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진짜 나'로 살고 싶나요?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X 『달과 6펜스』

by 꿈의 떨림



다르지만 같은 호랑이 씨와 찰스 스트릭랜드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의 호랑이 씨를 보면 고갱을 모델로 했다는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가 떠오릅니다. 이 말을 하자 L은 제발 그 둘을 비교하지 말라고 하네요. 호랑이 씨는 귀엽지만 스트릭랜드는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요. L의 말처럼 이 둘은 다릅니다. 호랑이 씨의 파격적인 행동은 다른 동물들을 놀라게 하고 불쾌하게 했지만 그들의 일상을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트릭랜드의 행동은 그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보살펴 준 사람들의 인생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거나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호랑이 씨는 자신과 주변 동물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지만 스트릭랜드는 살아 있는 동안 그렇지 못했습니다. 따분한 게 싫어 즐거움을 찾겠다고 한 호랑이 씨는 정말 즐거워 보이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스트릭랜드에게서는 행복만 보이지 않습니다. 호랑이 씨를 보면 유쾌하고 경쾌한데 스트릭랜드를 읽으면 여러 개의 감정이 얽히고설켜서 복잡하기만 합니다.


스트릭랜드는 소설 속 주인공으로는 무척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그가 저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가차 없이 관계를 끊었을 겁니다. 그 사람이 제 가족이라면 매일 밤마다 원망과 저주를 퍼부었을 거예요. 호랑이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약간 냉소적이기는 하지만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밝고 쾌활해서 그렇지, 호랑이 씨가 가까이 있다면 견디기 힘들 거예요.


작품의 분위기와 이 둘의 행동이 빚어낸 결과가 다를 뿐 호랑이 씨와 스트릭랜드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림책에 없는 부분을 상상으로 채울 때면 호랑이 씨로 인해 상처 받은 친구들도 꽤 될 듯합니다.


호랑이 씨와 스트릭랜드는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둘은 기존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는 겁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면서 순수한 열정을 쏟아부었죠. 그 결과 호랑이 씨의 기이한 행동에 기겁하던 동물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찾기 시작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스트릭랜드는 죽은 후에 위대한 예술가가 됩니다. 그의 삶은 이야깃거리가 되고, 그의 그림은 많은 이들을 매혹합니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 전혀 상관 않는 사내가 여기 있었다. 그러니 인습 따위에 붙잡혀 있을 사내가 아니었다. 이 사내는 온몸에 기름을 바른 레슬링 선수처럼 도무지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자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 달과 6펜스 -



'6펜스'의 삶을 버리고 '달'을 찾아 떠난 호랑이 씨와 찰스 스트릭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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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씨는 친구들과 차를 마십니다. 멋진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신사들의 상징인 모자를 쓰고 있네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우아하고 새침한 표정을 짓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호랑이 씨는 따분하고 지루한 표정입니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 시내에서 꽤 알아주는 증권 중개인입니다.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이자 정직한 증권 중개인일 수는 있겠지만 별다른 특징이 없고 사교에 재능이 없는 따분한 사람이죠. 호랑이 씨와 스트릭랜드는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면서 주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 씨는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두 발로 걷는 게 아니라 네 발로 기어 다니는 호랑이 씨를 본 이웃 동물 대부분은 그를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호랑이 씨가 옷까지 벗고 뛰어다니자 동물 친구들은 더는 참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숲으로 가서 멋대로 살라는 코끼리 부인의 말에 호랑이 씨는 바로 그거라며 숲으로 달려갑니다.


스트릭랜드 역시 어느 날, 아내에게 편지 하나 남겨두고 파리로 떠납니다. 떠나는 이유와 미안하다는 말 하나 없이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문장만 남겨두고 말이죠. 소설의 화자인 '나'는 스트릭랜드 부인의 부탁으로 그를 만나러 파리로 갑니다. 그곳에서 만난 스트릭랜드는 런던에서의 모습과 완전히 다릅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해놓고 죄책감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 그가 불쾌한데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 같으면 대체로 세상일에 적당히 타협하고 말지만 그는 그러한 유혹에 조금도 꺾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그를 칭찬할 수는 없다. 그는 그런 유혹조차 느끼지 못했다. 타협이란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파리에 살면서도 그는 테베 사막에 사는 은자보다 더 고독했다. 그가 친구들에게 바란 것은 오직 자기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아부었다.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희생시켰다(자기희생쯤이야 많은 사람들이 하지만). 그에게는 비전이 있었다.
스트릭랜드는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긴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가 위대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 달과 6펜스 -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모두가 잘 살고 있어요.

호랑이 씨만 빼고요.

호랑이 씨는 바르게만 사는 게 싫어졌어요.

-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다니는 것도 모자라 옷까지 벗어던진 호랑이 씨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한 혁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본모습이 아닌 보여줘야 하는 모습으로 살면서 호랑이 씨는 많이 답답했을 겁니다. 그에게 모자와 나비넥타이와 양복은 멋의 상징이 아닌 구속 그 자체였겠죠. 호랑이 씨는 우아하고 점잖게 앉아 새침한 표정을 짓는 대신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말 즐거워하는 게 뭔지 찾아내죠.


