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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07. 2020

방배동 총각 도령의 예언

  우리는 최대한 옷을 갖춰 입었다. 점 보러 가면서 굳이 옷을 잘 갖춰 입고 갈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그곳으로 향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사람은 방배동 총각 도령이다. 그 총각이 어찌나 용한지 기가 막히게 현재와 미래를 알아맞힌다는 것이다. 남편은 육 개월 전에 그 점집을 예약했지만 대기가 밀려서 육 개월이나 지난 후에 우리는 점을 보러 갈 수 있었다. 한 번도 점집에 가 본 적도 없었거니와 내가 점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점쟁이들이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다면 일단 자기들부터 잘 살고 볼 일이지. 그렇게 골방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 점괘나 봐주고 있겠냐는 게 평소 점집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점쟁이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 재미있다. 그 무엇도 단정하거나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상황을 이해 불가라고 쯧쯧 혀를 차기에는 우리 모두는 너무나 불완전하다.


 어쨌든 방배동 오피스텔에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총각 도령은 오피스텔을 얻어서 전문적으로 점을 봐주는 총각이었다. 그는 최근에 신내림을 받았는데 신내림을 받은 직후가 영험함이 제일 좋을 때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총각의 영험함이 시들해지기 전에 점을 보고 싶어 했고 대기가 길어서 육 개월 만에 순서가 돌아온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어쨌든 운이 좋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우리는 맛집 대기줄에 서 있다가 한꺼번에 단체 손님이 빠지는 바람에 테이블로 안내를 받은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아들에 대한 것이었고 아무래도 듣고 싶은 것은 희망적인 내용이었다.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녀석이 걱정되고 막막했다. 드라마틱하게 아들이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돌변해서 의욕적으로 살아갈 거라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희망적인 얘기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남편과 나는 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기대를 갖고 있었고 사실 이 먼 곳까지 찾아올 때는 기왕이면 좋은 얘기를 듣고 싶었다.


 오피스텔은 생각보다 넓었다. 얼핏 봐서는 가정집과 다를 바 없어 보였는데 주방은 잘 정돈되어 있고 열린 방 안에는 옷들이 보였다. 안방으로 보이는 방에 큰 상이 있고 그 위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총각 도령은 사실 미안한 얘기지만 신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믿기에는 어딘가 어눌해 보였다. 특히나 그는 혀 짧은 소리를 냈는데 개량 한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점쟁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나는 혀 짧은 소리를 내는 이 젊은 총각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기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그의 실력은 누누이 검증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남편은 이렇게 순서가 빨리 돌아온 우리를 주변 동료들이 부러워했다고 몇 번을 강조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공손하게 복채를 올려놓고 그의 앞에 나란히 앉았다. 총각 도령은 뭐가 궁금해서 왔냐고 먼저 물었다. 남편은 아들 때문에 힘들었던  얘기를 하고 나서 언제쯤 철이 들까요? 진지하게 물었다. 그는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나서 걱정할 거 없으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두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거라고 했다. 특히 아이는 유튜버에 재능이 있어서 유명한 유튜버가 되고 나중에 돈도 많이 벌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튜버의 전망이 좋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점쟁이 입에서 유튜버라는 단어와 전망까지 나오니 우스웠지만 그래도 잘 된다는 말에 슬그머니 기분이 좋아졌다. 인간은 참 간사스럽다. 조금 전까지 어딘가 총각 도령이 좀 미심쩍어 보였는데 꽤나 용한 점쟁이인가 하는 생각도 슬금슬금 밀려왔다.

 

 남편은 총각 도령 쪽으로 몸을 당겨 앉더니 혹시 상무가 연임할까요? 묻는다.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다니 어이가 없다. 그런 질문은 본사 인사담당한테 물어볼 일이라는 생각에 나는 실소가 터지려고 했다. 그런데 총각 도령은 진지했다. 손에 연필을 잡고 눈을 감은 채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정적이 꽤나 흐른 후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아무리 찾아도 상무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내년에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기분이 좋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입술이 씰룩거린다.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점쳐 보러 왔는데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본인 인생을 걱정하고 있다니 웃음이 났다. 마지막으로 점쟁이는 우리에게 행복하게 살기는 하는데 부자는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쓸데없이 돈 모은다고 에너지 소모하지 말고 그냥 소박하게 살라는 말도 다정하게 덧붙인다. 우리는 점쟁이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복도로 나오니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서 있다. 트렌치코트를 멋지게 입은 저 젊은 남자는 무슨 사연으로 점집에 왔을까 우리는 서로 멋쩍게 지나쳤다.  


  시간이 지나서 점쟁이의 점괘를 확인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유튜버가 되지 않았고 유명 유튜버는 더더욱 되지 않았다. 남편 회사 상무님은 재계약되어서 오늘도 직원들을 괴롭히며 굳건히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총각 도령의 영험함은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행복하게 살 거라는 점괘가 남아있다. 나는 워낙 씩씩한 편이라 웬만한 일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살겠지.


  부자가 되는 것보다 행복하게 산다는 말이 좋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꽤 괜찮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진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Mobile/img_pg.aspx?CNTN_CD=IE001369807&atcd=A000165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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