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얼굴에 와 닿고, 코끝에서 풀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큰 모자를 쓰고 있을 때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에요. 하지만 파란모자는 모자를 벗고 다닐 용기가 없었어요. '사람들이 진짜 내 모습을 본다면 다들 기절하고 말 거야.'
- 파란모자 -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서 최고의 캐릭터를 뽑으라고 한다면 『이방인』의 뫼르소로 하겠습니다. 몇 명의 인물이 떠오르지만 제게는 뫼르소가 독보적입니다. 현실의 인물이라면 사양할 테지만 소설 속 인물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죠.
뫼르소는 멋있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움과도 거리가 멉니다.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것 같긴 한데 그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가난하고, 이상하고, 상식적이지도 않지요. 사람까지 죽였으니 나쁘기까지 합니다. 어머니가 언제 죽었는지 모르고, 어머니의 나이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양로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잠을 자고, 관 속에 있는 어머니를 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슬퍼하기는커녕 장례식 내내 그는 냉담하거나 무심합니다. 어머니를 묻고 돌아오면서 이제는 열두 시간 동안 실컷 잘 수 있다며 기뻐합니다. 다음 날에는 해수욕장에 나가 수영을 하고, 그곳에서 마리를 만나 하룻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뫼르소는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입니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뫼르소는 자기가 왜 비난을 받는지 모릅니다. 그저 솔직하게 말한 건데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상황과 생각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못합니다. 뫼르소의 변호사는 감형을 위해서 그러면 안 된다고 하지만 뫼르소는 사실이 아닌 얘기를 할 수 없다며 거부합니다.
『파란모자』를 읽는 내내 계속 『이방인』이 생각났던 건 너무나 다른 둘때문이었습니다. 뫼르소가 이토록 무모할 정도로 순수하게 자기를 보여준다면 파란모자는 어떻게든 자기를 숨기려 애쓰지요.
드러내지 못하는 파란모자와 숨기지 못하는 뫼르소
"사람들이 진짜 내 모습을 본다면 다들 기절하고 말 거야."
『파란모자』의 파란모자는 언제나 큰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모자에 가려져 다리만 살짝 보이지요. 파란모자가 자신의 이름을 말해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파란모자라 부릅니다. 누군가가 파란모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거나 악수를 청하면 파란모자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모자 속에서 그대로 얼어버린 듯 말이죠. 길을 걸을 때면 커다란 모자때문에 여기저기 부딪힙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죠. 사람들은 파란모자를 피하기 시작합니다. 파란모자도 허둥지둥 사람들을 피합니다. 파란모자는 사람들이 없는 깊은 숲 속이 좋습니다. 그곳에서는 모자를 벗을 수 있으니까요. 큰 모자를 쓰고 있는 일은 정말 답답합니다. 모자를 벗으면 바람과 풀향기를 느낄 수 있지만 파란모자는 모자를 벗고 다닐 용기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진짜 자기의 모습을 본다면 기절할 거예요.
