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스트가 돼라. 그러나 가슴에 이룰 수 없는 꿈 하나는 품고 살아라.
-체 게바라 (1928~1967)-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사진을 꼽으라면, 쿠바의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체 게바라의 얼굴 사진이 아닐까? 체 게바라 사후 오십 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의 사진이 프린팅 된 티셔츠를 입는다. 쿠바와 남미를 넘어 인류의 가슴에 별로 남은 그는 여전히 청춘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 비해 그의 생애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체 게바라의 일생을 잠시 돌아보고, 그가 남긴 문장의 의미를 되새겨 보도록 하자.
체 게바라가 이룬 가장 큰 성공은 쿠바혁명이지만, 그는 쿠바인이 아닌 아르헨티나인이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부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빈부의 격차가 컸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었다.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의대에 다니던 23살, 친구 알베르토와 ‘포데로사’라는 별명의 오토바이에 올라타 여행을 떠난다. 8개월간의 여행은 아르헨티나의 의대생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가 혁명가 ‘체 게바라’로 바뀌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25살에 의학박사가 된 그는 안정된 수입과 안락한 집, 멋진 차와 모두가 부러워할 명성을 뒤로하고 과테말라로 떠난다. 그리고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의 진보정권을 공작으로 무너뜨리는 역사의 현장을 목도하고 혁명의 길로 들어선다.
<캡틴 아메리카의 민낯이 궁금한 이들에게 미국의 제국주의적 만행을 고발한 놈 촘스키의 ‘정복은 계속된다’를 추천한다>
과테말라에서 다시 멕시코로 간 체 게바라는 1956년 7월, 운명의 파트너 ‘카스트로’를 만나며 쿠바혁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두 사람은 86명의 동지와 함께 휴양용 요트를 개조해 멕시코에서 쿠바로 상륙했으나, 살아남은 이는 십여 명에 불과했다.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시작한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는 가슴엔 이루지 못한 꿈을 품고 살아간 것이다.
쿠바혁명 성공 후, 외국인 신분임에도 국립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을 역임하며 혁명의 명예를 누리던 체 게바라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아프리카로 떠난다.
“쿠바에서 할 일은 끝났다”
아프리카의 콩고를 거쳐 그가 도착한 곳은 남미의 볼리비아였고, 이곳이 그의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볼리비아의 국경은 무려 5개의 나라와 맞닿아 있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이런 전략적 요충지에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가 나타나자, 미국이 움직였다. CIA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볼리비아 독재정권에 체 게바라의 체포를 돕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체게바라의 생포에 성공한 볼리비아 군은 정작 새로운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미국은 그를 사살할 것을 명령했지만,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군인들이 망설였다. 결국 전사 그리스도라고 불리던 그를 쏘기 위해 군인들은 제비 뽑기 해야 했다. 체 게바라는 자신에게 총을 겨눈 군인에게 ‘기억해라. 너는 지금 사람을 죽이고 있다’라는 마지막 말을 했다고 한다. 방아쇠는 결국 당겨졌고, 체 게바라의 시신은 헬기에서 강으로 던져졌다. 체 게바라를 쏜 군인은 4개월 후 자택에서 투신자살하고 만다.
체 게바라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룰 수 없는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인간이 아니라 세상을 치료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리얼리스트로 살면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룬 또 다른 인물이 있다.
1938년 미국의 포틀랜드에서 태어난 필 나이트는 오리건 대학교의 전혀 유망하지 않은 육상선수였다. 필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리얼리스트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회계학을 전공한다. 그리고 가슴 한편에 이룰 수 없는 이상을 품은 채 아시아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25살 필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는 여행이었다. 신발에 미쳐 살던 필은 1962년 일본 여행 도중 운동화 회사 오니쓰카 타이거를 찾아간다. 당시 미국 신발 시장은 독일 회사들이 점령하고 있었고, 타이거 사는 큰 기대 없이 이 미국 청년에게 미국 서부지역 독점 판매권을 주게 된다. 타이거사에서 25살 미국 청년에게 무슨 기대가 있었겠나!
“잘 팔아보게 젊은이! 그런데 첫 물량은 몇 켤레를 받아 갈 텐가? 돈은 있긴 한 건가? 여기 신발 한 켤레 가져가게. 이런 걸 샘플이라고 한다네.”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막막했던 필은 육상부 감독이었던 빌 바우어만을 찾아가 타이거사의 샘플 신발 한 켤레를 보여준다.
“괜찮은데? 부업 삼아 한 번 해볼까?”
두 사람은 고작 500달러를 투자해 블루리본 스포츠를 설립하고, 일본에 발주서를 넣는다. 태평양을 건너 운동화가 도착했지만, 그들에겐 매장도 거래처도, 수익도, 미래도 없었다. 필은 전공을 살려 회계사 및 강의로 주중을 보낸다. 그리고 가슴에는 이상을, 차 트렁크에는 운동화를 실은 채 주말을 이용해 미전역의 학교에 신발을 팔러 다닌다. 창업 후 5년 넘게 월급을 한 푼도 가져가지 못했지만, 꿈과 직업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이미 눈치챈 분들이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나이키의 공동창업자 필 나이트의 이야기이다. 이어지는 나이키의 눈부신 성공 스토리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생계를 위해 리얼리스트가 돼야 하지만, 꿈만은 더 크게 아름답게 꾸어보자. 나의 꿈은 전업 작가이며, 몽상가답게 구체적이다.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 나는 간단한 과일로 속을 채운 뒤, ‘이현우의 음악 앨범’을 들으며 커피를 내린다. 10시가 되면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제품들이 멋스럽게 자리한 작업실에서 글을 쓴다. 오전 작업을 마치면 HJ와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본다. 오후에 다시 두 시간의 원고 작업을 마친 후, 호수공원으로 달리러 간다. 기분 좋은 피곤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신선한 야채와 해산물이 주가 된 저녁을 먹은 후, 조용히 하루를 마감한다.
이것이 경기도에서 서울로 왕복 4시간 출퇴근을 하며 리얼리스트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이다.
리얼리스트로 살고 있는 당신이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