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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17. 2020

집과 행복의 상관관계

   엄마는 뒷집 노부부가 언제쯤 돌아가실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고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노부부는 새벽이면 일찍 일어나 같이 산에 오를 만큼 정정했다. 가끔 장이 서는 날이면 손을 잡고 시장 구경을 가기도 했다. "저렇게 재미있고 다정하게 살면 100살까지도 살지 않으실까? 그런데 난데없이 그건 뭔 소리예요?" 난데없는 엄마의 말에 우리는

의아했다.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어이없게도 뒷집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뒷집은 마당이 있는 양옥집이었다. 마당에는 여러 가지 화초들을 키우고 화분들도 여러 개 밖에 내놓았다. 대문은 빨간색 철제 대문이었다. 그 집 할머니는 해가 좋은 날이면 장독대를 반들반들하게 닦았다.  노부부는 가끔 마당에 의자를 내다 놓고 앉아 있었다. 어린 우리 눈에도 부러운 풍경이었다.


   봄이 되면 우리는 뒷집에 허락을 구하고 마당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다. 마치 우리 집 마당에서 사진을 찍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그때 나는 이미 철이 좀 들었는지 남의 집 마당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는 게 못마땅했다. 그래서 마지못해 한 두장 찍고 그만뒀다. 하지만 엄마는 고운 옷을 입고 나와서 나무 밑에 앉았다가 동생을 안았다가 여러 장을 찍고 사진을 인화해서 거실에 걸어 놓았다.


  사실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볼품없는 집이었다. 우리 집은 작은 길에서 코딱지만 한 가게를 하고 있었다. 가게는 과자 몇 개와 아이스크림 같은 걸 파는 작은 구멍가게였다. 그리고 뒤로는 방이 세 칸 있고 옛날식 부엌이 있었다. 제일 심한 것은 화장실이었다. 우리 집은 푸세식을 쓰다가 마당에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었는데 기술도 제대로 없는 사람을 불러다가 만들어서 툭하면 막히곤 했다. 게다가 마당에는 방이 한 개 있었는데 별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방이었다. 그 방은 평생 미장일을 하던 할아버지의 작품이었다. 할아버지는 근처 공사장에서 벽돌하고 자재를 얻어 와서   방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방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얼음장이었다. 겨울에 아무리 불을 때도 그 방은 밖이나 진배없이 입김이 나왔다. 한창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싶을 나이였지만 웬만큼 마음을 먹지 않고는 그 방에서 잘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내 뒷집을 부러워했다.

" 저렇게 마당이 넓으면 상추도 키우고 고추도 키우고 웬만한 건 다 키울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나와서 쉬기도 하고 얼마나 좋을까?"

" 집이 넓고 좋으니까 저 노인네들 표정이 얼마나 좋아 보이냐. 집이 좋으면 절로 웃음이 나는 거지"


  그런데 뒷집 할아버지가 정말로 돌아가셨다. 자다가 심장마비가 왔는데 손도 써보지 못하고 갑자기 가신 것이다. 대구에 살던 아들과 며느리가 와서 장례를 치르고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그리고 짐을 대충 리 하더니 집을 내놨다.


  엄마는 마음이 바빠졌다. 매일 보면서 갖고 싶어 하던, 살고 싶어 하던 집이었다. '설마 저 집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나오겠어' 하고 포기했는데 바로 그 집이 거짓말처럼 매물로 나온 것이다. 게다가 아들은 집을 빨리 처분하고 싶었는지 시세보다도 훨씬 낮은 가격에 내놓았다.


  엄마는 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빠가  반대를 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설명으로는 살고 있는 집을 기준으로 뒤쪽 방향에 있는 집은 원래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집도 오래되어서 못 쓴다고 강경한 어조로 주장을 했다.


   사실 아빠의 설명은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일단 우리는 그 집을 뒷집이라고 불렀지만 엄격하게 보면 꼭 뒷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약간 방향이 애매했다. 그 집은 정원도 잘 관리되어 있고 내부도 쓸만해서 누구나 탐낼만한 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간절하게 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아빠가 마음을 돌리기를 바랐지만 아빠는 마음을 돌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고집스럽게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아빠에게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다. 아빠는 옷을 사러 가서도 엄마가 골라주는 옷이나 넥타이는 절대 사지 않았다. 감각이 없고 촌스럽다는 게 그 이유였다. 같이 옷을 사러 갔다가 면 엄마는 여지없이 기분이 상해 있었다. 점원이 골라 주는 옷은 연신 좋다고 하면서 엄마가 권해 주는 옷은 꼭 핑계를 대고 다시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아빠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처럼 무조건 싫다는 식이었다. 결국 엄마는 더 이상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집은 팔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집을  산 사람은 엄마와 사이가 안 좋은 감자탕집 아줌마였다. 그 아줌마는 평소에 사람 속 뒤집는 말을 잘했다.

"가겟집 아저씨는 가게 문 닫을 때 도와주지도 않나 봐. 힘들어서 여자 혼자 어떻게 해?"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그 아줌마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그 아줌마가 뒷집을 사버린 것이다. 집은 웬만했기 때문에 크게 수리할 필요는 없었는지 아줌마는 몇 군데만 손을 보고 이사를 왔다.


   엄마는 힘이 주욱 빠졌다. 동네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옆으로 이사를 온 데다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집을 눈 앞에서 놓쳤다. 우리 집 마당에서는 뒷집 마당이 잘 보였는데 엄마는 마당에 멀거니 서서 그 집 마당에 새로 뭘 심었는지 가족들이 뭘 하는지 확인하고는 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제 그 집에 살 가능성은 1도 없어졌는데 엄마한테는 이제 그 집이 아닌 다른 집은 의미가 없었다.


 

   얼마 전부터 뒷집에서는 커다란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개한테 운동을 시키는지 공을 벽에 던지고 개가 주워오고 했다. 그 소리는 조용한 동네를 꽤 괴롭혔는데 밤만 되면 벽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리고 가족들의 웃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 개가 나와서 운동을 하는가 보다. 마당이 저렇게 넓으니 사람도 개도 좋겠지. 저 집 사람들은 어떻게 맨날 저렇게 웃는지 모르겠다. "


  엄마는 햇빛이 마당에 가득 흘러넘치고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던 그 집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래서 그 환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가서 살면 우리도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엄마가 원했던 것은 집이었을까. 그 집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행복한 기운이었을까.


  엄마는 아직도 그 집에 대한 간절함을 떨치지 못했다. 여전히 같은 곳에 살면서 그 집을 바라보고 그 집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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