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의 떨림 Dec 10. 2022

가짜 행복에 속지 않기 위해서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 그림책




행복하지 않기에 더욱 간절한 행복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 불리는 에바 알머슨의 전시회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전시회를 본 후에 굿즈를 산적이 거의 없는데 그날 저는 장바구니에 물건을 넣기 바빴습니다. 지금은 예쁜 쓰레기가 되었지만 그때 저는 에바 알머슨의 그림이 무슨 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달렸습니다. 그녀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거라고 믿으면서요. 행복지수가 낮은 국가에서 에바 알머슨의 그림이 인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더라고요. 행복하지 않으니 행복에 매달릴 수밖에요.  


  인류가 시작된 순간부터 인간은 행복을 바라고,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행복이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세기 후반부터라고 합니다. 유엔은 국가별 행복지수를 측정하고, 심리학은 행복에 관해 연구를 하고, 행복과 치유에 대한 책과 영상이 엄청 쏟아지고 있지요. 행복하지 않으니 여기저기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이 들려오고 있는데 우리의 행복지수는 좀처럼 올라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불행해지고 있습니다.『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는 그 이유를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고 있습니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는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행복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주류 심리학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진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숨긴 채 일시적인 쾌감만 좇게 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채 마음만 긍정적으로 바꾸라고 하고 있죠. 소확행, 마음챙김, 힐링, 워라밸, 욜로 등 행복은 개인의 몫이니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고 다스리라는 게 주류 심리학의 주장이면서 독점자본가 계급의 행복산업입니다. 자본가들은 자기들을 위해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바람에 능률이 떨어지고 있으니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자본가 계급 역시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행복하지 않고요.  


  남들보다 내가 더 행복해야 한다는 행복 경쟁에 몰린 사람들은 행복을 과시하고, 즐거운 척 연기하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불안해합니다. 물질이 행복의 기준이 되고, 공동체는 해체되고, 경쟁은 더 치열한 사회의 사람들은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을 책임 지지 못하는 국가에서, 불평등이 심화되어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에바 알머슨이 그린 웃는 얼굴이 집안 곳곳에 있다고 해서, 마음챙김에 관한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고 해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해서 진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잠깐은 즐거울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만족을 느끼며 참다운 행복을 느낄 수는 없지요. 매일이 경쟁이고, 열심히 살아도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고, 노동을 통해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돈이 없으면 존중받지 못하고,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은 더 고독해지고 무력해지고 고통스러워질 뿐입니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자인 작가는 정말로 행복해지려면 내가 속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복지가 후퇴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타인의 행복과 불행이 나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 나만 행복한 삶은 진정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행복에는 개인적 행복도 있고 사회적 행복도 있다. 사회적 행복이란 다수의 행복, 집단의 행복을 말한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평생 집단과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이 때문에 집단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은 항상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빠가 실직해 가족 전체가 불행해졌는데, 엄마 혼자 행복하기는 힘들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 그 치하에 사는 개별적인 사람들이 행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대다수의 개인이 불행한데 사회나 집단이 행복할 수 없다.
  이처럼 집단 혹은 사회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은 뗄 수 없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행복을 논하려면 반드시 사회적 행복과 집단적 행복에 대해서도 다뤄야 한다. 그러나 심리학은 사회적 행복은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오직 개인적 행복에만 초점을 맞춘다.  


  -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



  개인적 행복만을 강조하는 행복론은 사람들에게 '행복하지 않다고? 그건 네 탓이야!'라고 말한다. 빈곤층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빈곤, 나아가 잘못된 사회제도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긍정적인 사고를 하지 않아서라거나 게을러서라고 말함으로써 빈곤층을 탓하게 만든다.
  "이 대단히 개인화된 의제에는 빈곤과 실패의 원인을 개인으로 돌리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심리학자 데이비스의 지적처럼, 행복의 개인화는 단순한 학문적 무지나 실수가 아닌 사회적 진보를 방해하려는 지배층의 의도를 대변하고 있다. 만일 다수의 대중이 불행을 사회의 문제로 여기게 되면 사회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반대로 다수의 대중이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 여기게 되면 사회에는 관심을 끊고 자기 탓을 하며 자기계발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사회의 진보를 반대하고 민중의 저항을 두려워하는 지배층이 행복을 철저히 개인화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충성을 바치는 심리학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가계급은 가난이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 때문이고, 자살이 의지박약이나 우울증 때문이며, 범죄가 유전자나 정신질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행복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사회가 아닌 개인에게 있다고 우겨대는 것이다.


-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


 

 '더 더 더'를 외칠수록 더 더 더 강해지는 불행




모조리 그것들을 먹어 치워,
일꾼들에게 남은 건 거의 없었어요.