『이방인』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의 시작은 서술자인 뫼르소의 엄마가 죽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양로원으로 갑니다. 슬픔보다는 사장에게 휴가를 청해야 하는 게 불편하고, 가솔린 냄새와 햇빛을 견디며 버스를 타야 하는 게 귀찮습니다. 엄마의 장례를 마친 후 뫼르소는 수영을 하러 갔다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마리를 만납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보냅니다. 어느 날, 같은 층에 사는 레몽이 뫼르소에게 부탁을 합니다. 자신이 만나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가 자기를 속였다며 그녀를 혼내주고 싶다고 하죠. 뫼르소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그 일을 계기로 레몽과 뫼르소는 자주 어울립니다. 그 때문에 어느 날, 해변가에서 아랍인들과 시비가 붙고 뫼르소는 아랍인을 총으로 쏴서 죽입니다. 1부에서 뫼르소는 순간에 만족하면서 자유롭게 살았다면 2부에서 뫼르소는 감옥에 갇힌 채 자신의 욕구를 억압받습니다. 재판에서는 아랍인을 살해한 죄보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냉담한 태도를 보인 게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장례식 다음 날 여자와 성관계를 한 것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준 뫼르소는 당황합니다. 살인사건과 관계가 없는 일로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죠. 뫼르소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이라 해도 왜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내가 그날 마음이 아팠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몹시 놀랐다. 만약에 내가 그런 질문을 해야만 할 처지라면 나는 매우 거북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내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는 습관 같은 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알려 주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나는 엄마를 사랑했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많게건 적게건 바랐던 적이 있는 법이다. 그 말에 변호사는 내 말을 가로막았고 매우 흥분한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법정에서든 예심 판사의 방에서는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다그쳤다.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내가 원래 육체적 욕구에 감정이 방해받는 일이 많은 천성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매우 피곤했고 졸렸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죽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내 변호사는 성이 차지 않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 정도로는 안 돼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날 내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거든요." 나는 대답했다. 그는 내가 좀 밉살스럽다는 듯, 이상스러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 이방인 -
들킬 때마다 뒤집어쓴 모자
누렇게 바래고, 손때가 묻은 『이방인』은 중학생 때 구입했습니다. 그 당시에 좋아하던 연예인 오빠가 『이방인』을 극찬하길래 종로에 있는 영풍문고로 바로 달려갔지요. 판형이 크지 않고, 두께가 얇아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웬걸요, 몇 줄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느라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은 왜 이러는 건지, 대체 왜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건지,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그나마 기대했던 뫼르소와 마리의 관계에서는뭔가 야릇하고 야한 장면이 있을 듯했는데 짧게 끝나는 바람에 갈증만 생겼지요. 『이방인』을 극찬했던 오빠를 생각하며 꾸역꾸역 어떻게든 읽으려 했지만 뫼르소가 체포된 2부를 몇 장 넘기고는 포기했습니다. 다 읽지는 않았지만 아는 체를 하고 싶고, 읽었다고 하기에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책이 또 하나가 또 생겼죠.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 이방인 -
대학 때 과제를 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읽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기에 쉽게 손이 가지 않더라고요. 인터넷을 검색해서 줄거리만 읽을까, 하다가 대충이라도 읽자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첫 문장에 이어진 다음 문장이 제게 충격이었어요. 단 두 줄을 읽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단숨에 책을 읽었습니다.
나는 피곤했다. 관리인이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주었고 나는 간단히 세수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밀크 커피를 마셨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해가 완전히 떠올라 있었다. 바다와 마랭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언덕들 위로 불그레한 빛이 하늘 가득 퍼지고 있었다. 언덕을 넘어오는 바람에 소금기 냄새가 여기까지 실려 왔다. 쾌청한 하루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방인 -
재판장은 나에게, 이제부터 겉보기에는 나의 사건과 무관한 것 같지만, 아마도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들을 다루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또 엄마 이야기를 하려는 것임을 알아차렸고 동시에 그것이 내게는 얼마나 지겨운 일인가를 느꼈다. 그는 왜 엄마를 양로원에 보냈느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를 돌보고 보살피게 할 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 일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괴로운 일이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어머니도 나도 더 이상 서로에게, 또한 다른 누구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리고 우리는 둘 다 각자의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대답했다.
- 이방인 -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면 가족의 죽음에 눈물이 안 나올 수 있죠. 슬픔보다 피곤을 더 강하게 느낄 수도 있고요. 장례식 다음 날, 수영을 하고 싶을 수도 있고 이성을 만날 수도 있어요. 다만 보통 사람이라면 다른 이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욕구를 참았을 텐데 뫼르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뫼르소는 순간순간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고, 그것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들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몰랐죠.
