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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25. 2020

햄이 없는 써브웨이 샌드위치

써브웨이에 얽힌 기억 하나

    시댁 쪽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척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고속 터미널로 이동하고 서울에서 온 사람들은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중 남편의 고모님이 우리 집과 방향이 같았다. 고모님은 '이번 기회에 우리 조카 차 한번 얻어 타보자'라고 좋아하셨고 우리는 고모님을 태우고 출발했다.


   고모님이 특이한 분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특이함이라는 게 긍정적인 특이함은 아니었는데, 고모님은 같이 있으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고모님은 부동산과 땅 투자로 재산을 일궜는데 그 재산이 엄청나다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러나 그렇게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지독한 짠돌이였다.


   고모님과의 인연은 결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세 자금이 부족했던 우리는 신혼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그때 고모님이 연락을 주셨다. 전셋집을 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고모님이 전세 주는 아파트가 마침 비어 있으니 혹시 생각이 있냐는 것이었다. 우리한테 그렇게 세심하게 마음을 써 주는 것에 감동했는데 나중에 고모님이 제시한 전세 금액은 시세보다도 훨씬 비싼 금액이었다. 고모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했을까? 고마웠던 감정은 황당함으로 변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고모님과 차에서 특별히 할 얘기는 없었다. 고모님은 우리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리기로 했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집 구경을 한 번 해 보자고 하셨다. 당황스러웠다. 결혼식에 늦어서 급히 뛰어나가느라 다리미도 정리하지 않았고 싱크대에는 아침에 먹고 씻지 않은 설거지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은 오르막에 있는 복도식 아파트였다. 아파트는 경사가 심한 언덕 위로 빌라와 낡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을 지나 끙끙거리고 올라가야 하는 높은 곳에 있었다. 그때 우리는 막 결혼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금이랄 것도 없었고 그 아파트가 직장에서 가까워 불만이 없었지만 고모를 모시고 가기에는 꺼림칙한 게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집안 어른의 부탁을 단칼에 자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보아하니 남편도 곤란해하는 눈치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그렇게 하시자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해서 고모님은 우리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고모님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집 보러 온 사람처럼 집을 구경했다. 사실 작은 평수라서 딱히 훑을 것도 없었는데 역시 부동산 투자로 잔뼈가 굻은 분 답게 매의 눈초리로 집을 탐색했다. 남의 집을 저렇게 둘러보는 것은 좀 예의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은 오랫동안 수리가 안 되어 있어서 몰딩도 색이 바랜 민트 색이었고 욕실도 입주하고 나서 리모델링을 한 적이 없어서 낡은 상태였다. 어쨌든 집 구경을 끝낸 고모님은 자리에 앉더니 물 좀 달라고 하셨다.


   물을 들이킨 고모님은 딱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셨다. "너희들 임대 아파트 같은데 못 들어가니? 집이 참 기가 막힌다"

"저희가 지금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임대아파트 들어갈 조건이 안 돼요. 일단 여기에 살면서 돈을 모아야죠. " 남편의 담담한 대답에 고모님은 오히려 더 안타까워했다. " 이렇게 오르막이 심해서 어떻게 사냐? 겨울에 길이 얼기라도 하면 올라오지도 못하겠다. " 점점 더 고모님이 불편해졌다. 고모님은 우리와 그런 문제를 고민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우리가 전셋집을 구할 때 시세보다 비싼 가격으로 우리에게 세를 주려고 했던 사람 아닌가 말이다.


  그 후로도 고모님은 일어날 생각을 않고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고모부님이 공무원 생활하면서 벌어온 그 적은 월급으로 어떻게 저축하고 투자해서 이렇게 부자의 반열에 올랐는지, 그리고 그 세월을 어떻게 버텼는지 그런 얘기들이었다. 재미있을 턱이 없었다. 어서 고모님이 빨리 떠나 주셨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마침내 고모님은 가야 되겠다고 했다. '그래도 결국 끝은 있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남편과 나는 고모님을 지하철역까지 차로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고모님은 내릴 때쯤 되어서 깜박 생각난 것이 있다고 했다. 지하철역 앞에 써브웨이 매장이 있는데 거기가 고모님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거다. 거기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줄 테니 싸가지고 가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괜찮다고 몇 번이나 거절을 했는데도 고모님은 막무가내였다. "내가 차도 얻어 타고 오늘 고마워서 그래. 어차피 내 친구가 하는 곳이라서 얼굴도 보고 가야 하고. 잠깐만 기다려라" 그래서 남편과 나는 밖에서 고모님을 기다렸다. 우리는 둘 다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때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라서 써브웨이를 자주 먹지 못할 때이기도 했다.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고모님은 우리에게 써브웨이 샌드위치 종이백을 건네주고 유유히 떠나셨다.

" 맛있게 먹어라. 그리고 다음에는 좋은 집에 이사 가서 구경 한번 가보자."


   불편한 막대기가 하루 종일 나의 삶을 들쑤시는 기분이었는데 고모님이 떠나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이렇게 굳이 샌드위치를 챙겨 주시는 거 보면 의외로 정이 많으신 성격인가 싶기도 했다.


   우리는 집으로 와서 써브웨이 포장을 뜯었다. 그런데 샌드위치 안에는 토마토, 양상추, 오이, 양파만 들어 있었다. 2개 모두 햄이나 고기가 들어 있지 않았다. " 어떻게 된 거야? 써브웨이에서 실수를 한 건가?" 황당했다.

남편의 짐작으로 고모님은 애초에 써브웨이를 사서 넣어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친구에게 공짜로 몇 개 부탁을 하고 미안하니 고기나 햄은 빼 달라고 한 거 같다는 것이다. 이리저리 이야기를 맞춰보니 그 짐작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써브웨이로 가서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우리는 애써 고모님의 좋은 의도만 좋은 마음으로 받자고 서로 위로했다.


    그런데 써브웨이 샌드위치는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맛이 아니었다. 써브웨이 샌드위치에는 햄이나 닭고기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야채는 맛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었다. 우리는 야채가 가득 든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지치고 상처받은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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