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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리치 Nov 04. 2018

'베풀면 다시 돌아온다'는 시간의 진짜 의미

시간부자 118화

주말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게 됐다. 식사 도중에 나는 자연스레 나의 고민거리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고 친구들은 경청해주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식당 문을 닫을 시간이 됐다. 소중한 주말 저녁 시간에 너무 내 얘기만 한 것 같아서 나는 밥 값을 계산하기 위해 재빨리 카운터로 향했다. 그러자 친구들도 같이 따라와 분담하자며 얘기했다. 그 상황에서 이전의 나였다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괜찮아, 내 얘기도 잘 들어줬는데 내가 사야지."


내가 이렇게 얘기했다면 아마도 친구들은 별로 한 것도 없다며 같이 분담하자고 다시 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이렇게 친구들에게 말했다.


"괜찮아, 내가 너무 사주고 싶어서 그래."


말하고 난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말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본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말은 친구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고 나의 베풂을 부담없이 매우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내가 왜 그런 표현을 하게 됐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알게 됐다.


그 말은 상대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 극찬의 표현이었으며 그것이 곧 나의 진심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뭐가 그렇게 고마운 것이었을까...



베풀면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얘기를 누누이 들어봤을 것이다. 들어도 너무 들어서 식상해진 얘기일 것이다. 필자 또한 믿지 않았다. 티비나 도덕 교과서에서만 들어봤을 뿐이었다. 그저 명언집의 목차에 써놓기 좋은 제목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목표가 생긴 이후로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베풀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무언가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을 따라해보는 것이 첫번째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서 일단 베풀어보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실행에 옮겼다.


첫번째로 했던 베풂은 출입문을 열고 나갈 때 뒷사람이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문이 닫히지 않게 잡아주는 것이었다. 사실 정말 간단한 행동이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겨보니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열번 문을 열면 열번 모두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은 성인 군자나 가능한 일일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을 잡아줬는데 아무 말없이 통과하는 뒷사람을 볼 때면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고마움을 표현하는 몇몇 사람들을 만날 때는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러나 어려운 일임에는 분명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적응이 됐을 무렵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두번째로 했던 베풂은 잊고 지내던 사람들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이었다. 역시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수년의 시간이 흘러 기억에서 잊혀질 듯한 사람에게 불현듯 연락을 취해 선물을 건넨다는 것은 상대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나만의 착각이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받고 생일축하의 선물까지 받은 사람들은 모두다 진심의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뒤에 이 말을 꼭 붙였다.


"감동이었어..."


그 말이 왠지 모르게 꽤 오랫동안 나의 기분을 좋게 했다. 그리고 알게됐다.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연락을 안한다는 것은 상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내가 먼저 두려워하는 나를 위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베풂이 반복되면 될 수록 상대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나에게도 기쁨이 된다는 걸 알았다. 그 맛(?)을 알게 되니 작은 순간일지라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많아지게 됐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세번째 베풂은 누군가의 결혼식 때 내가 받았던 축의금보다 더 많은 축의금을 줘보는 것이었다. 물론 상대가 그 액수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알게 된다면 조금은 감동을 더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상상을 하니 그게 그저 즐거웠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니 나의 결혼식 때 축의금을 주지 않았던 사람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줘 보고 싶은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였다. 상대에게 감동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나의 기분을 좋게 하리란 걸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베풂을 했을 당시에는 '베풀면 다시 돌아온다'는 말은 내가 상대에게 준 만큼 언젠가 상대도 나에게 그만큼 줄 것이라는 뜻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베풂이 지속되면서 상대가 감동을 받는 순간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준다는 걸 알았고, 그것은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 감동시킬 수 있을 까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집중하면 할 수록 상대가 더 큰 감동을 받게 될 수 있는 상황들이 많아졌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 또한 이전보다 더 큰 감동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베풀면 다시 돌아온다'에서 '돌아온다'의 의미는 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상대가 감동을 받게 되면서 나에게 고마워할 때 나에게 느껴지는 기쁨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진심의 감동을 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베풀기를 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를 향한 상대의 베풂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말은 내가 그동안 베풀어 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사람들로부터 베풂을 받는 것이 많아졌다는 걸 얘기하는 게 아니다.


베풂을 몸소 실행하고 배우게 되면서 상대의 베풂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동안 내가 상대로부터 받아오던 베풂을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아는만큼 보였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에 고민을 얘기하고 들어주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일상 중의 한 모습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극찬의 고마움을 표현하며 진심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친구의 베풂이 나의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베푸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몸소 겪어본 나로서는 감동이 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친구는 늘 해오던 일을 그대로 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 뿐이다.


누군가는 내가 길을 편히 갈 수 있도록 문을 잡아 주고 있고..

누군가는 나에게 먼저 환한 미소를 지어주고 있고..

누군가는 내가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도록 열림을 눌러 주고 있고..

누군가는 나의 생일을 챙겨주려 고민하고 있고..

누군가는 나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처럼 들어주려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어디선가 베풂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이미 어디선가 진심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이미 어디선가 선물을 받고 있다.


베푸는 사람의 입장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나에게 이미 베풀고 있는 상대의 진심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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