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의 정지우 작가는 밀레니얼 세대를 '상향평준화된 이미지'라는 환각에 시달리는 세대라 말합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최악의 양극화를 겪고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지극히 평준화된 이미지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묘한 평등감이 존재하고 있다고 해요. 그렇기에 그 환각적 이미지에 도달해야 안심할 수 있고, 박탈감을 갖지 않을 수 있지요.
과거에는 엄청나게 성공한 이들만 소유할 수 있었던 명품을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게 되었고, 해외여행도 대중화되었습니다. 분명 풍족해졌는데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노오력에 노오력을 더해도 가질 수 없는 게 많아지면서 절망, 포기, 불안, 우울, 혐오가 번지고 있습니다. 우월하지 않으면 열등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청년들이 희망을 갖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이렇게 현실은 결핍 투성인데 인스타그램에는 멋짐을 기본으로 한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SNS에 올라온 이미지는 삶의 모든 순간이 특별한 것처럼 매 순간을 전시하고 자랑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하고, 결핍을 들키고 싶지 않아 가진 것처럼 위장하지요.
영화 《언프리티 소셜 스타》에는 '상향평준화된 이미지'라는 환각에 시달리는 인물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매 순간 SNS에 거짓된 이미지를 올리고, 그게 진짜 삶이라 내세웁니다. 인스타그램을 비판하는 인물마저 자신의 진짜 모습을 허세로 위장하여 숨기려 하지요.
SNS 스타 따라하기
영화 《언프리티 소셜 스타》의 영어 제목은 《Ingrid Goes West》입니다. 주인공 잉그리드 소번이 26만 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는 인플루언서 테일러 슬론을 만나기 위해 LA로 가서 벌어진 일을 그리고 있는데요,
친하다고 여긴 샬롯이 자신을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기에 잉그리드는 분노와 슬픔을 참을 수 없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샬롯의 인스타그램에 하트를 누르던 잉그리드는 샬롯에게 다가가 소동을 일으킵니다. 결혼식은 난장판이 되고, 잉그리드는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잉그리드는 샬롯에게 연락을 하지만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일하게 연락해 준 친구가 샬럿인데 그 친구가 자신을 차단했으니 잉그리드는 서글픔과 배신감을 느낍니다. 사실 이 둘의 관계는 매우 얄팍하고 가볍습니다. SNS에 댓글을 몇 개 주고받은 게 소통의 전부이죠. 그것을 잉그리드는 우정이라고 착각한 거고요. 샬롯과의 관계가 끝나고, 하루종일 인스타그램에 하트를 누르며 시간을 보내던 잉그리드는 26만 명의 팔로워가 있는 테일러 슬론을 알게 됩니다. 테일러 슬론의 인스타그램을 본 잉그리드는 그녀의 삶을 동경하게 되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돈을 들고 LA로 떠납니다.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ingridgoeswest'라는 아이디로 SNS에 가입도 하지요.
잉그리드는 테일러가 간 식당에서 테일러가 먹은 음식을 먹고, 테일러가 간 미용실에서 그녀와 똑같은 머리를 하고, 테일러가 좋아한다는 책을 읽습니다. 테일러에게 접근하기 위해 테일러의 반려견 로스코를 납치한 후 찾아주는 연기까지 합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테일러와 그녀의 남편 에즈라는 잉그리드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식사에 초대합니다. 테일러는 자신을 상품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돈을 받는 사진작가로, 에즈라는 자신을 팝아티스트라고 소개합니다. 잉그리드가 에즈라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이들은 더욱 가까워집니다. 이들 부부는 잉그리드를 새 친구, 반려견의 구세주, 예술의 수호성, 유쾌한 이웃이라고 추켜세우지요. 이 말에 들뜬 잉그리드는 트럭이 필요한 이들 부부에게 있지도 않은 트럭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집주인 댄 피토에게 사정해서 빌립니다. 트럭을 타고 목적지로 가면서 테일러는 잉그리드에게 에즈라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고, "당신은 좋은 친구"라는 등의 말로 친밀감을 표시합니다. 자신의 워너비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얘기하고, 같이 사진을 찍자 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칭찬을 계속해주고, 자신을 태그까지 해주니 잉그리드는 마냥 설렙니다. 테일러와 어울리면서 잉그리드를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늘고, 같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친구들이 생깁니다. 그럴수록 잉그리드는 테일러에게 잘 보이고 싶습니다. 테일러가 자기와만 관계를 맺으면 좋겠는데 테일러에게는 친구들이 너무 많습니다. 잉그리드는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지요. 심지어 자기에게만 털어놓았던 비밀 이야기를 다른 친구에게도 똑같이 말합니다.