- 더더더 몬스터 -



 『더더더 몬스터』는 욕심 많은 몬스터가 다스리는 섬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섬의 건물과 현수막에는 '더더더', '더 많이!', '꽉꽉 채워', '가득 담아', '아주 많이', '더욱더'라는 글씨가 크게 박혀 있습니다. 이게 다 몬스터를 위해서죠. 날마다 몬스터는 더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새로운 것, 더 뛰어난 것, 최신의 것, 가장 세련된 것, 꼭 사야만 하는 것들을요. 모조리 먹어 치우는 몬스터에게 더 많은 걸 안겨주려고 일꾼들은 쉴 틈이 없습니다. 고단해도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떠올리기도 싫은 일이 벌어질 테니까요. '일만이 살 길'이라는 표어가 붙은 작업장에 이번 달 사고만 13건입니다. 어느 날, 꼬마 일꾼이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왜 몬스터가 우리 섬을 마음대로 하는 거지? 몬스터는 이 모든 게 정말 필요한 걸까? 만약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다른 일꾼들은 지금의 이 상황이 당연하다고 합니다. 몬스터는 지도자이니까,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졌으니까, 꿈꿔봐야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냥 이대로 순응해야 하는 거죠. 누군가는 감사할 줄 모르는 꼬마 일꾼을 꾸짖기도 합니다. 그래도 꼬마 일꾼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기로 합니다.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몬스터가 꼬마 일꾼을 꿀꺽 삼킵니다. 몬스터의 뱃속으로 들어간 꼬마 일꾼은 그곳에서 몬스터의 실체를 알게 됩니다.    



돈을 지키기 위해 약속을 버리는 사람들




하지만 어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약속보다 돈을 지키고 싶어 했다.

-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



  독일의 도시 하멜른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니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은 하멜른의 전설을 토대로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참담한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이상의 시 「오감도 제1호」의 아해(아이)들이 무서움을 안고 도로를 질주하는 혹은 질주해야만 한다면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작은 사람들은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한 일터로 향해야 합니다.


  우글거리는 쥐 떼로 골치를 앓는 마을에 한 사나이가 나타납니다. 그는 피리 소리로 쥐를 없애 줄 테니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 달라고 하죠.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화가 난 사나이는 피리를 불어 아이들을 사라지게 합니다. 시간이 흘러 마을에 다시 아이들이 태어나 자랍니다. 아이들은 정당한 대가와 안전을 약속받고 일터로 향하지만 이번에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가 아니라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합니다. 어른이 아니니 일한 만큼의 대가도 받지 못하고요. 이들은 그냥 작은 사람일 뿐입니다. 첫 번째 작은 사람도, 두 번째 작은 사람도, 세 번째 작은 사람도, 그다음 작은 사람도, 또 그다음 작은 사람도…… 너무나 많은 작은 사람들이 쓰러집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들이마셔서, 문이 열리지 않아서, 더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서 등등 이들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채 위험으로 내몰립니다. "28년 전, 실습 현장에서 다시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친구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라고 밝힌 작가의 글을 보고 있으니 변하지 않은 현실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더더더 몬스터』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도 인간보다는 물질이 더 중요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 더 더 많이'를 원하는 자본가들을 위해 노동자들은 쉴 새 없이 일합니다.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로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궁색합니다. 그나마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더 큰일이 벌어질 수 있기에 불합리한 상황을 그냥 견딜 수밖에 없지요. 동료가 사고로 죽었는데도 오늘의 생산을 위해 계속 일을 해야만 하고, 갑질과 횡포와 모욕을 참으며 지금 이 순간도 참아야 합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사원 등으로 계층이 나눠지고, 성과에 따라 연봉과 대우가 달라지니 서로 연대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니 경쟁은 더 치열하고, 개인은 더 고독하고, 문제가 생겨도 개선하기가 어렵지요.


  노동을 통해 기쁨과 보람은커녕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한 상황에서, 몬스터가 거의 모든 이익을 가져가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당연한 사회에서, 불평등은 심해지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환경에서 개인의 마음만 챙긴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그들과 달리 나는 안전한 환경에서, 나름의 특권을 누리며, 만족스러울 만큼의 돈을 벌고 있으니 행복하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진정한 행복을 알지 못해서입니다. 다른 이에게 닥친 비극이 자신에게는 오지 않는다는 착각과 오만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 병들게 할 뿐입니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에서 말하듯 행복은 단순히 개인적 만족을 만끽하는 삶을 통해서는 맛볼 수 없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인간적인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생활에서 느끼는 보람과 만족이고,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회이기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진정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해요. 즐겁게 일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꼭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더는 몬스터에게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 더는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기 위해서, 진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죠.



  산업재해로 하루에 약 여섯 명의 노동자가 죽고 자살로 하루에 수십 명의 이웃이 죽고 있는데, 나 홀로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거나 명상이나 마음챙김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사회로부터의 자발적 격리일 뿐 행복이 아니다. 사회를 위한 창조 활동이나 사회적 부정의를 반대하는 투쟁을 외면하고 개인의 안식과 평온을 추구하는 것은 반사회적인 행위다.
  사회와 집단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은 개인의 평온이 곧 행복이라는 황당한 궤변일 뿐이다. 만일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면 의식이 없는 돌멩이에게도 행복이 있을 것이고, 죽은 사람이야말로 제일 행복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행복은 나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위해, 가짜 행복이 아니라 참다운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데 있으며, 현실을 떠나 주관적 심리가 아닌 현실 속 사람의 생활과 삶에 있다.


