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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Mar 06. 2022

보내지 않을 편지, 엄마에게

-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림책


  



  사랑하는 엄마, 저 자신을 더 잘 알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이유는 둘째 치고, 저라고 왜 엄마와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생각이 없겠어요? 교환 일기는 어쩌면 제가 용기를 내려는 핑계랄까, 구실 같기도 해요. 이게 아니라면 제가 어떻게 엄마의 습관적인 대화 방식에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힐 것이며, 제 안에 묻어놨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겠어요?

엄마의 딸 은은

***

  은은아, 엄마랑 딸은 가장 살가운 관계라고들 하잖니. 그런데 엄마에게 불만 있는 딸들이 어쩜 그렇게 많을까? 도대체 엄마들이 뭘 잘못했기에 그렇게 불만이 많은 거지?


-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



미워하고 원망했던 엄마에게



엄마,


  솔직하게 말하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많았어요. 성인이 되고는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와 엄마에 대한 복수심이 커졌고, 그때마다 무리한 요구를 무례하게 했지요. 죄책감은 없었어요. 이것은 자식의 권리이면서 엄마의 의무라고 생각했거든요. 엄마가 저를 낳았으니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고 여겼지요. 아빠가 싫을 때도 그 화살을 엄마에게 돌렸어요. 엄마가 선택한 남자잖아요.


  돌아보면 엄마 탓을 한 게 참 많아요. 실패가 두려워 미리 포기할 때면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어린 저를 걱정이라는 이유로 비난하지 않았다면, 예상하지 못한 순간마다 매를 들지 않았다면, 자신의 감정을 어린 자식에게 쏟아붓지 않았다면, 할머니와 아빠에게 조금이라도 더 당당했다면, 일관성 있게 양육했다면 제 인생이 조금은 수월했을 거라 믿었죠. 엄마가 원하는 학교에 가지 않았던 것도 복수를 하고 싶어서였어요. 엄마만큼 힘이 세졌다고 생각하니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었죠. 근데 아니에요. 사실은 떨어질까 봐 무서웠어요. 그 비겁함과 두려움을 반항으로 포장하면서 솔직한 제 마음을 회피했죠. 자신이 없었던 건데 그 모든 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했어요.   


  엄마,


  몰랐어요. 엄마가 이토록 순하고 해맑은 사람인지를요. 이렇게 긍정적이고 여린 줄 정말 몰랐어요. 어린 제게 엄마는 늘 강하고 무서운 사람이었으니까요. 어느 순간, 엄마가 만만해졌는데 그때에도 엄마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했죠.  


  아직도 기억나요. 저와 열한 살 차이 나는 막냇동생을 대하던 엄마의 모습이요. 어찌나 다정하고 너그럽던지요. 저에게 했던 감정적인 모습이 전혀 없었죠. 막냇동생이 실수를 하거나 게으름을 피워도 관대하게 넘어갔어요.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화가 났어요. 동시에 걱정도 됐고요. 그래서 중학생이던 제가 엄마에게 그랬죠. 왜 쟤는 때리지 않느냐고요. 엄마가 그렇게 봐주면 쟤가 커서 뭐가 되겠느냐고 따졌어요. 폭력이 싫고 무서우면서도 무의식 중에는 그게 필요하다고 여겼나 봐요. 그때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맞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잖아요.  


  엄마,


  지금은 원망이나 미움은 없어요. 몇 년 전에 엄마에 대한 마음을 다 풀었어요. 그때 회를 먹다가 제가 뜬금없이 물었잖아요. 왜 그렇게 나를 때렸어, 라고요. 엄마는 언제 그랬냐고 했어요. 잘해 준 기억밖에 없다면서요. 그런데 엄마는 당황하고 있었어요. 시간이 흐른 후에 엄마는 제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요. 그때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자식들이 예쁜 줄 몰랐다고도 했어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엄마의 시간을 듣고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렇게 엄마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어지더라고요. 너무 오랫동안 원망에 미움을 얹었더니 이젠 그 감정은 사라지고 미안함이 남았죠. 자식들을 위해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깨닫자 고맙고 또 고마웠어요. 그런데 이제는 걱정된다는 이유로 제가 엄마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잖아요.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집에 갈 때마다 청소 상태부터 시작해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잘 믿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고는 후회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도 왜 매번 엄마의 마음을 후비는 걸까요. 그런데도 왜 엄마는 제게 자꾸만 고맙다고 하는 걸까요.