테일러와 친하게 지내고 싶을수록 잉그리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갑니다. 테일러의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자신을 꾸미고, 테일러의 관심사에 맞춰 얘기합니다. 댄 피토가 남자친구라고 한 거짓말을 진짜로 만들기 위해 그에게 접근하고, 댄 피토에게도 테일러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만 하라고 강요합니다. 거기다가 유산으로 받은 돈은 점점 사라지는데 테일러의 오빠 니키에게 거짓말을 들키면서 협박까지 당합니다. 잉그리드는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테일러와의 관계에도 균열이 일어나지요.
진짜 얼굴을 잃어버린 사람들
잉그리드는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처럼 되기 위해 애씁니다. LA에서 멋지게 사는 여자처럼 보이기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SNS에 올립니다. 자신이 패배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보여주는 것에 집착하면서 거짓된 삶을 전시하지요. 테일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읽지도 않은 책을 좋아한다며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마약 중독자인 오빠 니키와 자신에게 지쳐가는 남편 에즈라를 포장합니다. SNS를 경멸한다는 에즈라 역시 꽤 괜찮은 예술가로 보이고 싶어 합니다.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며 예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늘어놓지만 사실 그를 화가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극작가가 될 거라는 댄 피토 역시 허세만 늘어놓을 뿐이지요.
거짓에 거짓을 만들면서 무엇이 진짜인지 이들조차 헷갈립니다. 다른 이들에게 환심을 얻기 위해 이미지를 조작할수록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갑니다. 『잃어버린 얼굴』의 주인공과 그 세계를 사는 사람들처럼 말이죠.
만들어진 이미지가 늘어날 때마다, 자신의 진짜 이미지는 점점 흐려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 잃어버린 얼굴 -
올가 토카르추크와 요안나 콘세이요가 5년 만에 만나 『잃어버린 얼굴』을 출간했습니다. 전작인 『잃어버린 영혼』은 영혼을 놓치면서까지 바쁘게 사는 현대인을 위로하며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면 『잃어버린 얼굴』은 SNS에 올리는 과시용 이미지가 본래의 삶을 망치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잃어버린 얼굴』이라는 제목처럼 일부만 드러난 표지의 얼굴은 또렷하지 않습니다. 뭉개져서 흐릿한 얼굴은 슬픔과 절망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떨어져 나온 조각들 역시 불분명해서 무엇을 그린 건지 모르겠네요. 이야기가 시작되자 표지의 얼굴과는 달리 인물들이 선명합니다. 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흑백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에는 생동감이 넘칩니다. 사진은 누군가의 성장기를 담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있는 사진에서도, 혼자 있는 사진에서도 주인공은 마냥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빛바랜 종이에 담긴 흑백사진이 아련한 감성과 추억을 불러옵니다. 글 없이 사진으로만 구성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말랑대는 무언가가 올라오면서 저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편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두 작가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있기에 이 이야기에는 어떤 심오한 장치가 숨겨져 있을 테니까요. 콘세이요의 그림에는 하나의 감정이 아닌, 서로 다른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에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서도 기이한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어떤 사진에는 커다란 검은 점이 얼굴을 가렸네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책장을 더 넘겨봐야 알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얼굴』은 아주 또렷한 얼굴을 가진, 아니 가졌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 번만 봐도 기억할 만큼 또렷한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빛나는 눈, 선이 예쁜 코, 또렷한 입술을 좋아합니다. 또렷한 사람 역시 자신의 모습이 좋습니다. 그는 자주 거울을 보고, 신나게 셀카를 찍습니다. 도시와 유적지, 구름과 바다 앞, 도서관 등을 배경으로 그는 자신의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올리지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또렷한 남자의 얼굴이 흐려집니다. 사진을 찍을수록 얼굴의 형체가 지워져 희미한 얼룩이 됩니다. 이제 사람들은 남자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인간의 얼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예민한 진짜 꺼풀이 있는데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 꺼풀이 벗겨진다는 가설을 본 남자는 좌절합니다. 결국 그는 불법으로 새 얼굴을 구하기 위해 거래인을 찾아갑니다.
