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을

녹턴

by 윤지WORLD

완연한 가을이다.

난 이 계절을 이은미의 계절이라고 부른다.

녹턴으로 시작해 녹턴으로 끝나고

세상 고상한 척은 다 떨어도 될 것 같은 베이지한 날들.

이런 계절엔 동네 개들이 더 엉금엉금 산책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벤치에 앉아 스탠리 텀블러에 담은 아이스 커피를 홀짝인다.

그러다 진짜 느릿느릿 산책하기 대회에서 1등 할 것 같은 강아지에게 시선을 뺏겼다.

유모차를 밀며 개의 속도에 맞춰 뒤를 따르는 견주 할머니 말씀이

눈도 안 보이고 심장도 안 좋고... 뭐 그렇다고 하신다.

가만 보니 유모차는 할머니를 위한 것이기도 할머니의 개를 위한 것이기도 한 것이었다.

낙엽과 책과 고상함을 운운하다 이상하게 쓸쓸함을 떠올리는 나에게 꼴값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가을이다.

망상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더 날뛰기 전에 욕실청소나 하러 서둘러 일어나는데,

얼마 못 간 자리에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산책을 이어가시는 할머니가 보여 눈 인사 건넨다.

은미언니의 계절엔

낙엽과 책과 할머니와 강아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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