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만 32세(92년생). 4살 연상의 남편과 4살 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또래에 비해비교적 일찍 결혼을 한 편이다. 대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바로 시작하기도 했지만, 대학 4년과 휴학기간 1년을 포함하면 26살에 결혼을 했다는 게 얼마나 빠른 건지 실감할 수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특정 아이돌을 열렬히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대상으로 열심히 팬픽을 썼다. 또래 남자애가 말을 걸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짝사랑을 밥 먹듯이 하던 그 시절. 나의 10대는 인터넷 소설 속에서 간접연애만 해도 행복이 넘치던 시기였다.
꼭 그 영향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문예창작학과로 진학을 했다. 그곳에서도 절반은 순문학을 읽고 쓰며 정진해나갔다면 나머지는 복수전공이나 전과를 하며 다른 길을 찾아갔다. 나는 학과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저 두 부류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단아 같은 존재였을테고, 때로 선배들은 나를 '글의 깊이가 얕은 후배'라 불렀다. 내가 쓰는 글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랑이 있었다. 글의 깊이가 얕다고 할지언정 나는 사랑이란 주제를 한 번도 얕게 사용한 적이 없었다.
20살 3월부터 쉬지 않고 사랑을 했다. 연애는 중앙동아리에서 하라는 과선배의 조언으로 기타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거기서 공대오빠에게 첫눈에 반해 "이게 사랑인가!"를 외쳤던 적도 있었는데, 결국 썸만 타다 만나보지도 못했다. 다음은 학과선배에게 푹 빠져 1년 동안 짝사랑을 했다. 그는 항상 내 동기랑 나를 같이 불러 밥도 술도 커피도 다 사주곤 했었다. 그 결말은? 당연히 그가 고백을 했다.
내 동기에게.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그날 기숙사가 떠나가라 울었다.
그래도 이후에 군대 휴가를 나와서부터 나를 좋아했다던 복학생 선배와 2년 연애를 하고, 또 카페에서 휴대폰 번호를 물어본 알바생과 6개월 연애를 했다. 모든 연애의 시작은 인터넷 소설처럼 그 이상 로맨틱할 수가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연애를 하면 할수록 사랑이 어려워졌을까?
카페 알바생과의 이별 직후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났다. 서로의 정보를 알고 만나는 자리, 내가 추구하던 로맨스는 전혀 아니었다. 그가 데려간 상암동 초밥집. 오랜만에 입은 불편한 치마로 계단을 오르내렸던 기억과 카페에서 본인 어필을 끝없이 해서 그걸 열심히 들었던 기억 정도. 로맨스병에 빠진 내가 그를 만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몇 번의 거절에도 남편은 끝없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한 후에도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했다.
그때 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해 자취를 하고 있었다. 고된 3교대 사회생활과 열약한 주거환경까지, 제대로 된 게 없었다. 하루는 남편이 회사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만나자마자 내가 구토를 했다. 불규칙한 수면과 식사 그리고 스트레스까지 쌓여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때 거리낌없이 등을 두드려주고 길가를 치워주던 모습에 믿음이 갔던 거 같다. 20대의 나는 그걸 그냥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앞으로 적어나갈 글은 내가 사랑이 하트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길고 긴 여정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