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구직을 위한 좌충우돌의 삶
지금은 한국의 위상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고 생활, 문화, 음악, 패션, 음식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심지어 이전에는 우리가 대단하지 않게 생각했던 작은 것들까지도 세계인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발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의 이민 이전 세대는 캐나다에서의 비즈니스 또는 투자하는 방식의 이민이 주를 이루어 정착하면 주유소, 편의점, 세탁소등 스몰 비즈니스라고 불리는 분야에 많이 종사했습니다. 그러다 밀레니엄이 가까워지던 1990년대 초, 중반부터 캐나다 정부는 IT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특별 직업군을 지정하여 그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위주로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 독립이민(Independent Immigration)의 형태로 바뀌어 기술을 가진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일반적인 직업을 가지고 캐나디안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그 숫자가 늘어나 전문직으로 일하는 이민 1.5세, 2세 심지어 3세들의 숫자가 많아졌지만 저의 이민 초기만 해도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많은 제 세대들과 같이 저도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경력과 인맥이 쌓이자 오로지 열정 하나만 믿고 뛰쳐나와서 개인 사업체를 운영했습니다. 그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IMF 외환위기와 함께 고스란히 말아먹고(?) 거의 가진 것 없이 빈털터리로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온 케이스입니다. 영어 하나는 자신이 있어 '나 갈 거니까 기다려라'는 배짱으로 출국 2개월 전부터 막무가내로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리스팅 된 캐나다 정부와 일반 기업체에 이력서를 보내고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몇 번의 면접 기회를 갖는 행운(?)도 누렸지만 곧 캐나다에서의 경력이 전혀 없어 고용하기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동분서주하다 결국 캐나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실직자들의 재고용 교육프로그램 (사실 자격이 되지도 않았지만 저의 간절함과 담당자의 각별한 배려로)을 받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시 이 교육은 3주의 기간으로
첫 번째 주는 이력서 준비 작성 (resume preparation)
두 번째 주는 직업을 찾는 방법 (job searching)
세 번째 주는 면접 연습 (interview drill)
세가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시작할 때 10명쯤 되던 수강자들은 교육 기간 중 지원했던 회사의 서류와 면접에 통과되어 바로 재취업이 되면서 한 두 명씩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참가자는 저와 영어실력이 좀 떨어지는 중국인 이민자 둘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강사는 제 이력서가 일반직을 구하기에는 필요 이상의 학력이나 경력이 있는 것(over qualified)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며 현장직 경험을 강조한 간단한 수정본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수정된 이력서를 몇 업체에 보내자 바로 연락이 와서 면접 후 다행히 통과되었지만 원하던 연구소직이 아닌 처음 해보는 현장직인 system operator로 캐나다의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설비는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 자주 봐서 익숙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작동하다 보니 경험이 없는 저는 허둥지둥 헤매는 상황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부끄러움과 혼란스러운 마음에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져 버렸지만 곧 한국에서의 경력은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이력서를 기본 포맷으로 필요할 때마다 수정해서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지금 다시 봐도 정말 잘 만든 것 같습니다. 당시 듣기로는 이력서 작성 전문가의 손을 거치면 직종이나 직급에 따라 500 - 1,500불 정도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긴다고 들었는데 이력서 작성에는 정말 큰 도움받은 것 같습니다.
첫 취업 후 현장 일을 하면서 매일 3-4통씩 이력서를 보내거나 직접 회사를 방문해 전달하면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던 중 서류가 통과되고 인터뷰에 합격해 바라던 연구소 품질관리 요원 (quality assurance technician)으로 이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특징인 정말 남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악착같이 일한 결과로 6개월 뒤 같은 갑자기 회사에서 lay off로 인해 공석이 된 quality assurance supervisor 자리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관리자급 직원의 결원이 생기면 그 부서에서 일하던 직원을 자체 진급시키는 경우가 적습니다. 별도의 채용 공고 후 다양한 후보자들의 면접을 통해 최종 결정한 외부 사람으로 자리를 채우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당시 저의 경우는 무척 이례적인 케이스였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채용 시스템을 바탕으로 저는 첫 직장 후 4년 동안 5번의 이직을 통해 운 좋게 연구소 책임자(R&D Manager)까지 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캐나다에서 본인이 원하는 연봉 수준과 managing staff position으로 가려면 이직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계속 업그레이드시켜야만 목표로 하는 위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interviewee에서 지금은 interviewer가 된 지금 가끔 HR(인사과) 직원들로부터 한국 사람들에 대한 농담 같은 우스갯소리를 가끔 듣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과 같이 일을 하게 되면서 3번 놀라는 경우가 있다는데
- 이력서에 기재된 학력이 엄청 높아서 첫 번째 놀라고
- 그 높은 학력 수준과 오랜 영어학습 기간 (못해도 10년 이상)에 비해 영어를 잘 구사하자 못해서 두 번째 놀라고
- 영어를 잘 못하는데 시키는 일은 눈치로 너무 잘해서 세 번째 놀란다고 합니다.
물론 2000년대 초반이었고 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웃을 수 없는 씁쓸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