'엄마'라는 존재 




  멜라니 클라인을 알기 전까지 저는 아이가 불안할 때 안전한 상태에서 환상을 체험할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사실 그런 '환상'이야말로 사람이 타고난 가장 위대한 자유일 텐데 말예요.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억압이 환상 속 미움을 진짜 위험하게 만드는 것인데 말이죠.

***

  '은은이도 혹시 어릴 적에 내가 자기 환상을 억압한 걸 질책하는 걸까?'
  어떻게든 이런 생각을 몰아내려 해도, 은은이 넌 그런 뜻을 말한 게 아니락 나 자신을 타일러도, 이 엄마를 탓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구나.
  네 말처럼 엄마의 마음은 본래 이렇게 유약하단다. 우리는 좋은 엄마가 될 거란 환상을 품으면서 동시에 스스로 진짜 좋은 엄마는 못 될 거란 환상을 갖게 되지.

-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



  엄마,


  얼마 전에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라는 책을 읽었어요. 멜라니 클라인(1882. 3. 30 ~ 1960. 9. 22)에게 크게 영향을 받은 심리학자 딸 은은과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엄마가 교환 일기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에요. 중간중간 소설 형식으로 된 글도 나오고요.


  아, 잠시 멜라니 클라인에 대해 설명하자면 아동분석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예요. 남성, 즉 아버지가 자식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에만 주목하던 시대에 자식에게 어머니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연구했지요. 태어나 처음으로 맺는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봤어요. 그녀의 연구는 대상관계 심리학의 바탕이 되었지요. 학자로서 멜라니 클라인은 큰 업적을 이뤘지만 사실 그녀의 삶은 무척 불행했어요. 하나뿐인 딸 멜리타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고요. 멜리타 역시 정신분석학자이자 의사인데 클라인의 장례식에는 오지도 않았죠. 대신 토론회에서 어머니를 비판하고 있었대요. 이렇게 유명한 심리학자도 자신의 문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나 봐요.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의 심리학자인 은은이가 엄마에게 교환 일기를 쓰자고 한 이유 중 하나가 엄마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예요. 또 하나는 자기 내면에 있는 아이를 보기 위해서고요.


  은은이는 엄마에게 실망하고, 화가 나고, 서운할 때가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자기의 감정을 알아주길 바랐는데 엄마의 관심은 오로지 남동생이었거든요. 초반에 은은이는 엄마랑 이야기하면 두꺼운 철문에 발길질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써요. 자기의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해서 공허하고 의미가 없다고도 느끼고요. 자신의 내면을 보게 해 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진짜 자기를 봐주지 않으려 한다며 서운하고 화난 마음을 드러내죠.


  은은의 엄마는 동생과 자신을 편애한다는 딸의 얘기에 놀라요.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딸과 아들을 다르게 대한다는 가족들의 증언을 듣고 은은에게 진심을 전해요. 그렇게 모녀는 교환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죠.


  초반에 은은의 엄마는 '사랑하는 엄마'란 호칭이 낯설다면서 쓰지 말아 달라 해요. 그런데 그 일기는 '사랑하는 은은아'라고 시작해요. 뒤에는 '은은아'라고 부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랑하는 은은아'가 이어지지요. 너무 자연스럽게요.


  엄마,


  이 책의 딸 은은처럼 저는 '사랑하는'을 앞에 붙일 수가 없어요. 절대로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그냥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제게 낯설고 버거워요. 동시에 너무 흔해서 하찮고요. 왜 그 단어를 자꾸만 거부하는지 모르겠어요. 가끔씩 남편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고는 잠시 놀라기도 해요. 그러다 이내 정말 사랑인지 의심하죠. 그냥 저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커요. 좋아할 수는 있고, 관심을 가질 수는 있고, 다정하고 상냥하게 대할 수는 있는데 사랑을 다는 건 너무 어렵네요.