스트릭랜드는 안정된 삶을 과감하게 버립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든 그런 건 전혀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예술에만 집착하죠. 이런 그가 어떻게 40년이 넘는 세월을 평범하게 살았는지 의문입니다. 자신의 그림을 알아보는 이가 없고, 돈이 없어 오랫동안 굶고, 병에 걸려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놓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과 예술을 완성하지요.

호랑이 씨와 스트릭랜드는 물질적인 현실을 상징하는 '6펜스'를 떠나 꿈과 이상을 상징하는 '달'의 세계로 떠나면서 온전한 '나'로 살고자 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호랑이 씨와 찰스 스트릭랜드


자신의 욕구에 따라 사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아는 것도 어렵고, 그것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개인의 욕구가 기존의 관습과 타인의 욕구와 충돌할 때면 저는 적당히 타협을 합니다. 숨길 건 숨기고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면서요.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어떻게 보는가, 입니다. 이 일이 남들 눈에 좋게 보일지 아닐지, 이렇게 하면 비난을 받을지 칭찬을 받을지 등이 우선순위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건지, 상대가 원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인정을 받으면 그 순간은 기분이 좋지만 그 뒤에는 알 수 없는 허무와 불안이 몰려옵니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간절하게 원하다가도 눈치를 보면서 그만두기도 하고, 어차피 안 된다면서 미리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진정한 '나'로 살려면 용기가 필요한가 봐요. 『달과 6펜스』에 대해 L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트릭랜드가 갖고 있는 용기가 부럽다고 했습니다. 미움받고 비난받을 용기가 넘치고 넘치는 그가 어찌나 부럽던지요.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하든,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봐 주든 신경 쓰지 않고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 그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제 말에 L이 이건 용기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아무리 숨겨도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호랑이 씨도, 스트릭랜드도 용기를 내어 '나'가 된 게 아니라 자신의 본성을 숨기지 못했기에 진정한 '나'가 된 거였죠.


두려움조차 없던 것으로 만드는, 어쩔 수 없이 뿜어질 수밖에 없는 그 강렬하게 빛나는 본성이 아무래도 저에게는 없나 봅니다. 용기라도 내야 하는데 이것마저 쉽지가 않네요. 호랑이 씨와 스트릭랜드가 갖고 있는 억누를 수 없는 그 자연스러운 본성이 정말 탐납니다.

그 당시 우리는 다들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수줍어했던 듯하고 웃음거리가 될까 봐 내놓고 잘난 척하지도 못했다. 이들 고상한 보헤미안들의 세계에 정절같은 것을 대단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오늘날 만연해 보이는 천박한 난잡성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점잖은 침묵의 휘장으로 우리들의 기행을 가리는 것을 위선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떠한 것도 노골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여성은 아직 자기 본연의 가치를 다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다.

- 달과 6펜스 -


그는 자신이 찾는 미지의 그것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망설임 없이 대상을 단순화하고 뒤틀었다. 사실이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와는 관계없는 무수한 사실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만을 찾았다. 우주의 혼을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해 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그림들에 혼란과 당혹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 있는 정서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나는 스트릭랜드에게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억누를 수 없는 어떤 공감이었다.

- 달과 6펜스 -





정말 '진짜 나'로 살고 싶나요?


그토록 간절하게 '진정한 나'로 살고 싶다 했지만 솔직하게 고백하면 '진짜 나'가 아닌 '이상적인 나'로 살고 싶습니다. 진짜 제 모습은 멋있지도 않고, 열정적이지도 않고, 뛰어나지도 않고, 강렬하게 빛나는 운명도 없으니까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면서 새로움을 창조하고,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상황에 맞게 뻔뻔하기도 하고, 겸손하기도 하고, 다정하기도 하고, 단호하고도 싶은데 현실의 저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데도 눈치가 없습니다. 자존감은 바닥인데 간혹 비뚤어진 우월감이 튀어나옵니다. 과연 용기라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겁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씩 무모한 객기를 부립니다.


비범한 능력과 따라잡을 수 없는 현명함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사람이 '진짜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왜 비이성적으로 설정한 '이상적인 나'를 버리지 못하는 걸까요. '진짜 나'와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의 간극은 왜 이렇게 떨어져 있는 걸까요.


