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X 『달과 6펜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 전혀 상관 않는 사내가 여기 있었다. 그러니 인습 따위에 붙잡혀 있을 사내가 아니었다. 이 사내는 온몸에 기름을 바른 레슬링 선수처럼 도무지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자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 달과 6펜스 -
우리들 같으면 대체로 세상일에 적당히 타협하고 말지만 그는 그러한 유혹에 조금도 꺾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그를 칭찬할 수는 없다. 그는 그런 유혹조차 느끼지 못했다. 타협이란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파리에 살면서도 그는 테베 사막에 사는 은자보다 더 고독했다. 그가 친구들에게 바란 것은 오직 자기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아부었다.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희생시켰다(자기희생쯤이야 많은 사람들이 하지만). 그에게는 비전이 있었다.
스트릭랜드는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긴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가 위대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 달과 6펜스 -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모두가 잘 살고 있어요.
호랑이 씨만 빼고요.
호랑이 씨는 바르게만 사는 게 싫어졌어요.
-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
그 당시 우리는 다들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수줍어했던 듯하고 웃음거리가 될까 봐 내놓고 잘난 척하지도 못했다. 이들 고상한 보헤미안들의 세계에 정절같은 것을 대단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오늘날 만연해 보이는 천박한 난잡성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점잖은 침묵의 휘장으로 우리들의 기행을 가리는 것을 위선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떠한 것도 노골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여성은 아직 자기 본연의 가치를 다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다.
- 달과 6펜스 -
그는 자신이 찾는 미지의 그것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망설임 없이 대상을 단순화하고 뒤틀었다. 사실이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와는 관계없는 무수한 사실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만을 찾았다. 우주의 혼을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해 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그림들에 혼란과 당혹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 있는 정서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나는 스트릭랜드에게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억누를 수 없는 어떤 공감이었다.
- 달과 6펜스 -
사업은 잘 되어 챈서리 레인에 사무실을 내고 있었다. 자기가 타자를 직접 치는 일은 별로 없었고, 아가씨들을 네 사람 고용해 일을 시키고 그들이 친 것을 다듬는 일을 주로 했다. 그 일을 좀 멋지게 하고 싶었는지 그녀는 파란 잉크와 빨간 잉크를 많이 썼다. 제본할 때는 여러 가지 엷은 빛깔의 물결무늬 명주처럼 보이는, 결이 거친 종이를 사용했다. 그래서 일은 깔끔하고 정확하게 한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돈을 꽤 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아무래도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는지 틈만 나면 자신이 괜찮은 집안 출신임을 일깨워주려고 했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자기가 아직은 미천한 계층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납득시키려고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있는 대로 들먹거리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했다. 또한 부인은 자신의 용기와 사업 수완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겼고, 다음날 밤 사우스 켄징턴에 사는 어느 왕실 변호사와 저녁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더 기쁘게 생각했다. 아들이 케임브리지에 다닌다고 말하면서 흐뭇해했고, 사교계에 나간 지 얼마 안 된 딸에게 댄스 초청이 밀려든다는 말을 할 때는 살짝 소리 내어 웃기까지 했다.
(중략)
"하시던 일은 물론 그만두셨겠지요." 내가 물었다.
"그럼요." 그녀는 쾌활하게 대답했다. "딴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취미 삼아 해본 일이었으니까요. 아이들도 자꾸 팔아버리라 하고요. 제가 과로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스트릭랜드 부인은 먹고살기 위해 온갖 창피스러운 일을 했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녀 역시, 고상한 여자가 흔히 갖는 속일 수 없는 본능, 그러니까, 남의 돈으로 살아야 정말 체면이 선다고 여기는 그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달과 6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