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림책
사랑하는 엄마, 저 자신을 더 잘 알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이유는 둘째 치고, 저라고 왜 엄마와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생각이 없겠어요? 교환 일기는 어쩌면 제가 용기를 내려는 핑계랄까, 구실 같기도 해요. 이게 아니라면 제가 어떻게 엄마의 습관적인 대화 방식에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힐 것이며, 제 안에 묻어놨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겠어요?
엄마의 딸 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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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아, 엄마랑 딸은 가장 살가운 관계라고들 하잖니. 그런데 엄마에게 불만 있는 딸들이 어쩜 그렇게 많을까? 도대체 엄마들이 뭘 잘못했기에 그렇게 불만이 많은 거지?
-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
멜라니 클라인을 알기 전까지 저는 아이가 불안할 때 안전한 상태에서 환상을 체험할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사실 그런 '환상'이야말로 사람이 타고난 가장 위대한 자유일 텐데 말예요.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억압이 환상 속 미움을 진짜 위험하게 만드는 것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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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이도 혹시 어릴 적에 내가 자기 환상을 억압한 걸 질책하는 걸까?'
어떻게든 이런 생각을 몰아내려 해도, 은은이 넌 그런 뜻을 말한 게 아니락 나 자신을 타일러도, 이 엄마를 탓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구나.
네 말처럼 엄마의 마음은 본래 이렇게 유약하단다. 우리는 좋은 엄마가 될 거란 환상을 품으면서 동시에 스스로 진짜 좋은 엄마는 못 될 거란 환상을 갖게 되지.
-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
오늘 아침, 엄마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깜짝 놀란 나는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갔지요.
- 고함쟁이 엄마 -
"안 돼요. 당신은 이리제를 안을 수 없어요. 얘는 내 아이예요."
- 메두사 엄마 -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너의 안에는
그 아이가 살고
있을 거야.
그게 조금
힘들 수도 있어.
- 어른들 안에는 어른이 산대 -
늦은 밤까지 이런저런 기억을 되짚다 보니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꺼냈는데 심리학자 필립 셰이버의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오더라고요.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어떤 의미로는 내면세계에서 계속 아이로 산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래된 초자아의 명령과 과장된 자아의 이상을 간직한 채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단단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무의식 중에 자신과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몸은 어른이 됐지만 마음은 어린 시절 어딘가에 그대로 머무는 탓에, 성인이라는 육신의 껍데기가 아이의 다중 콤플렉스인 '불편함'과 '갈망'에 얽매여 있다는 거예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아이가 살고 있는 거죠.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삶에 최선을 다해 맞서면서 어른스러우려고 노력해요. 그럴 때 우리 내면의 아이는 가장 어둡고 추운 구석에 버려진 채로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아이를 자유롭게 해 줄 용기가 없어요. 자기 안에 아이가 없는 척할 뿐.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더 이상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해지려 하지 않게 돼요. 솔직함의 대가로 내면에 있는 아이의 상처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지니까요. 급기야 있는 그대로 말하는 자유로움마저 잃는 경우도 있죠. 마치 주위에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처럼요.
-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
지금 들어가는 거야?
아니, 준비부터 해야지.
너무 궁금해. 빨리 들어가고 싶어.
조심해. 위험하단 말이야.
- 마음 수영 -
사랑하는 엄마,
반년 넘게 교환 일기를 주고받으면서 제가 뭘 느꼈을까요! 하하, 엄마가 점점 유머러스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쩜, 제가 알던 엄마와 이렇게나 다르다니!
하하, 농담이에요. 이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어린 시절 엄마를 지나치게 무서워한 건 제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요. 엄마가 아주 다정한 엄마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상상처럼 저를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없는 냉혈한은 아니었어요(어휴, 이 말은 정말 예의가 없네요, 예의가 없어!)
-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