어린 시절 나의 엄마에게




오늘 아침, 엄마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깜짝 놀란 나는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갔지요.

- 고함쟁이 엄마 -



"안 돼요. 당신은 이리제를 안을 수 없어요. 얘는 내 아이예요."

- 메두사 엄마 -



  엄마,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를 읽는 내내 제 머릿속에는 두 개의 그림책이 떠다녔어요. 둘 다 어린 시절 제가 느낀 엄마를 보여주는 그림책이에요.


  처음 『고함쟁이 엄마』를 읽었을 때, 정말 제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어요. 그때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컸고, 어린 날의 상처를 후비고 있을 때였거든요.


  엄마 펭귄의 고함에 아기 펭귄의 머리는 우주까지 날아가고, 몸은 바다에 떨어져요. 두 날개는 밀림에, 부리는 산꼭대기에, 꼬리는 거리 한가운데에 떨어지죠. 아기 펭귄은 흩어진 몸을 찾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때 엄마가 아기 펭귄의 몸을 모아 한데 꿰매요. 다 꿰매고 엄마 펭귄이 미안하다고 말해요. 아기 펭귄은 엄마 펭귄의 날개 아래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죠.


  엄마, 저는 아기 펭귄의 몸이 흩어졌을 때보다 그 아이가 엄마의 품에서 편안하게 웃는 장면이 싫었어요. 엄밀히 따지면 엄마 펭귄은 가해자예요. 엄마 펭귄이 어떤 짓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아기 펭귄의 몸을 꿰매 준 것만 강조하는 듯해서 소름이 돋았죠. 아기 펭귄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고는 꿰매 주면서 미안하다니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내면 안 되잖아요. 그래 놓고 고함을 지를 텐데 말이죠. 시간이 지난다고 꿰맨 자국이 없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엄마 펭귄은 그 흉터에 또 상처를  확률이 높아요. 가해자와 치료자가 같은 사람이라니, 그게 또 반복될 수 있다니, 이것을 사랑으로 포장하고 있다니 너무 무섭고 슬프지 않나요?


  엄마도 그랬어요. 저를 때리고는 미안하다고 했어요. 저를 꼭 안고 몇 번이나 사과를 했었. 그런데 엄마, 그때 저는 숨이 막혔어요. 저를 압박하는 엄마의 무게에서 도망치고 싶었어. 욕구는 강했는데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더군요. 엄마가 얼마나 후회하는지 고스란히 느꼈는데 그래서 더 부담스러웠죠.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확신이 어린 저를 꼼짝 못 하게 했어요. 엄마가 그때 왜 그랬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은 너무나 잘 알아요. 그런데 그건 잘못이잖아요.  


  저는 아직도 이 그림책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가볍게 엄마의 잘못을 정당화하면서 미화했어요. 누군가는 이 그림책을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이야기라고 하는데 부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고함쟁이 엄마』이면서 동시에 『메두사 엄마』이기도 했어요.  메두사는 엄청 난 머리카락을 갖고 있어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성인 두세 명은 거뜬히 숨길 수 있을 정도로 길고 풍성하지요. 메두사는 딸 이리제를 자신의 머리카락에 품고 다녀요. 누구도 이리제를 안을 수 없어요. 자기 외에는 누구도 딸과 관계하면 안 되죠. 그러니 학교에도 보낼  없어요. 메두사는 즐겁게 놀아주는 다정한 엄마이지만 동시에 아이를 구속하는 숨 막히는 엄마이기도 해요.


