다란 차를 운전하다니~꽤 멋있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랬다. 돼지 트럭에서 내린 남자 친구의 몸에서는 땀냄새와 돼지 냄새가 섞인 묘한 냄새가 났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비이성적인 환각 상태에서도 이마를 찡그리고야 말게 하는 독한 냄새였다.


    그런데 문제는 밥이었다. 이 남자는 새벽부터 빈 속으로 일을 하고 나를 찾아왔으니 배가 몹시 고픈 상태였다. 학교에는 방학이라 구내식당이나 매점조차 운영하는 곳이 없었다. 다행히 나는 그때 도시락을 싸 갖고 다녔다. 엄마가 아침부터 김치전, 멸치볶음, 소시지 계란 부침 같은 걸 만들어서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이었다. 하지만 도시락은 당연히 1인분이었다. 그때 K 나는 비밀 연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도시락 2인분을 싸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매번  K에게 그 도시락을 통째로 양보했다. 그는 너무 허기지고 삶에 지쳐 보였으니까. 그의 나이 고작 22살이었다. 아직 세상이 뭔지도 알기 전에 그런 커다란 트럭을 끌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면서 새벽부터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도서관에 앉아만 있으니 소화가 안 되나 보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면서 나의 도시락을 온전히 그에게 넘겼다. 그는 미안해하면서도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어 치웠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꽤 행복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때나 지금이나 나의 소화능력은 왕성한 편이다. 그리고 공부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열량 소모가 크다. 나는 그가 내 도시락을 비우고 가 버리면 오후 내내 허기에 시달렸다. 학교 안에는 뭔가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었다. 그럴 때 나는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학교 밖을 나와 한참을 걸어서 먹을거리를 구해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내 사랑은 도시락까지 통째로 내어줄 정도로 지고지순했다.


   과메기 손질하던 것을 내던지고 치킨으로 몸을 날린 나를 배신자로 규명하고 집을 나간 남편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 몇 번을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자 걱정도 되고 짜증도 나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재우고 나도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다행히 남편이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 남편은 왼쪽 얼굴이 완전히 갈려져 있었다. 어릴 때 천지 모르고 뛰어놀다가 아스팔트에서 '퍽'하고 넘어졌을 때 생기는 그런 상처였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물었더니 술을 먹고 들어오다가 아파트 입구에서 넘어져서 그 모양이 된 거라고 했다. 많이 아플 것 같아 걱정이 되면서도 나도 모르게 이빨 사이로 웃음이 실실 나왔다. 왜냐면 그 상처는 성인 남자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상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빈정이 상해서 거리를 배회하던 남편은 어느 작은 이자까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손님이 없어서 하루 종일 심심했던 젊은 사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장과 남편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술기운 때문인지 금세 친해졌다고 한다. 그 사장은 남편의 얘기를 듣고 나서는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고 같이 속상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나중에는 둘 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의형제를 맺기로 하고 사장은 남편이 나올 때 술 값도 받지 않았다. ' 의형제 사이에 이러는 거 아니다'라고 호기롭게 소리쳤다나 뭐라나. 가끔 남자들은 술에 취하면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유치한 구석이 있다.


  " 그래서 그 꼴을 하고 어떻게 회사를 갈 거야? "

  남편은  자기도 생각을 많이 해 봤는데 분리수거하다가 계단에서 구른 게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양쪽 손에 물건을 들고 있다가 발이 꼬여서 그대로 넘어진 걸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믿어줄지 또 걱정을 한다.  


   요즘도 나는 한 번씩 묻는다.

"그 의형제 맺은 분 안 만나?"

그러면 남편은 부끄러워하면서 씩 웃는다.


  20년 전에 도시락을 기꺼이 내어 주던 사랑이라는 감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졌다.

그때는 내가 먹을 음식을 다 내어주고도 배고프지 않다며 희생적이었다면 지금은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 자신의 배를 먼저 채울 정도로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변했다. 왜냐면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고 편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진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편이 개구쟁이 꼬마처럼 얼굴을 갈고 나타났을 때 약을 발라주던 손은 누구의 손이란 말인가. 그것은 변함없는 같은 손이다. 남편에게 도시락을 통째로 내어주던 그 지고지순한 손이란 말이다.  




사진출처https://matzzang.net/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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