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싶은 꿈을 이뤘습니다. 거부했지만요.

- 『행복한 여우』 X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by 꿈의 떨림


솔직히 이 나이가 올 줄 몰랐습니다



빨리 늙고 싶었습니다.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기에 지금의 힘겨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지금의 고통을 잊겠지, 나이가 들면 이해심이 깊어지겠지, 나이가 들면 웬만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나이가 들면 열등감도 사라지겠지, 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동시에 스물다섯 살 이후의 삶을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 스물다섯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린 마음에 스물다섯 이후는 너무 까마득하고 아득한 날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제 삶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늦은 시각까지 노래방에 있다가 단속에 걸렸습니다. 그 후로 더더욱 빨리 늙고 싶었습니다.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밤 10시 이후에는 노래방에 있으면 안 됐는데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의 친구들은 11시가 넘도록 노래방에서 열정적인 감수성을 뿜어내고 있었지요. 형사들이 신분증을 요구했는데 신분증이라고는 학생증밖에 없던 저희는 손을 벌벌 떨면서 진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 와중에 몇 시 몇 분에 누구의 무슨 노래를 부르다가 이렇게 됐는지 쓸 때는 이건 코미디인가, 싶더라고요. 노래방을 나온 저희는 우리가 노래방을 나올 때까지 주인이 계속 노려보더라, 이런 쪽은 조폭과 연계되어 있으니 우리를 해코지할지도 모른다, 우리 때문에 영업정지를 당했으니 업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물갈이를 위해 노래방 주인이 가짜 형사를 만든 거다 등등의 정보를 교환하면서 집으로 왔습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집 반대편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고, 몇 정거장이 지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노래방에서 저희 집까지 지하철로 한 정거장인데 걷는 게 더 빨랐을 거리를 조폭 아저씨들이 쫓아올까 봐 지하철을 탔었거든요. 지하철 안에서 꽤 시간을 허비한 후에 간신히 막차를 타고 집에 왔습니다.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공포에 질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돌아봤던 것만 생각납니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까 봐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조폭들이 저희 가족을 건드릴까 봐 무서웠습니다. 차라리 부모님 손에 죽는 게 고통은 덜하겠다, 싶었죠.


스물두 살이 됐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 술집에 가도, 늦은 시각까지 노래방에 있어도 안전한 나이였으니까요. 그래도 이런저런 문제에 부딪칠 때면 또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습니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할머니가 되면 다 괜찮아지겠지, 라며 빨리 죽을 수 없다면 빨리 나이 들게 해 달라 빌었습니다.


스물여덟이 되니 나이 드는 게 무서워지더군요. 없을 줄 알았던 스물다섯 살 이후의 삶이 버거웠습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뭘 했는지 생각할 때면 길을 가다가도 한숨이 나왔습니다. 서른이 된다는 게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지루하고 고루하다 느꼈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만 들으면 그렇게 소주가 당기더라고요. 그때 알았습니다.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던 그때는 제게 그 나이가 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요. 한편으로는 그 나이가 오면 지금과 달리 멋지고 편안한 삶을 살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는 걸요.



시간이 바꿔놓은 것



몇 년 전, 1990년대 초반에 반영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16부작의 드라마를 30분 정도로 짧게 편집한 영상이었는데 배우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젊은 시절의 배우들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푼수 혹은 못된 시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던 그 배우는 청순하고 가련하고 청초하더라고요. 어찌나 예쁘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부터 거울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늙겠구나, 생각할 때면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지 않나 위안을 얻다가도 얼굴에 쌓인 세월을 감지할 때면 한숨이 나왔습니다. 간혹이었지만 삼십 대 중반에도 대학생 소리를 들었고, 술집에서 저만 콕 집어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 했고, 제 나이를 들으면 다들 놀랐기에 얼굴에 보이는 나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늙는 건 한 순간이라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싸구려 화장품만 쓰다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된 제품으로 바꾼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늙고 싶었는데 이젠 그때의 철없던 시기를 후회하면서 젊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습니다. 그제야 시간의 무서움을 알아버렸습니다. 젊음을 낭비하고, 젊음을 누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림책 『행복한 여우』의 여우가,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도리언이 나이 드는 자신을 왜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깊이깊이 이해했습니다.