  엄마, 저는 엄마가 걱정과 불안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제가 집에 오지 않으면 엄마는 울상을 지으며 화를 냈잖아요. 친구 집에 가겠다고 하면 부모님은 집에 계시는지, 비디오가 있는지, 남자 형제가 있는지 꼭 확인하고는 엄마의 조건에 맞지 않으면 보내지 않았죠. 엄마의 불안과 구속에서 전 너무 자유롭고 싶었어요. 어른이 되면 어떻게든 집을 나가겠다고 다짐했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는 무척 대범하고 태평한 사람이더라고요. 가족 중 유일하게 외향적인 성향이고, 이웃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후회보다는 긍정과 감사를 더 많이 느끼지요. 해맑고, 순수하고, 지혜롭고, 또 가끔은 주책맞기도 하고요. 엄마가 다리를 다쳐서 한 달 동안 입원하는 동안 동네 분들이 아빠의 점심을 챙겨주셨잖아요. 엄마의 입원실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지인 분들이 오셨고요. 하루에 두세 팀이 오신 적도 있었어요. 엄마가 얼마나 인심을 얻고 살았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때는 엄마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 불안하고, 두렵고, 억울하고, 화가 났던 거예요. 서러움과 두려움 때문에 고함을 지르고, 후회하고, 미안해하고, 자식을 품에서 놓아주기 힘들었던 거예요. 엄마 안에 살고 있는 아이를 엄마도 어쩌지 못했던 거죠.  



어른인 엄마 안에도 사는 아이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너의 안에는
그 아이가 살고
있을 거야.

그게 조금
힘들 수도 있어.  

- 어른들 안에는 어른이 산대 - 



  엄마,


  어렸을 때는 엄마가 너무 커서 무서웠어요. 엄마는 눈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행동도 크고, 덩치도 컸잖아요. 제게는 너무 큰 어른이었는데 사실 든든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제게 불안을 가하는 인물이었죠. 엄마와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으니 한 번 혼이 나면 더 크게 받아들일 수밖에요.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유독 제가 엄마를 찾았다면서요. 돈을 벌러 나가야 하는데 제가 집요하게 매달려서 엄마가 화를 많이 냈다고 들었어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계속 엄마한테 가자고 악에 받쳐 떼를 썼다는 얘기도요. 제 머릿속에는 엄마가 너무 불편하고 낯설었던 기억이 최초로 자리 잡았는데 말이죠.


  제게는 너무 무서운 엄마가 할머니와 아빠에게는 한없이 주눅 들었던 게 생각나요. 엄마의 장점까지 비난하고 못마땅해하는 시어머니와 무심과 무시를 번갈아가며 했던 남편 사이에서 엄마는 죄책감을 키웠죠. 아이였을 때는 어른들은 언제나 의젓하고, 어떤 경우에도 유연하게 넘어가고,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우리 가족들만 잘 관찰했어도 그런 환상은 없었을 텐데 어린 저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죠.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의 뒤표지에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픈 아이들을 위한 책', '여전히 아이처럼 살고픈 어른들을 위한 책'이라고 쓰여 있어요. 앞표지에는 양복을 입은 신사 안에 살고 있는 아이가 그려져 있고요. 어른들은 자기 안에 있는 아이를 숨기려고 항상 바쁜 척을 하고 스트레스받는 척을 한대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아이를 계속 숨길 수는 없지요. 아이는 불쑥불쑥 튀어나와 씰룩 쌜룩 춤을 추기도 하고, 신상품이 나오면 꼭 필요한 거라고 우겨요. 쉽게 겁을 먹고, 사랑에 빠졌을 때는 혀 짧은 소리도 내고요. 못된 어른들 안에는 못된 아이가 있어요.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될수록 안에 있는 아이는 더 자주 튀어나오죠.


  익살스러운 그림과 글에 막 웃었는데 뒤로 갈수록 너무 따뜻하고 다정해서 눈물이 났어요.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의 은은이 내면의 아이를 마주해야만 했던 절박함이 뭐였는지 새삼 알겠더라고요.



  늦은 밤까지 이런저런 기억을 되짚다 보니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꺼냈는데 심리학자 필립 셰이버의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오더라고요.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어떤 의미로는 내면세계에서 계속 아이로 산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래된 초자아의 명령과 과장된 자아의 이상을 간직한 채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단단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무의식 중에 자신과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몸은 어른이 됐지만 마음은 어린 시절 어딘가에 그대로 머무는 탓에, 성인이라는 육신의 껍데기가 아이의 다중 콤플렉스인 '불편함'과 '갈망'에 얽매여 있다는 거예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아이가 살고 있는 거죠.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삶에 최선을 다해 맞서면서 어른스러우려고 노력해요. 그럴 때 우리 내면의 아이는 가장 어둡고 추운 구석에 버려진 채로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아이를 자유롭게 해 줄 용기가 없어요. 자기 안에 아이가 없는 척할 뿐.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더 이상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해지려 하지 않게 돼요. 솔직함의 대가로 내면에 있는 아이의 상처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지니까요. 급기야 있는 그대로 말하는 자유로움마저 잃는 경우도 있죠. 마치 주위에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처럼요.

