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부자 113화
가장 감동적이었던 만화를 꼽으라한다면 단연코 슬램덩크이다.
가장 충격적인 반전의 감동 영화를 꼽는다면 식스센스가 될 것 같다.
가장 큰 재미의 감동을 주었던 예능 프로를 고른다면 무한도전-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편이었다.
가장 슬픈 감동을 주었던 드라마를 뽑는다면 1998년에 방영된 세상끝까지라는 드라마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위의 콘텐츠들을 보면서 독자로서, 관객으로서, 시청자로서 받았던 감동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딱 한 사람과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 한 사람은 독자로서 슬램덩크를 가장 감동없이 본 사람이고, 관객으로서 식스센스를 아무런 충격없이 가장 김빠지게 본 사람이며, 시청자로서 무한도전을 큰 재미없이, 세상끝까지를 아무런 슬픔없이 본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기발하고 재밌고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작품이 나온다 하더라도 모든 일반적인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그 감동을 받지 못하는 오직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독자로서 작품을 접하기 전에 그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슬램덩크의 다이나믹한 승부 이야기를, 식스센스의 충격적인 결말을, 무한도전의 깨알같은 재미를, 세상끝까지의 처절한 슬픔을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즉 창조자는 자신이 완성한 작품의 처음 접하는 감동의 느낌을 알지 못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아는데 말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창조자는 완성된 그 작품을 처음 선사하는 느낌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를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 느낌을 알 수가 없다.
독자가 작품을 통해서 얻는 느낌은 한 가지다. 재밌거나, 슬프거나, 무섭거나, 지루하거나, 감동적이거나...등 하나의 감정이다. 그러나 작가가 작품을 독자에게 선사할 때 받을 수 있는 느낌의 가지 수는 그 작품을 읽은 사람 수 만큼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읽은 독자가 느낀 감정을 통해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개별적이기에 같은 작품이라도 저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같은 느낌일지라도 정도의 차이는 모두 다르다. 열명이 재미를 느꼈어도 그 정도가 각기 다른 열가지의 재미이다. 만명이 그 작품을 봤다면 만명이 각기 다른 느낌을 가져간다. 이때 작가는 만가지의 감동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작가로서의 행복이 훨씬 더 큰 것 같지만, 독자는 비슷한 감정을 느낀 그 작품의 다른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작품의 독자들을 통해 느낀 기쁨을 공유할 대상이 없다. 작품의 작가는 자신 혼자이기 때문이다. 단지 다양한 종류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구보다도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심심할 새가 없다는 것이다.
https://www.instagram.com/time_rich_pnj/
네이버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