“파커가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올 거요. 이 뙤약볕에 오래 있다가는 얼굴 망가집니다. 그러면 바질이 당신 얼굴을 그리지 못할 거요. 햇빛에 태워서는 안 되죠. 보기 흉해집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도리언 그레이는 정원 끝자락에 놓인 의자에 앉으면서 웃음이 담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게는 그게 아주 중요한 것이오, 그레이 씨.”
“왜죠?”
“그건 당신이 가장 멋진 청춘을 지녔기 때문이지요. 청춘이라는 게 우리가 지니고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단 하나의 것이니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헨리 경.”
“물론 지금이야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지요. 그러나 언젠가 당신이 늙어 주름살도 패고 추해지면, 생각이 당신 이마에 주름살로 낙인을 찍고 열정이 당신 입술을 섬뜩한 불길로 지질 때가 되면, 그때가 되면 느끼게 될 걸요. 소름 끼치도록 느끼게 될 겁니다. 지금이야 어딜 가더라도 당신의 매력으로 온 세상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될까요……? (중략) 미(美)는 천재성의 한 형태지요. 실제로는 천재성보다 더 지고한 것입니다. 미는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여우와 도리언 그레이의 행복의 조건



『행복한 여우』의 여우는 붉은 털을 갖고 있습니다. 매우 아름답지요. 여우는 열심히 꽃밭을 가꾸고, 산책을 하고, 산책하다 강물을 만나면 그 물에 자신을 비추고는 종일 털을 다듬기도 합니다. 여우는 이 숲에서 자기가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는 강물에 비친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글쎄 붉은 털 사이로 하얀색 털이 하나둘 나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하나하나 뽑았지만 하얀 털은 뽑을 수 없을 만큼 점점 많아집니다. 여우는 하얀 털에 염색을 하기도 하고, 빨간 꽃으로 가리는 등 노력을 하지만 완벽하게 가리지 못합니다. 여우는 더 이상 꽃밭을 가꾸지 않고, 산책도 하지 않고, 강물을 보면서 털을 다듬지도 않습니다. 여우는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동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도리언은 매우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돈 있는 외할아버지 덕에 가난을 모르고, 매우 순수하지요. 그런 도리언이 자신의 초상을 그린 화가 바질의 친구 헨리를 만난 후로 본질이 흔들릴 정도로 변합니다. 헨리는 도리언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더니 곧 그것이 얼마나 짧은지 경고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도리언은 젊음에 집착합니다. 바질이 완성한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는 자신은 영원히 젊은 상태로 있고, 그림이 늙어간다면 무엇이든 다 줄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그 소원은 진짜 이루어집니다. 도리언이 추악한 행동을 할 때마다 그림 속 도리언의 얼굴이 바뀝니다. 현실에서의 도리언은 여전히 젊고 아름답지만 그림 속의 도리언은 나이 들고, 추악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도리언이 욕망을 탐닉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할 때면 현실의 도리언이 아닌 그림 속의 도리언이 일그러지고 징그러워지죠.


“사람이 멋진 모습을 잃으면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간에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걸. 당신 그림이 가르쳐 준 겁니다. 헨리 워튼 경의 말이 정말 옳아요. 우리가 소유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청춘이라는 것. 제가 늙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전 제 목숨을 스스로 끊을 겁니다.”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여우와 도리언은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잘 압니다. 여우는 이 숲에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며 흡족해하고, 도리언은 헨리를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각합니다. 이 둘에게 젊음을 통해 완성된 외모는 행복의 조건이자 모든 것이죠. 동시에 불행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으며, 외모는 시간이 갈수록 변하니까요.