『잃어버린 얼굴』에도 역시 요안나 콘세이요 특유의 깊은 감성이 난해하면서도 알 것만 같은 그림 안에 담겨 있습니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그림 작가 요안나 콘세이요는 어렸을 때부터 경제적인 이유로 헌 종이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 연필과 색연필로만 그린 그림이 이제는 콘세이요의 상징이 되어버렸지요. 빛바랜 종이의 낡은 느낌과 묵직하고 세련된 감각이 만나 이번에도 그림을 찬찬히 보게 됩니다. 콘세이요의 작품을 볼 때마다 연필과 색연필만으로 이렇게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사실적이면서 환상적인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갈래의 감정과 생각이 켜켜이 쌓입니다. 재치 속에 섬뜩함이 있고, 묵직한 슬픔 안에 따스한 위로가 얹어지지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의미를 깨달았을 때에는 저절로 감탄이 나오고요. 텍스트에 봉사하는 그림이 아닌 텍스트의 동반자로서의 그림을 고민한다는 요안나 콘세이요는 이번 작품에서도 글과 상호작용하면서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했습니다. 다양한 색을 갖는 배경과 대비되는 흑백의 인물,픽셀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확대하고 부각하면서 불분명하게 처리한 얼굴, 점점 뭉개지는 얼굴이 결국 모자이크가 되는 과정 등을통해 이미지에 갇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우리를 일깨우고 있지요.
글을 쓴 올가 토카르추크는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를 대표하는 소설가입니다. 토카르추크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융을 존경하고, 심리학, 철학, 신비학에 조예가 깊습니다. 그 전문적인 지식이 작품에 녹아 생명을 탐구하고, 세상을 통찰하지요.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해서도 고민한다는 올가는 다정한 소통을 강조하며 세상을 향해 끈질기게 질문하고 답을 찾습니다. 문학은 현실보다 강하고 사실적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잃어버린 얼굴』의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것 같아 등골이 서늘합니다. 올가는 우리의 진짜 모습은 안녕한지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이야기로 질문을 던지고 있지요.
자기 방어를 위한 포장
잉그리드에게 샬롯은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유일하게 연락해 준 사람이 샬롯이었으니까요. 그런 친구가 자기를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으니 분노할 수밖에요. 샬롯은 잉그리드의 SNS에 댓글 몇 번 남긴 게 전부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잉그리드는 샬롯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거죠. 전 세계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을 좋아한다는 테일러의 말에 꽂혀 테일러와 자신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처럼요. 잉그리드는 테일러가 습관적으로 가볍게 날리는 말, 그 순간 감정에 취해서 내뱉은 말, 공허하고 의미도 없는 말에 감정을 쌓고 또 쌓습니다. 감격하고, 서운해하고, 기뻐하고, 걱정하지요. 이처럼 잉그리드는 관계에 서툴고, 애정을 갈구합니다.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다가갈수록 관계는 더 망가집니다.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 잘 사는 척을 할수록 질투와 소유욕은 커지지요.
SNS에 중독된 사람들 중에는 대인관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자신을 과시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끼고 싶을수록 SNS에 집착한다고 해요. 현실에서는 상처받고, 소외감을 느끼지만 자신이 올린 게시물에 긍정적인 반응과 관심을 얻게 되면 쾌감이 커지는 거죠. 잉그리드가 하루종일 SNS를 보면서 하트를 누르는 것도, 댓글 몇 번만으로 진한 우정을 쌓았다고 착각한 것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팔로워 수가 늘어날 때마다 기뻐하는 것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으면서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겠죠.
그러기 위해 잉그리드는 자신의 본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꾸며야 했습니다. 즐거운 척, 멋진 척, 잘 사는 척, 가진 척해야만 했고, 테일러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잉그리드가 상처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거짓된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했다면 『가시 소년』의 '나'는 상처와 외로움을 숨기기 위해 가시를 세웁니다. 둘 다 친구를 원하면서도 어긋난 방향으로 애쓰고 있는 거죠.
나는 가장 크고 날카로운 가시를 가질 거야 모두 나를 무서워하게 될 테니까
- 가시 소년 -
『가시 소년』의 주인공 소년은 오늘도 가시를 세웁니다. 친구들이 사이좋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면 눈썹이 올라가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요. 가시 소년은 친구들에게 시끄럽다며 소리를 지릅니다. 친구들이 울고, 선생님에게 혼나는 일이 반복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공부를 할 때에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에도 가시는 자랍니다. 때로는 아주 많이, 때로는 아주 날카롭게 말이에요. 소년은 가장 크고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야 모두 자기를 무서워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야 아무도 자기를 건드리지 않으니까요. 그런데요, 사실 가시 소년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가시로 뒤덮인 옷을 벗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요.
