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불멸의 가수 비틀스(Beatles)의 노래 중에 ‘Let it be’라는 노래가 있다. 물론 그들의 노래는 모든 곡이 명곡이지만 특히 해당곡은 가사가 가진 의미가 있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1960년대 명분 없이 베트남 전쟁에 끼어든 미국을 보며, 간섭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Let it be)'는 반전(反戰)의 의미를 가진 노래이다.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퓰리처 사진전에 가보고서 1960~70년대에 베트남 전쟁이 얼마나 그 시기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자 인류의 비극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시대적 비극은 쉬이 잊히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매우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걸작으로 꼽히는 <포레스트 검프>,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등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참전을 한 만큼 한국영화 중에서도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꽤 있다.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인 <콰이어트 아메리칸>은 베트남 전쟁 당시는 아니고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기 몇 년 전의 긴장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겉으로는 미모의 베트남 여인을 둘러싼 미국 남자와 영국 남자 사이의 신경전을 다룬 삼각관계 영화의 탈을 썼지만, 알고 보면 영화는 그보다는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50년대 초의 호찌민(당시 사이공)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베트남이 프랑스에서 독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모습을 담아낸다. 호찌민에 머물고 있는 영국인 기자 파울러는 영국에 부인이 있지만 베트남의 젊은 여인 푸옹을 사랑하고 있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이혼해주지 않는 부인을 숨긴 채 그는 푸옹과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 푸옹은 사랑보다도 결혼을 해서 베트남을, 그리고 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런 그들 사이에 푸옹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미국인 파일이 나타난다. 파울러는 나이 든 자신과는 달리 젊고 순수한 파일을 보며 그에게 푸옹을 빼앗길까 봐 질투와 불안에 휩싸인다.
자신을 의사라 소개하며 그들 앞에 불쑥 나타난 그를 쉼 없이 경계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미국 CIA 요원이었다. 그전까지 파울러는 베트남에서 철저히 이방인의 자세를 취하다가 파일이 나타난 이후로 그의 태도는 돌변한다. 파울러의 대사 중에 'I don't take actions.(나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아)'라는 대사가 있을 정도였다. 철저하게 제3자로 팔짱끼고 바라보기만 하던 그는 파일이 그의 인생에 끼어든 후 take actions 하기(행동을 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특유의 기자적 집요함으로 미국의 전쟁 개입 기미를 밝혀낸다.
여기서 영화의 제목 Quiet American(조용한 미국인)이 얼마나 모순적인 의미를 갖는지 나타난다. 스스로를 세계의 경찰로 여기며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간섭해야 하는 미국이 어찌 조용한 미국인의 태도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게 여러 다른 이유들이 많겠지만 미국은 절대 조용히 바라보고 있지 않는다. 1950년대의 호찌민을 제대로 복원해내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문제의식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콰이어트 아메리칸>. 분명히 말해준다. Quiet American(조용한 미국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과 같이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 희생당하는 것은 베트남과 한국 같은 약자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