여우는 자신의 붉은 털이 하얀색 털로 변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누가 볼까 봐 두려워하다가 결국 동굴 속으로 숨었습니다. 도리언은 그림 속 자신에게 질투를 느끼면서 그림이 자기 대신 늙어주길 바랐습니다. 그 소원이 이루어졌지만 도리언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 타락할 때마다 섬뜩해지는 초상화 속 자신과 내면이 어떻든 겉으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자신 사이에서 불행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여우와 도리언



사르트르는 "타자, 그것은 지옥이다"라고 했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해야 하는데 우리는 상대가 없는 순간에도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행동합니다. 이렇게 타자는 주체이던 '나'를 객체로 만들어 버립니다. 남들의 시선을 무서워하고, 신경 쓰면서 '나'가 아닌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사는 거죠.


여우와 도리언 역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여우는 자신의 하얀 털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숨기려 했습니다. 산새를 만나도 반갑지 않았고, 자신의 꽃밭도 가꾸지 않았지요. 도리언 역시 헨리로부터 받은 찬사와 경고로 인해 젊음에 집착했습니다. 자신을 쾌락으로 이끄는 헨리와 도덕으로 이끄려 한 바질 사이에서 그는 헨리를 택했습니다. 도리언은 헨리를 이상화하고, 존경하면서 그의 뜻에 맞추려 했습니다.


파국으로 끝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달리 『행복한 여우』는 행복하게 끝납니다. 하지만 동굴에서 나온 여우가 작은 새의 말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부분은 아쉽습니다. 물론 타인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타인이 있기에 우리는 잘못을 깨닫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양심을 지키지요. 하지만 자신보다 상대의 비중이 높다면 그건 문제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타인에게 기대고 휘둘리는 도리언과 여우가 안쓰러우면서 답답했습니다. 그들에게 향한 분노는 결국 저에게로 향하는 감정이겠지요.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꿉니다



시간은 외모뿐 아니라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관계는 떠난 지 오래고, 변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사라지거나 달라졌습니다.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고, 번뜩이며 튀어나오던 아이디어도 고갈되었습니다. 몸은 점점 무겁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깁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던 그때 제가 참 예뻤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스물여덟 살에 그렇게 두려웠던 서른이 얼마나 좋은 나이인지 이제는 압니다. 그 가볍고 좋은 날들을 저는 왜 그렇게 버거워했을까요.


2021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TV인터뷰에서 누군가가 마흔이 다가오니 심란하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TV를 보던 조가 제게 "부인은 마흔이 다가오면 좋겠지"라고 하더군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만 나이로 해도 가볍게 마흔을 넘긴 지금은 정말 마흔을 앞두고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요, 과거에 나는 행복했나, 생각하니 아니더라고요. 한창 좋을 때라고 말하는 20대와 30대 때 저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여우와 도리언처럼 남의 시선에 갇혀 살았습니다. 제 만족이 아닌 타인의 만족을 위해 일했고, 남들의 평가에 웃고 울었습니다. 스스로 저를 인정하지 못했기에 끊임없이 외부에서 인정을 얻으려 했습니다.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쉽게 깨졌고, 회복하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그때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지금도 가끔씩 마음이 아픕니다. 그때의 저는 젊었던 제가 싫어 빨리 늙고 싶었고,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길 바랐습니다. '지금-여기'가 아닌 다른 시간의 다른 공간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고요.


