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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영 Sep 25. 2024

[소설] 9장. 특이 케이스(2)

[판타지 장편 소설] 댓플레이스 (That Place)

 “하!”

 안내음이 울리자 그 남자와 희주가 화들짝 놀라며 점수판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입장 가능한 커트라인 점수였다. 희주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미즈키를 보며 한번 더 놀라고 말았다.


 “흐흑…….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태 말이 없던 남자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심사대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희주는 말문이 막혔다. 저런 인간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빛이다. 


 “원래 댓플레이스에 입장하기 전에는 인간 세상에서의 기억을 지워주는 망각 주스를 드려요. 댓플레이스는 완전한 마침표이자 새로운 삶이니까요. 하지만 모두에게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처럼 타인의 삶을 치명적으로 훼손한 사람들에게는 망각 주스를 제공하지 않아요.”

 미즈키가 매뉴얼대로 건조하게 이야기했다.


 “영원히 기억하고…… 영원히 속죄하며 살겠습니다.”

 그가 흐느낌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그가 여전히 들썩이는 어깨를 진정시키지 못한 채 댓플레이스 입구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희주씨!”

 그 때, 희주가 갑자기 끼어들며 남자에게 물었다. 미즈키가 황급히 희주를 막았지만 희주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통과를…….”

 희주는 한껏 퍼붓고 싶었지만, 정리되지 않은 말들만 입 속에서 맴돌뿐이었다. 


 “아버지…… 그 아버지 덕분이예요. 분명히 그럴겁니다…….”


 남자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했다. 미즈키가 이제 그만하라며 희주를 완강히 제지하자 희주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남자는 미즈키의 안내에 따라 댓플레이스 입구로 들어갔다. 심지어 환한 빛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말이다. 희주는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그가 완전히 들어가자 심사대의 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 꽉 움켜쥔 희주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요. 문지기 교육 내용 중에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영혼들의 심사 점수를 함부로 예측하거나, 그 결과에 반응해서는 안돼요. 오늘은 처음이라 봐 드리는 거지만, 다음부턴 어쩔 수 없이 페널티예요.”

 미즈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희주의 떨리는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희주씨, 시간이 얼마 없어요. 곧 1825번 심사대에서 그 사건으로 딸을 잃은 아빠의 심사가 시작될 거예요. 이동하는 시간 생각하면 지금 출발해야 늦지 않아요. 힘들겠지만 어서 다녀와요. 다녀오면 한결 마음이 나아질지도 몰라요.”


따뜻한 미즈키의 말에 희주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딸을 잃은 아빠의 이야기가 듣고 싶기도 했다. 그 살인자가 심사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타인의 심사 결과를 함부로 알려줄 수는 없지만, 희주는 그 아빠를 찾아가 손을 잡아주며 함께 통곡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희주는 1825번 심사대를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심사가 진행 중인 끝이 보이지 않는 심사대와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기둥들을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각 심사대 앞에서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광경 속에서 희주 혼자 그 곳에 스며들지 못한 채 분리되어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희주가 1825번 심사대에 도착했을 때, 그 곳도 한창 바쁘게 심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문지기복은 입은 이가 두 명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곳도 신입 문지기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심사대 쪽으로 다가오는 희주를 발견한 문지기 하나가 다가왔다.




 “한희주씨? 반가워요. 1825번 심사대 담당 샤나야예요.”

 희주를 친절하게 맞이한 문지기는 풍성한 검은 머리에 호수처럼 깊은 눈을 가진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 미즈키에게 미리 연락을 받았다며, 원한다면 하루 종일 이 곳 심사를 견학해도 된다고 말했다. 물론, 희주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지만 말이다.


 심사대에서 여러 영혼이 통과와 탈락을 반복하며 지나갔다. 그 때, 희주의 눈길을 사로잡는 한 노인이 샤나야의 뒤를 따라 걸어왔다. 이목구비를 봤을 때 서양인이 분명했고, 등이 굽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가득했다. 


 “조셉, 인터뷰를 시작할게요.”

샤나야의 말에 희주의 귀가 번쩍 트였다. 미즈키에게 미리 들었던 이름이다. 총기 난사로 딸을 잃었다던 그 아빠였다.


“보통 사람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아주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정말 유감입니다.”