-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



  엄마,


  아팠던 기억에 가려졌던 시간이 하나둘 떠올랐어요. 다양한 방법으로 능숙하게 공기놀이를 하는 엄마를 경이롭게 바라봤던 일, 할머니 몰래 치킨을 사 먹고 우리만의 비밀로 흥분했던 일, 엄마의 칭찬과 격려에 우쭐했던 일, 엄마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한없이 들떴던 일, 엄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듣고 듣고 또 들었던 일이 이제는 기억이 나더라고요. 엄마는 결코 무섭기만 한 엄마가 아니었어요. 어린 딸과 즐겁게 놀아주던 다정하고 재미있는  엄마이기도 했어요.


  이제는 어린 날의 저를 바로 볼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상처 때문에 울고 있는 아이도,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르는 아이도 제 안에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알겠어요. 그 아이들에게 성큼 다가가고 싶네요.


 

절대로 보내지 않을 편지이지만 




지금 들어가는 거야?
아니, 준비부터 해야지.

너무 궁금해. 빨리 들어가고 싶어.
조심해. 위험하단 말이야.

- 마음 수영 -



  엄마,


  은은이 쓴 편지를 보고 저도 어린 날의 저와 젊은 날의 엄마를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편지 형식을 빌렸어요. 물론 진짜 편지는 아니에요. 엄마에게 보내지 않을 거거든요. 아직은 너무 쑥스러워요. 혹시 서툰 제 글이 엄마에게 오해를 전할까 걱정도 되고요. 무엇보다 이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잖아요. 『마음 수영』의 모녀가 나란히 마음을 전하 듯이 제 옆에도 엄마가 나란히 있어 심이 오간다고 생각해요.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의 엄마와 딸처럼 『마음 수영』의 엄마와 딸도 처음에는 서로의 입장만 내세워요. 물에 들어가고 싶은 딸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엄마가 부딪치지요. 딸의 입장에서 엄마는 아는 척만 하고, 엄마의 입장에서 딸은 성급하기만 해요. 이젠 혼자 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딸과 예전 같지 않은 엄마가 물속에서 곤란을 겪고,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죠.


  엄마,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는 알겠어요. 저는 엄마처럼 가족을 위해 헌신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요. 언젠가부터 엄마의 삶이 존경스러워졌어요. 물에 빠져 허우적댈 때마다, 물에 가라앉아 숨쉬기 힘들 때마다 손 잡아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즐겁게 삶이라는 물에서 수영을 하고 있어요.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두렵지만 엄마가 있어줘서 오늘은 좀 즐겨보려고요.


  엄마, 이제는 엄마를 닮아보려 해요. 그러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제 옆에 나란히 있어줘요. 



  사랑하는 엄마,

  반년 넘게 교환 일기를 주고받으면서 제가 뭘 느꼈을까요! 하하, 엄마가 점점 유머러스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쩜, 제가 알던 엄마와 이렇게나 다르다니!
  하하, 농담이에요. 이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어린 시절 엄마를 지나치게 무서워한 건 제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요. 엄마가 아주 다정한 엄마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상상처럼 저를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없는 냉혈한은 아니었어요(어휴, 이 말은 정말 예의가 없네요, 예의가 없어!)

-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




* 『애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쉬하오이 지음, 정세경 옮김, 학고재 펴냄

* 『고함쟁이 엄마』, 유타 바우어 지음, 이현정 옮김, 비룡소 펴냄

* 『메두사 엄마』, 키티 크라우더 지음, 김영미 옮김, 논장 펴냄

*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 헨리 블랙쇼 지음, 서남희 옮김, 길벗스쿨 펴냄

* 『마음 수영』, 하수정 지음, 웅진주니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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