지금은 그때에 비해 많이 뻔뻔해지고 당당해졌습니다. 들키고 싶지 않았던 비겁하고 비굴한 저를 조금씩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별 것 아닌 일로 수치심을 느끼면서 자학하고 또 자학했는데 지금은 그 정도쯤은 그러려니 합니다. 열등감으로 미움을 키우고 키웠는데 지금은 상대와 저를 그 정도로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이젠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면서 피할 건 피하고 취할 건 취하려고도 합니다. 이것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괜찮습니다. 경계를 허무니 가능성도 높아지더라고요. 어떤 부분은 포기하고, 어떤 부분은 인정하면서 전보다는 마음이 편해졌어요.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도 알게 됐고,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도 느끼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폭도 넓고 깊어졌습니다.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많이 보고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과거의 저와 비교하면 분명 성장했습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나이를 먹고, 외모가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주름이 늘고, 피부에 탄력을 잃고, 몸이 굽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그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주름마다 삶의 내공을 담고 싶습니다. 눈동자에 깊이를 채우고, 생각과 언어에 향기를 담고 싶습니다. 비록 몸은 늙더라도 영혼은 맑고 순수할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이젠 예쁘고 잘 생겼다, 가 아닌 온화하고 편안하다, 라는 말이 필요하니까요.


아! 어려 보인다는 말도 있으면 좋겠어요.


2020년 12월 31일 조카와 동생과의 카카오톡
2021년 1월 1일 조카와 동생과의 카카오톡


올해 아홉 살이 된 조카가 열흘 전부터 저와 막냇동생에게 매일 카카오톡을 보냅니다. 조카가 어렸을 때보다 요즈음이 더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친구의 관심사의 대부분을 저는 알 수 없거든요. 조카는 '캐치 티니핑'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빠져있습니다. 저와 동생에게 이것을 꼭 보라고 재촉하죠. 이번 주에 '캐치 티니핑'이 끝났다면서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리냐며 아쉬워하는 조카에게 '다음 주 금방 온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원래는 빨리 오는데 기다리면 너무 오래'라고 답이 왔어요. 이 글을 읽는데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이 아이에게는 TV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지루하고 초조하고 길고 길 거예요. 제게는 무엇을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든 시간이 빨리 흐르는데 말이죠. 조카는 '캐치 티니핑'을 보고 싶어 일주일이 후딱 가길 원합니다. 반대로 저는 시간이 아깝고 아쉽고 애틋해서 제발 천천히 가길 바라고요. 몇 년 전만 해도 몰랐던 시간의 무서움과 소중함을 이제는 알아차리고 생각하고 깨닫습니다. 이게 다 나이를 먹은 덕분이죠.


동굴 속에서 시간을 견디면서 여우도 많이 생각하고 깨달았을 겁니다. 온통 하얀 털로 덮인 자신을 작은 새가 아름답다고 했을 때, 여우는 겉모습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보기 위해 강물에 자기를 비췄을 겁니다. 그렇기에 여우는 이 숲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우가 아닌 이 숲에서 꽃과 나무를 가장 잘 가꾸는 여우로 자신을 정의하고 인정했습니다. 여우가 작은 새의 칭찬만으로 자신을 바라봤다고 착각했는데 여우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여우를 오해했습니다.


도리언도 좀 더 일찍 자신의 영혼을 바라봤다면 좋았을 텐데요. 저도 좀 더 일찍 이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이렇게 후회하고 아쉬워하다가 마음을 고칩니다. 아직 늦지 않았잖아요.



그래도 꿈을 이뤘습니다



몇 번이나 거부했는데 나이 먹고 싶었던 꿈을 이뤘습니다. 드디어 20대 때 제가 원하던 그 나이가 됐습니다. 그때는 이 나이가 엄청 많은 줄 알았는데 막상 이 나이가 되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상실감도 있지만,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허무하기도 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로 돌아가고도 싶지만 불가능한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지금에 만족하려 합니다. 어쨌든 제가 원하던 나이가 됐으니까요. 과거에 제가 느꼈던 것과 달리 젊고 괜찮으니까요. 이 이후의 삶은 생각한 적이 없지만 살아 있다면 덤이라 여기면서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꿈을 이룬 오늘부터 덤으로 얹어질 시간 동안 겉모습보다 영혼을 가꾸려 합니다. 타인을 바라볼 때도 그의 내면을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진짜 아름다워지겠습니다. 그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행복한 여우』를 읽은 저에 대한 예의니까요.




* 행복한 여우, 고혜진 지음, 달그림 펴냄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지음, 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