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커터와 딴따라

내 몸엔 딴따라의 피가 흐른다

by BOSS


한국에서 이민을 준비할 때만 해도 인터넷이나 온라인에 정보가 지금과 같이 많지 않아 알음알음으로 아니면 카더라 하는 시중에 떠도는 설에 의존하던 때였습니다. 보통 출발하기 한 달 전쯤 이삿짐을 먼저 보내는 게 일반적이어서 업체에 연락해서 견적 요청을 하면 집으로 직접 방문하여 가져 갈 이삿짐의 포장 박스의 예상 개수, 부피와 무게를 예상하여 금액을 알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견적을 끝마칠 때쯤 업체에서 나오셨던 분이 이야기하시더군요.


"캐나다는 화장실 휴지가 많이 비싸다던데 충분히 준비하셔서 이삿짐 포장할 때 박스 안 빈 곳에 완충재로 넣어가면 무게도 별로 안 나가고 좋습니다"

"이발소 미장원 비용이 엄청 비싸다던데 미용실이나 이발소에서 쓰는 전기 커터나 가위는 준비하셨어요?"


그분들이 떠나고 와이프와 저는 얼굴을 마주 보며 다시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체크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빠졌습니다. 설마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인데 화장실 휴지가 비싸려고.. 아니다 서비스 비용이 비싸니 이발소, 미용실 비용이 비싼 것은 맞는 말이겠다.


결국 미용실 물품을 판매하는 도매시장에 가서 충전식 무선 헤어 커터를 구입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헤어 커터는 이민 후 8년 정도 정말 요긴하게 제 머리, 와이프 머리, 아이들 머리, 함께 이민 온 반려동물 털 깎을 때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한 번도 사용해 본 경험이 없다 보니 초기에는 와이프가 제 머리를 조금 트리밍 하다 힘 조절에 실패해 그냥 확 밀어버려 고속도로나 땜빵이 생기는 사태가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도 닦는 기분으로 시원하게 전부 다 밀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괜찮아 길게 자라서 다시 자르면 되지."


빡빡 깎은 머리로 출근하면 직장동료들 중 아무도 머리에 대해서 묻지 않았는데 이곳의 특성상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일은 본인이 직접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가급적 묻지 않는 게 일반적이어서 그렇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무척 궁금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 묻지 않았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개인적인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두 가지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만일 한국이었다면


"왜 그랬니?"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니?"

"너 사회에 불만이 있니?


같은 많은 질문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독재 군사정권 시대였던 저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학생의 복장(일본식 학생 교복과 모자) 짧은 두발이 철저하게 단속되던 시기여서 짧고 일정한 길이의 스포츠 컷을 위반(?)할 시에는 벌칙이 가해졌고 머리를 빡빡 밀고 등교하는 것도 교권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으로 받아들여져 선생님으로부터 체벌을 받던 서글픈 기억이 납니다.


밀고 또 길렀다가 밀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그냥 계속 길러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명 포니테일 머리(말총머리)나 번(일명 똥머리)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기회가 오면 고티(goatee, 일명 염소수염) 수염과 한쪽 귀에 귀걸이와 포니테일 머리를 해보고 싶었는데 80, 90년대 당시 한국의 사회 통념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지만 그나마 결혼 이후 고티 수염은 기르고 다녔습니다. 결혼 전 와이프와 사귈 때 한쪽 귀걸이, 고티 수염, 머리 길러 묶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러냐고 한번 해 보라며 와이프가 진지하게 격려해주던 기억도 납니다. 수염 기르고 다닐 때 가끔 본가에 가면 어머니께서는 식사 도중 제 얼굴을 몇 번이나 흘낏 보고


"아비야, 밥 먹다 널 보면 정말 수염 때문에 식욕이 떨어지니 면도하고 깔끔하게 좀 하고 다녀라"


라는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직장에서는 피부 트러블이 심해 면도를 자주 할 수 없어서 수염을 기른다는 핑계를 대고 다녔습니다. 퇴사 후 제 개인사업을 할 때는 전혀 거리낌 없이 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캐나다로 이민 와서 머리 길러 포니테일 하고, 고티 수염 기르고 귀 뚫어 한쪽 귀걸이를 하고 다니니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정말 원하면 뭐든지 해볼 수 있다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만끽하고 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와이프가 그러더군요


"당신 몸에는 딴따라의 피가 흐르나 봐, 직업을 정말 잘못 선택했네'"


"딴따라라는 저속한 표현 말고 예술가라 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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