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파도만을 쫓아 남들은 모르는 그 곳으로

by 김정영


처음 마주하는 바다를 보며

바투 카라스에 이어, 니아스 트립 역시 가는 길이 순탄치 않았다. 떠나기 전 날 리프에 다리가 갈려 서핑은 며칠간 쉬어야 했고, 떠나는 날 아침 공항에 도착하고서야 알게 된 비행기 취소 소식에, 때마침 찾아온 그 날의 복통. 그런 와중에 서비스 센터까지 내 키를 훌쩍 넘어서는 보드를 낑낑거리며 끌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항공사 측에서 스케줄 변경을 깔끔하게 해 주어 노여운 마음은 사라졌지만, 어쨌든 발리 숙소를 출발해 장장 30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니아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도 2시간이 더 걸린다는 이야기에 잠시 눈을 붙일까 생각하던 나였지만 웬걸, 두 시간 내내 잠은커녕 한시도 차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

내가 가진 표현만으로는 니아스에서 마주한 바다를 어떻게 형용할 수 없다. 어쩌면 인간의 말로도 역부족일 테다. 살면서 이렇게 큰, 크다는 말만으로는 너무나도 부족한 거대한 바다를 본 적이 있을까. 앞으로도 양 옆으로도 시야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어디까지가 끝인지 얼마나 가야 무언가 나올지 감히 가늠해볼 수도 없는 바다를.


수평선 끝까지 푸르름만이 색을 더해갈 뿐 그 아무것도 저기 저 멀리서 조용히 다가와 햇볕에 부스러지는 파도를 방해하지 않았다. 나는 마치 콜럼버스라도 된 양 그 끝을, 아니 어쩌면 시작점을 멍하니 쫓고 있었다. 그도 이런 바다를 보고 자라 더 넓은 세상을 꿈꾸지 않았을까 상상하면서 말이다.


삐걱거리며 내려가는 오래된 차창은 필름 카메라의 빛바랜 느낌을 냈고 그 덕에 나는 작은 렌즈 구멍을 통하지 않고서도 평생 간직할 이 날의 감상을 사진 몇 장으로 기억 속에 남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순간에 마음에 담기엔 너무나도 크고 벅찬 바다에, 파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끝없이 고요해 현실이라고 생각지도 못 했을 드넓은 바다에 한참을 취해 있었다.


매일같이 보던 바다를 본 것뿐인데, 어쩌면 그보다 고작 조금 큰 바다를 본 것뿐인데 이렇게나 벅찬 감정이라니. 난 아무래도 바다에서 살아야 하나보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자리엔

2005년, 니아스에는 큰 지진해일이 발생했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 조금만 가면 15년 전 쓰나미가 온 바로 그때 이후로 시간이 멈춰버린 호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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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호텔은 크고 아름답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 참혹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지금의 모습으로 미뤄보아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그곳에서 바다를 즐겼을 것을 알 수 있다. 저지대부터 고지대까지 한껏 웅장함을 뽐냈을 수십 개의 방갈로는 여기저기 찢기고 뜯겨 위용을 잃었고, 튼튼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시멘트 벽 대신 약하디 약한 담쟁이덩굴만이 부서져나간 자리를 아슬아슬하게 메우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한껏 여유를 즐겼을 커다란 수영장은 투명한 왁스 물 대신 짙은 색의 빗물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밤마다 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즐겼다는 커다란 공간은 바람만이 그 황량함을 채우고 있었다.


이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당시 6살이었던 친구는 아직도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무작정 산 쪽으로 달렸다. 언덕 위쪽에 있는 방갈로까지도 처참하게 망가진 걸 보면 그 혼돈의 시간을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어린 꼬마가 겪었을 불안함이 얼마나 거대했을지 휑한 호텔을 보며 조금 추측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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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호텔 너머로는 여전히 아름답고 고요한 바다가 보인다. 물어볼 수만 있다면 네가 한 게 맞냐고, 믿을 수 없다고 다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며 부드러운 미소만을 짓고 있었다. 불안과 안도가 섞여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콩닥거렸다.


또 한 번 바다가 두려웠다. 인간은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마주했다. 바다에 지내면 지낼수록, 파도를 가지려 하면 할수록 자연은 점점 멀게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마주하기 벅찰 만큼 크게 느껴진다. 나는 오늘도 파도를 타며 순리에 굴복하는 법을, 있는 그대로에 내 몸을 맡기는 법을 배운다.