-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연대와 약속의 힘




아침이 왔고
나는 약속을 잊지 않았어.

- 약속 -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어른들은 신의와 생명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약속을 저버렸고, 그로 인해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불행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막을 수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약속』의 소녀는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어른들과 다른 선택을 합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에서 모티브를 얻은 『약속』은 더럽고 가난하고 흉측한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녀가 서술자로 등장합니다. 소녀가 자란 그곳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아 삭막하고, 부서진 곳이죠. 그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도시를 닮아 더럽고, 가난하고, 흉측합니다. 아무도 웃지 않는 도시에서 소녀는 자신만큼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훔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소녀는 한 노부인을 만납니다. 빵빵하고 불룩한 노부인의 가방을 낚아채려 하자 노부인은 엄청난 힘으로 버티지요. 서로 맞선 끝에 노부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걸 심겠다고 약속하면, 놓아 주마." 소녀는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싶지 않은 채 가방에 있을 음식과 돈을 갖기 위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가방 안에는 소녀의 예상과는 다른 게 있습니다. 푸르디푸른, 흠 없이 온전한, 수많은 도토리들 뿐이죠. 소녀는 도토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신이 한 약속이 뭔지 깨닫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풍요로움을 느꼈고, 아침이 되자 그 약속을 실행하지요.  


  노부인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방 가득히 도토리를 넣고 다니며 자신과 뜻을 같이 할 누군가를 찾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일부러 소녀에게 가방을 빼앗겼을 거예요. 어쩌면 노부인도 누군가 덕에 그 깨달음을 얻었을 수도 있지요. 처음에 소녀는 돈과 음식을 얻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랬기에 소녀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었어요. 자신이 기대했던 것 대신 도토리로 가득한 가방을 보면서 실컷 욕을 하고, 분노하면서 도토리를 쓰레기통에 버렸을 수도 있었죠. 하지만 소녀는 도토리를 통해 처음으로 희망을 발견합니다. 노부인이 자신에게 왜 이것을 심으라고 했는지 그 의미를 깨닫자 소녀는 아주 성실하게, 더럽고 흉측한 것들을 치워 내면서 도토리를 심고 심고 또 심습니다. 시작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푸른 싹이 돋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지만 노부인은 소녀를, 소녀는 도시와 사람들을, 또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는 세상과 사람들을 변화시키면서 건강한 사회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에서 말하듯 행복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더럽고, 가난하고, 흉측한 도시에서는 아무도 웃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두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혼자서는 어렵기에 함께 해야 하죠. 『약속』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요.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야 하는 행복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는데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를 읽은 후에는 머릿속에 균열이 왔습니다. 느낌표와 물음표가 연달아 나타났다가, 이 모든 게 파괴되었다가, 뭔가가 꿈틀거렸다가, 진공상태가 되기도 했지요. 주류 심리학과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작가의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행복의 본질과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동안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 알게 되어 다행이었고요. 동시에 그동안 행복이라 믿었던 게 허상이었나 싶기도 했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했던 노력이 다 헛된 짓이었나, 하는 마음에 허탈하기도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자 무척 난감해지더군요. 소확행과 욜로를 버려야 하는 건지,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꿀 필요가 없는 건지, 자잘한 행복을 자주 만들라거나 행복은 늘 옆에 있다는 등의 조언을 무시해야 하는 건지 헷갈렸죠. 무엇보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저처럼 소심하고 의지가 약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 건지 두려움이 담긴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세상이 변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사실 그건 너무 어렵습니다. '너 자신을 바꾸라'는 말이 더 쉽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습니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죽어가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참사가 반복되고, 약속과 공약은 지켜지지 않고,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쏙 빠져나가는 사회에서 우리의 무사와 안녕을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부조리를 외면한 채 자기개발과 자기계발을 해봤자 병든 사회에서는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없지요.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의 표지 속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리 듯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달콤함이 이 사회를 무너뜨리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하는데,


  아직은 절박함도, 사명감도 약한 저는 이 무거움을 던지고 싶다며 장바구니에 넣어 둔 옷을 살까 말까 망설이는 중입니다. 이런 제가 용기를 내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함께 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희망합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사회제도를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위험하고 고단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병든 사회를 그대로 두고 그것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 더 위험하고 고단한 일이다. 갑질이 난무하는 불의한 직장을 바꾸기 위해 싸우지 않고, 묵묵히 갑질을 감내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정신이 황폐해지고 망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직장에서 잘리지 않는 것에 안도하고 안락한 물질생활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사람다운 삶이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만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삶에서 보람과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즉 그런 사람만이 진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




*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김태형 지음, 갈매나무 펴냄

* 『더더더 몬스터』, 헤일리 웰즈 지음, 김여진 옮김, BARN 펴냄

*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고정순 지음, 노란상상 펴냄

* 『약속』, 니콜라 데이비스 글, 로라 칼린 그림, 서애경 옮김, 사계절 펴냄



 

이전 09화 맨얼굴로도 충분할 수 있는 우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