 아기를 다독이는 것처럼 포근한 그녀의 말투에 단단한 희주의 마음마저 녹는 듯했다. 희주는 새삼스레 저렇게 우아하고 따뜻한 여자는 어떤 생을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러다가 그녀 역시 심사에 통과하지 못해 문지기로 봉사 중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말 이 곳의 시스템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그렇지요. 오랫동안 마음 고생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젠 정말 괜찮아요.”

 “그렇게 보여요 조셉.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궁금해지네요. 안정 주스 한 잔 드릴까요?”

 샤나야가 안정 주스를 조셉에게 건네며 말했다. 조셉은 안정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경찰이 찾아와 딸의 소식을 전했을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젊은 경찰이 저희 집 현관문 앞에서 모자를 벗고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었죠. 총기 난사를 벌인 자가 경찰의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고는 제발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달라고 빌기도 했습니다. 그게 안되면 나를 죽여달라고 빌었습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으니까요.”


 희주는 순식간에 조셉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그녀가 당도한 곳은 검푸른 바닷가였다. 하얀 파도가 부서지며 희주의 맨발을 간지럽혔다. 그녀는 이제 막 세상의 고통을 등지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 속에 딸이 나타났어요. 아빠가 그만 괴로워하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를 원망하고 저주할 수록 아빠만 힘들거라고요. 자기는 이제 괜찮다고……. 그렇게 딸을 만난 후에 무작정 그 범인이 복역중인 교도소로 찾아 갔습니다. 처음 그와 대면했을 때 저는 확신했어요.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일말의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요. 인간이 아니라 마치 짐승과 대면하고 있는 것 같았죠. 서로 아무 말없이 바라만 보며 면회 시간을 채웠습니다.”


 조셉은 길게 이야기하는 것이 숨에 부치는지 안정 주스를 마셔가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바닷가에 서 있는 희주의 눈 앞에 수한과 한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그녀를 한껏 비웃고 조롱했다. 희주는 그들의 얼굴을 지우기 위해 허공에 대고 수없이 팔을 휘저었다.


 “그런 대화 없는 면회가 그 이후로 수십 번 이어졌어요 그 지난한세월을 이 짧은 시간에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는 동안 그도, 나도 조금씩 변해갔어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는 것인지, 자주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미운 정이 든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를 미워하고 증오했던 마음이 아주 조금씩, 천천히 작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짐승 같았던 그의 얼굴도 점점 사람의 것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죠. 아주 희미했지만 그의 얼굴에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생겨난 것을 느끼고 그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날을 기억합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조금씩 대화를 나누었어요. 수년의 시간이 지나 그는 제 앞에서 눈물로 참회했습니다. 그것이 악어의 눈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느낄 수 있었을거예요. 저도 함께 울며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했어요. 다른 유가족들에게도 진심으로 용서를 빌라고 조언했고, 그는 내 말을 따랐어요. 저는 유가족들을 수소문해서 그에게 데려갔습니다. 물론, 끝까지 오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그를 만나고 진심으로 용서한 사람들의 삶은 그 이후로 평온해졌다는 것입니다.”


 희주가 순식간에 조셉의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이야기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그도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가족들에게 끊임없이 참회했고, 비록 옥중이었지만 수감자들을 교화시키려 애쓰고 수감 생활도 성실히 했어요. 그가 병에 걸린 후로는 면회가 제한되면서 한 동안 찾아가지 못했어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군요.”

 샤나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면서 당신의 삶을 나눠줘서 고맙다고 여러 번 인사했다.


 “이제 심사를 하러 가볼까요?”

 샤나야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억울함도, 분노도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희주의 머릿속에 그가 통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고, 그와 동시에 영혼들의 심사 점수를 함부로 예측하지 말라는 미즈키의 호통이 함께 겹쳐졌다. 


 ‘띵동, 93점입니다. 입장하세요.’

 예상했던 결과였다. 조셉은 밝게 웃으며 서서히 댓플레이스 입구로 걸어갔다. 문이 닫히며 산란하던 빛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1825번 심사대 앞에는 깊은 생각에 빠진 채, 망부석처럼 굳어 버린 세 명의 문지기만이 한 동안 우두커니 남아 있었다.



-The image created by CHO JUYOUNG with 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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