'진짜 나'로 산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형편없는 모습을 인정할 때, 부끄러운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일 때 '진짜 나'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때 '진짜 나'는 성장하고 발전하지요. 그런데 저는 '진짜 나'로 살고 싶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나'라는 말속에 '원하는 나'라는 의미를 담아두고는 '지금의 나'를 미워하고 싫어했습니다. 자유를 꿈꾸면서 책임지고 싶지 않았고, 많은 부분을 타인에게 의지했습니다. 이상을 꿈꾸면서 현실을 놓지 못했고, 현실을 부정하면서 이상으로 향하지도 못했습니다. 도저히 현재형으로 쓸 수가 없어서 과거형으로 씁니다. 양심에 찔려 현재형으로 바꾸려고 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그래서 그런가요, 스트릭랜드 부인인 에이미에게 자꾸 마음이 갑니다.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스트릭랜드, 그토록 사랑하는 부인을 스트릭랜드에게 빼앗기고도 그들을 지원하는 더크 스트로브, 스트릭랜드에게 버림받은 후 목숨을 끊은 블란치 스트로브, 열일곱 살에 스트릭랜드와 결혼해 그가 죽을 때까지 헌신한 아타와 비교하면 에이미는 너무나 보편적인 인간입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동정심을 이용할 줄 알고, 자신의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합니다. 그녀는 고상한 여자란 남의 돈으로 살아야 체면이 선다는 그 시대의 가치관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니 돈 한 푼 남기지 않고 떠난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수치스러웠을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요. 지금 시대의 가치관에 맞춰 이상적인 자기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에이미가 저와 당신 같아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잘 살고 있다고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사업은 잘 되어 챈서리 레인에 사무실을 내고 있었다. 자기가 타자를 직접 치는 일은 별로 없었고, 아가씨들을 네 사람 고용해 일을 시키고 그들이 친 것을 다듬는 일을 주로 했다. 그 일을 좀 멋지게 하고 싶었는지 그녀는 파란 잉크와 빨간 잉크를 많이 썼다. 제본할 때는 여러 가지 엷은 빛깔의 물결무늬 명주처럼 보이는, 결이 거친 종이를 사용했다. 그래서 일은 깔끔하고 정확하게 한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돈을 꽤 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아무래도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는지 틈만 나면 자신이 괜찮은 집안 출신임을 일깨워주려고 했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자기가 아직은 미천한 계층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납득시키려고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있는 대로 들먹거리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했다. 또한 부인은 자신의 용기와 사업 수완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겼고, 다음날 밤 사우스 켄징턴에 사는 어느 왕실 변호사와 저녁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더 기쁘게 생각했다. 아들이 케임브리지에 다닌다고 말하면서 흐뭇해했고, 사교계에 나간 지 얼마 안 된 딸에게 댄스 초청이 밀려든다는 말을 할 때는 살짝 소리 내어 웃기까지 했다.

(중략)

"하시던 일은 물론 그만두셨겠지요." 내가 물었다.
"그럼요." 그녀는 쾌활하게 대답했다. "딴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취미 삼아 해본 일이었으니까요. 아이들도 자꾸 팔아버리라 하고요. 제가 과로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스트릭랜드 부인은 먹고살기 위해 온갖 창피스러운 일을 했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녀 역시, 고상한 여자가 흔히 갖는 속일 수 없는 본능, 그러니까, 남의 돈으로 살아야 정말 체면이 선다고 여기는 그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달과 6펜스 -



'진짜 나'와 '현실의 나'와 '이상적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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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프레드릭』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일방적이고 노골적으로 주인공을 추켜세우는 이야기에 화가 났었죠. 성실하게 일한 쥐들을 들러리로 만든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는 프레드릭에게 무비판적으로 감탄을 보내는 쥐들도 답답했습니다. 예술적 감수성과 뛰어난 재능만 있으면 뭐든 허용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요, 프레드릭에게 들이댔던 잣대를 호랑이 씨와 스트릭랜드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프레드릭』은 프레드릭의 강점만 부각하면서 그를 한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게만 표현했습니다. 프레드릭의 고뇌는 보이지 않고, 갈등도 전혀 없습니다. 그와 다르게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는 호랑이 씨의 좋은 점만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호랑이 씨의 무료함을 표현하면서 그의 무례함을 보여줬습니다. 괴짜 같은 호랑이 씨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는 동물들도 담았고요. 『달과 6펜스』 역시 스트릭랜드를 무조건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스트릭랜드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한 인간 안에는 긍정과 부정과 그 무엇도 아닌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스트릭랜드가 품고 있는 그림에 대한 욕망이 한없이 순수해서 그의 이기심마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물론 그가 실제로 제 옆에 있다면 사양하고 싶지만요. 괴짜 호랑이 씨도 감당할 자신이 없고요.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데 그들처럼 살고는 싶습니다. 그 둘은 '진짜 나'와 '현실의 나'와 '이상적인 나'를 일치시키면서 살았다고 보거든요.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상적인 '진짜 나'를 완성하면서 현실을 살았죠. 숲에서 다시 도시로 돌아왔을 때 호랑이 씨는 동물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봤습니다. 스트릭랜드는 죽은 후에라도 크게 인정을 받았고요. 본모습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켰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는 호랑이 씨와 스트릭랜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 무심함, 정말 탐나네요.


그들처럼 살고 싶지만 절대로 저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 나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어요. 그렇기에 지금 제가 해야 할 건 스트릭랜드와 호랑이 씨를 부러워하면서 그들을 따라 하는 게 아닙니다. 제게 중요한 건 '진짜 나'와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좁히는 것이죠. 이 문제를 풀어야 제 삶이 편해질 테니까요.



*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피터 브라운 지음, 서애경 옮김, 사계절 펴냄

*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지음, 송무 옮김, 민음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