그때 심문이 끝났다는 것을 내게 알려 주기라도 하려는 듯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여전히 좀 피곤한 표정으로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느냐고만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해 본 뒤, 진정한 후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좀 귀찮다 싶은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이방인 -
또 다른 질문에, 그는 장례식 날 나의 담담한 태도를 보고 놀랐다고 대답했다. 담담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고 재판장이 묻자 원장은 구두코를 내려다보더니, 내가 엄마를 보려고 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장례식이 끝난 뒤 무덤 앞에서 묵도도 하지 않고 곧 떠났다고 말했다. 또 하나 그를 놀라게 한 일이 있는데, 장의사 직원 한 사람에게 들은 바로는, 내가 엄마의 나이를 모르더라는 것이었다. - 이방인 -
제 안에 있는 뫼르소를 숨기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냥 제 식대로 행동한 건데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나 봐요. 솔직하게 제 감정과 생각을 말한 건데 상대방은 놀라거나 눈살을 찌푸리더군요. 안 그래도 소심한데 그때마다 더 웅크렸죠. 어떻게 해야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더 이상하고 어설프고 서툰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커다란 모자를 뒤집어쓰고 보여줘야 할 모습까지 숨기려 했죠.
나를 소외시킨 날들
파란모자는 언제나 큰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다리만 살짝 보일 정도로 아주아주 큰 모자예요. 파란모자가 이름을 말해도 사람들은 큰 모자 때문에 잘 듣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름 대신 파란모자라고 불렀습니다.
- 파란모자 -
흔한 데다가 '연'으로 끝나는 제 이름을 단번에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저를 '영'과 '현'과 '은'으로 혼돈하거나, 아예 기억을 하지 못하지요. 예전에는 그들이 부르는 대로 저를 맡겼습니다. '영'이라고 하면 '영'이 됐고, '현'이라고 하면 '현'이 됐고, '저기'라고 하면 그냥 '저기'가 됐습니다.
중성적인 느낌의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개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남자로 오해를 받아서 그러느냐고 했더니 아니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이름인데 내가 지은 게 아니잖아. 부모님이긴 하지만 타인이 지어준 이름으로 살고 싶지 않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진정한 자신이 되겠다는 이 친구가 너무 멋있게 보였어요. 졸업을 앞두고 교수님이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던 그때만큼 멋있었지요.그날이 떠오르자 너답다, 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비록 피고인석에 앉아 있을지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을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 논고와 변론이 오가는 동안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마 내 범죄에 대해서보다 나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양쪽의 논고와 변론에 큰 차이가 있었던가? 변호사는 두 팔을 쳐들고 유죄를 인정하되 변명을 붙였다. 검사는 양손을 앞으로 뻗으며 유조를 고발하되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어딘가 좀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대로의 걱정거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나도 한마디 참견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 변호사는 '가만있어요, 그 편이 당신 사건에 더 유리해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나를 빼놓은 채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나의 참여 없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을 묻는 일 없이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대체 누가 피고인가요? 피고인이 된다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내게도 할 말이 있어요." 그러나 깊이 생각을 해 보면, 내겐 할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었다.
- 이방인 -
저는 한 번도 개명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제 이름에 만족하지 않았으면서 그것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죠. 제 이름이 틀리게 불려도 바로 잡겠다는 의지도 없었고요. 오히려 그럴 때면 저를 더 감추고 숨기려 했습니다. 이름뿐이 아니었어요. 그들이 잘못한 것을 알려주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들의 기준에 어긋나면 큰일 날 것만 같았죠. 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제 모습이 아닌 것을 부정하는 것도, 제 모습을 인정하는 것도 너무 어렵고 부끄러워 자꾸만 숨고 싶었습니다.
절대로 숨길 수 없는 것
숨기고 싶었고, 어떻게든 숨기려 했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노련하지도, 야무지지도, 똘똘하지도 않은 저는 감추려 하면 할수록 더 드러냈습니다. 제 것이 아닌 것을 제 것처럼 하려다가 망했고, 제 것인 것을 아닌 척하다가 서투름과 어설픔만 남겼습니다. 그때마다 이상하다는 말은 상처였고, 때로는 호의가 무서웠지요.
뫼르소와 닮은 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소설 속 주인공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이지만 현실에서는 비난의 대상이니까요. 그래서 파란모자처럼 커다란 모자에 저를 집어넣으려 했는데 그 때문에 여기저기 부딪치기 일쑤였죠. 파란모자처럼 점점 커져가는 저를 모자에 숨길 수도 없더라고요.
