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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r 25. 2022

노란 집

 

5)

친구들 몇몇은 채 치우지 못한 민준이의 옷 견지와 나머지 유품들을 챙겨서 어머니를 모시고 민준이 유골이 뿌려진 혈흔천으로 갔다. 나머지 옷을 태우고 그 재 먼지를 혈흔천에 띄워 보내는 내내 짧은 생을 살고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민준이의 허탈한 인생, 넘치는 행복 때문에 늘 불안해하던 홍연이의 재수 없는 그 말에 정말 질투의 화신이 듣고 마술이라도 부려서 홍연이에게서 민준이를 빼앗아 가버린 것 일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윤희의 머릿속에서 맴돌며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대던 홍연이가 어처구니없이 얄미웠다. 그렇게 행복한 순간순간에도 뿌리칠 수 없는 불안감으로 떨던 홍연이었다. 너무나 소중해서 사라질 가봐 전전긍긍하던 그녀, 그래서 끝내는 그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흔들거리고 있다. 풀잎에 스쳐도 넘어져 쓰러질 것 같은 홍연이의 그 상실감과 허탈로 속까지 다 비워진 실낱 같은 그녀를 옆에서 껴안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옆에 준희가 서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가? 이런 얄미운 생각은 꼭 이 시점에서 떠올라야 했을까? 보이는 그림에서 비치는 허상 같은 것이다. 이름 못할 불안이 머리를 쳐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민준이의 그 허무하게 짧은 인생에 화가 나서 왕왕 울어버렸던 그날, 윤희와 그녀의 친구들은 가져온 술을 눈물로 안주삼아 강에 한잔 우리 한잔 하면서 취하도록 마셔 댔다. 그냥 취하도록 마시고 죽고 싶어 졌다.
 그날따라 붉게 타오르던 석양은 온 강변을 빨갛게 태우고 붉은 눈물을 줄줄 흘려 혈흔천을 더 붉게 물 드리며 유유히 흘러갔다. 또 하나의 아픔을 품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이 강물,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아픔 없이 바라볼 수 없는 이 강의 끝은 어디일지 그 끝에 민준이가 있을까? 어린 시절에 엄마의 유골이 뿌려진  이 혈흔천을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고 싶었는데 늘 이 강의 끝에 서 계실 것 같은 엄마를 찾아 강을 따라 무한정 가고 싶었는데 지금 윤희는 또 민준이의 유골을 삼킨 채 유유히 흘러가는 이 강을 따라 그 끝에 흘러가고 싶어 하고 있다.
 저녁 강바람이 취기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주면서 불어온다. 그냥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 자갈밭에 쓰러져서 자고 싶다. 아들을 잃고 넋을 잃은 민준이 엄마도 남자 친구를 잃고 실의에 빠진 홍연이도 다 귀찮아졌다. 눈을 감으니 속없이 능글거리던 민준이 준수한 얼굴이 클로즈업이 되어 떠오른다.
 “언제 왔어?”
 “낮에 홍연이가 너 랑 헤어졌다고 울며불며 전화를 해대서 너 랑 따지러 왔어!”
 “지쳐버렸 어! 까만 벌레들 무리 속에 갇혔는데 빠져나올 수가 없었 어. 어떻게 겨우 빠져나오긴 했는데 그만 귀 아래 목이 따끔하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 같아. 깨어나 보니 하얀 시트가 쓰인 병원 침대에 내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눈도 코도 없는 민둥민둥한 도깨비 같은 저 아저씨는 자꾸 갈 시간이라고 재촉하고 있어.  홍연이가 저렇게 자꾸 우는데 너무 걱정 되잖아. 네가 좀 지켜 봐줘.”
 “말 두 안돼? 너만 찾고 있는 애를 무슨 수로 지켜? 그 아저씨 따라가지 말고 홍연이를 어떻게 해봐. 저러다가 송장 치르게 생겼 어!”
 “나는 가야 한다니까! 네 눈에는 저 도깨비 같은 아저씨가 안 보여?”
 민준이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렁거리는 강우로 가볍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뒤로 안개가 서서히 민준이와 도깨비 아저씨를 삼키면서 피어오른다. 그 뒤로 하얀 강아지도 눈부시게 하얀빛을 뿌리며 사라지고 있었다.
 “민준아! 안돼 민준아! 건너지 마!”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민준이 목소리인 거 같기도 하고 민희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눈을 떠보니 민희였다. 윤희는 그만 울어버렸다. 이 친구한테 기대서라도 한바탕 울어야 가슴속에 뭉쳤던 서러움이 풀리고 숨통이 틔어 숨을 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민준이가 갔어! 그 도깨비 아저씨 손에 잡혀서 끌려가는 걸 보고만 있었어!"
 흐느끼는 어깨를 감싸주고 다독여주는 민희도 울고 있었다. 세상 모두가 슬픔에 흐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시린 마음을 기대고 아득하게 밀려오는 거대한 적막으로 견디기 어려운 슬픔에 갇혀버렸다.

어느새 밤의 검은 면사포가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고 밤하늘에는 누가 빼먹은 것 같이 듬성듬성한 별들이 깜박깜박 졸고 있었다. 강우에 가로놓인 아치형 다리 위로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어디론 가  빨간 불을 켜고 꽁무니를 빼고 있는 모습들이 보여도 갈 곳을 잃어버린 그들의 시간은 이곳에 정체된 채로 강변에 굳어져버렸다.
 얼마나 마셔 댔는지 취한 친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 머리를 사타구니에 처박고 돌 멍석처럼 앉아있다. 홍연이는 옆쪽에서 준희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달빛 아래 처절하게 창백해진 얼굴은 흡혈귀한테 모든 피를 빨려버린 듯 질리도록 하얬다. 이 시각 홍연이 옆에서 그녀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준희를 보면서 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민준이가 너무나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며 도로 눈을 감았다.
 ‘그래 너라도 걔 옆에 있어줘!’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한가 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는가? 홍연 바라기 준희라면 민준이 못 지 않게 홍연이를 사랑해 줄 수 있지 않을 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민준이에 대한 미안함에 머리를 돌리려 하니 가슴이 더 쓰라리다. 가혹한 징벌을 내릴지라도 지금은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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