I’ve never seen like this!

내가 니아스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일 것이다. 깜깜한 밤에 파도소리를 안주 삼아 맥주 한 잔을 홀짝이다가 문득 하늘을 보고는 지겹도록 저 말을 내뱉곤 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럴걸.


별이 진짜 반짝였다. 별이란 건 그냥 그 자리에서 조용히,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이 옅은 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줄로만 알았는데 빛이 순간 사라졌다 발하고 사라졌다 다시 발하고... 마치 그 수많은 별들이 자기가 여기 존재하고 있단 걸 알아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달까. 그렇게 진짜 진짜 반짝였는데, 내가 맥주 한 잔을 해서 그런것은 아닐테다.


이런 밤하늘을 마음 속 가득히 담는 최고의 방법은 조잡한 휴대폰 사진을 남기는 것도, 반짝임을 증명하고자 영상에 담으려 애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두 눈으로, 온 몸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나는 바이크 뒷자리에 타고 텅 빈 도로를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셔 속에 있던 먼지를 밤공기에 깨끗하게 날려보내고 텅 빈 공간을 마련하는 거다. 이 아름다운 밤하늘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속에 단 하나의 근심조각이 남아있어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고개를 치켜 올리고 품 가득이 쏟아져내려오는 별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럼 이 도로를 타고 지구 끝까지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다 조금 지치면 속에 가득 품은 밤하늘이 주는 편안함과 함께 잠이 들면 된다. 그렇게 나는 이 거대한 자연속에서 내 작고도 끝 없는 속을 비워내는 방법을, 또 무언가 가득 담아내는 방법을 배운다.





거위

이건 니아스 여행기 중 하나인데, 술을 먹고 쓴 글은 아니다.


뜨는 해를 바라보며 바다에 뛰어들고 서핑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난 뒤엔 해먹에 누워 낮잠도 좀 자다가 반쯤 마른 수영복을 입고 다시 바다로 뛰어들어가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 이곳. 나는 이곳에서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한다. 중요한 건 쏟아지는 햇살에 지저귀는 것이 참새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거위를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거위가 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흔히 생각하는 꽥꽥하는 소리보다 훨씬 기괴한 소리를 낸다. 그건 꽉꽉도 아니고 깩깩도 아니다. 꾸에엑과 끼이익의 중간 그 어딘가랄까. 처음에는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고치는 소리 아니면 쇠의 연결 부위에서 나는 마찰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거위였다.


그리고 거위는 정말 크다. 닭이나 오리보다도 훨씬. 그래서 사람조차 압도하는 포스로 우렁찬 소리를 낸다. 사실 나도 여행 와서 이렇게 거위에 대해 글을 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하여튼 거위는 이대로 지나치기에는 너무 강렬하다. 누군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렇다, 나는 매일 아침 거위 소리와 함께 눈을 뜬다.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생각해보면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오늘 들어오는 파도 중에 꽤 사이즈 있는 좋은 파도를 골라 잡고 따땃한 햇살에 조금 여유를 부리며 테이크오프, 바로 한 발, 두 발. 그리고는 기분 좋게 세 발, 네 발에 노즈까지.


이 날 아침따라 너무나도 순조롭게 노즈에 도달한터라 ‘아 오늘 파도 정말 좋다’ 생각하면서 평소 하던대로 노즈를 밟고 있던 한 발을 뒤로 빼려다가 멈칫. 평소와는 다른 탄탄함과 기분좋은 예감에 한 발을 더 내딛었는데 이럴수가, 성공해버렸다. 내가 노즈에 두 발을 모으고 서있다니... 그렇게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데 바다로 들어가던 라훌과 눈이 마주쳤다. ‘와, 내가 해낸 걸 라훌이 봤어!!’ 너무나도 기뻤던 그 순간 그는 자기 일인 양 좋아하며 크게 환호해주었고, 그걸 들은 나는 사진처럼 입을 있는대로 크게 벌리고 함박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해보고 싶었던 기술을 처음으로 성공했는데 서프버디가 바로 옆에서 그걸 보고 환호해주는 상황. 감히 단정하건대 니아스 최고의 순간이었다. 아니지, 10개월 서핑트립 막바지에 탄생한 이 장면이 어쩌면 내 서핑라이프 최고의 순간이었을지도.


그래, 내가 이 맛에 서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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