파란모자가 길을 걸을 때면 쿵쿵 여기저기 부딪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요. 사람들은 파란모자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란모자도 허둥지둥 사람들을 피했습니다.
(중략)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큰 모자가 점점 작아졌어요. 숨쉬기가 힘들고 발아래 풍경도 잘 보이지 않았어요. 파란모자는 모자가 작아진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이 커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파란모자 -
아무리 노력해도 본래의 모습은 숨길 수가 없다더군요. 시간의 문제일 뿐 어떤 식으로든 드러난대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보여줘야 한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뫼르소처럼 할 수는 없잖아요. 신을 믿지 않아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는 믿는 척이라도 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하죠. 커다란 모자 안에 자신을 꽁꽁 숨겨야 하기도 하고, 여러 개의 가면을 번갈아가며 쓸 줄도 알아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네요. 결국은 그런건 가요?
나를 안다는 것
뫼르소가 타인과 자신에게 무심하다면 파란모자는 타인과 자신에게 예민합니다. 뫼르소에게는 무용하고 무감각한 것들이 파란모자에게는 지나치게 민감하고 두려운 것들입니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 둘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뫼르소는 자신의 감정에 둔하고, 자신의 상황을 전달하기 힘들어하며, 자꾸만 자신이 살인자임을 잊습니다. 뫼르소는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파란모자는 지나치게 자신을 흉측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면 기절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갇혀 답답해도 큰 모자 속에 자신을 숨기지요.
자신에 대한 무지는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뫼르소는 인간관계에서 일반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애정을 갖고 관계를 맺지도 않습니다. 파란모자는 인사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상대를 경계하고 두려워합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에 갇혀 타인 역시 그럴 거라고 판단합니다. 뫼르소가 좀 더 일찍 자신의 감정을 깨우치고 타인의 상황에 공감할 줄 알았다면, 파란모자가 자신감을 갖고 타인과 소통했다면 조금은 편안하고 행복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사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안다는 건 쉽지 않죠.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외치는 본래적인 자기를 깨닫고 본래의 삶을 산다는 건 제게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죽기 전에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고요. 그런데도 이 과정을 멈출 수 없습니다. 아프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분노도 일지만 희열과 만족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자신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싸움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니까요. 너무 거대하게 자신을 이상화하거나, 부족하고 형편없는 인간이라 몰아세우는 짓이 스스로를 얼마나 갉아먹고 있는지 알아요. 제 삶의 주체가 타인이 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겪어봤기에 다시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고요. 무엇보다 숨겨야 할 때 숨기고 드러내야 할 때 드러내기 위해서는 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뫼르소와 파란모자의 공존
『이방인』에 박수를 치며 감탄했던 건 뫼르소에게서 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감추었던 제 진심을 아무렇지 않게 혹은 당당하게 표현하는 뫼르소에게 희열을 느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슬픔보다 피곤이 더 크더라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슬픈 척을 해야 합니다. 진심은 아닌데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를 위해 상대의 눈치도 봐야 하죠. 그런데 뫼르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관계에 의미나 무게를 두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았습니다. 무심하고, 무디고, 무신경한 이 남자에게 끌리면서 동시에 그를 비난하고, 지탄하는 사람이 저라는 사실을 자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저를 숨기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죄책감과 두려움이 커졌고, 파란모자처럼 건강하지 못한 자아를 만들었죠.
뫼르소는 제가 미처 알지 못한 본성과 알고 싶지 않아 감춘 밑바닥 어딘가를 건드렸습니다. 파란모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제 모습을 확인시켜 주었죠. 뫼르소에게서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파란모자에게는 공감과 안쓰러움과 화가 뒤섞이더군요.
결국 뫼르소도, 파란모자도 제 안에 있습니다. 노련하게 이 둘의 모습이 나타나면 좋겠는데 뭘 숨기고 뭘 드러내야 할지 몰라 오늘도 한숨을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