잉그리드도, 가시 소년도 친구를 원하면서도 관계에 서투릅니다. 상처투성이인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근사하게 포장하거나, 강하고 센 척을 하지요.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추측하자면 잉그리드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을 거예요. 어머니의 죽음이 그녀에게는 큰 상처이지만 어머니와의 관계도 건강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누구에게 제대로 된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 스스로를 믿을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거죠. 가시 소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불화로 불안이 높아졌고, 공격적인 면이 강해졌죠. '친구 만드는 방법'이라는 책을 읽을 정도로 친구가 절실한데도 소년은 자신의 마음과는 다른 말과 행동을 합니다. 가장 크고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겠다고 하면서도 가시가 없어지길 바라고요. 슬프고 싶지 않아서, 누구도 자신을 아프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가시를 세운 건데 가시 때문에 제일 먼저 다치는 건 바로 자신이었던 거죠. 『가시 소년』에 나오는 문장처럼 사람은 누구나 가시가 있습니다. 그 가시를 어떻게 드러내고, 어떻게 다스리는지는 모두가 다 다릅니다. 잉그리드처럼 행동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안에는 그녀의 감정이 다 있을 겁니다. 동경하면서 질투하고, 좋아하기에 분노하고, 초라하기에 감추면서 드러내고 싶은 그 마음이요. 당신 안에 있는 그 가시는 잘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인간의 본성을 이용한 장사
두산백과는 '사회적 동물'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홀로 살 수 없으며, 사회를 형성하여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라는 의미의 용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를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면서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거죠. SNS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여기에 중독까지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소통을 원하고, 무리에 속하고 싶어 하고, 주목받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이용하고 있는 거죠. 누군가는 이것을 이용해 돈을 벌고, 누군가는 이들에게 이용당해 삶을 망가뜨립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두에게 다 주어지는 것도 아니면서 모두가 다 가질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핫하다는 곳에는 꼭 가야 하고, 신제품이 나오면 무조건 사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외모, 직업, 학벌, 사는 곳, 입는 옷 등에 따라 우열을 나누고, 가진 이들에게 열광하지요. 동시에 갖지 못한 이들을 멸시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사는 건 자신의 능력과 노력 부족이라며 모든 책임과 의무를 개인에게 떠넘깁니다. 공부를 못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없고, 돈이 없으면 무시당한다는 소리를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으니 남들만큼 하지 못하면 불안하고 우울한 거죠.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도 전에 사회의 기준에 맞춰 그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아니, 강요당한 채 길들여졌다고 하는 게 더 옳겠네요. 그럭저럭 살기에도 버거운 세상이니 불행하다고 느끼면서도 바꿀 수 없고,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응합니다. 현실이 참담하니 가상의 세계에서 가짜 이미지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죠.
부모가 물려준 집과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새로운 얼굴을 받은 『잃어버린 얼굴』의 주인공은 곧이어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합니다. 공포에 질린 남자에게 곧 익숙해질 거라는 여자의 대사가 섬뜩한 건 그게 결코 위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익숙해지면 안 되는 것에 동화되어 순응하는 사회에 희망은 없으니까요. 나의 또렷함을 지키면서 타인의 또렷함을 흐리지 않는 세상을 『잃어버린 얼굴』 속 인물들은 이제야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을까요.
맨얼굴로도 충분할 수 있는 사회적 동물
오랫동안 인간은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잔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에 무게를 두고 학습과 수행의 결과로 악을 누르고 있다고 여겼지요. 그런데 요즈음에는 대부분의 인간은 악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여리고 겁이 많아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성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선하고 연약하기에 타인과 온기를 나누며 서로의 빈약함을 채워야 하는데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하고, 남들보다 돋보여야 하고, 남들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고 강요받으니 불행한 거죠.
그래도 곳곳에서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희망적입니다. SNS을 통해 선행이 알려지고, 같이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어쨌든 인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지요. 이처럼 SNS에는 부정적인 면만 있지 않고 긍정적도 많습니다. SNS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정보를 빠르게 수집할 수도 있고,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빠르게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SNS의 기능은 달라지는 거죠.
잉그리드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때, 그녀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수많은 응원과 온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시 소년이 가시로 뒤덮인 겉옷을 벗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그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순하고 밝았습니다. 이제 이 둘에게도 진정한 친구가 찾아올 거예요. 그리고 더는 자신을 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겠죠.
그러니 맨얼굴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면 좋겠어요. 일부 악한 인간들이 우리의 불안을 자극해서 질투와 열등감을 높이는 거라고,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혼자만 잘 사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면서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된다고 믿어요, 우리.
선하고, 나약하고, 다정하고, 이기적이고, 온전하고, 불완전한 당신과 내가 이렇게 안부를 물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 《언프리티 소셜 스타》, 맷 스파이서 감독, 데이비드 브랜슨 스미스 & 맷 스파이서 각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