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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여 Nov 06. 2019

"우리는 한 팀"

남편이 더 많이 말할 줄이야

출산 후 한 달이 을 무렵 나는 남편에게 시부모님을 집에 초대하자고 제안했다. 시부모님은 아기가 태어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조리원에서 잠깐 아기를 보신 게 전부였다. 아기가 삼칠일을 넘길 때까지 외부 사람이 집에 드나들지 않는 게 좋다며, 하루빨리 첫 손주를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고 계시던 분들이다. 나는 남편에게 시부모님의 상경 날짜를 조율해 보자고 했다. 남편은 "생각해 볼게"라며 어쩐지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몇 번 얘기했지만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지 않는 것 같았다.


"시댁으로 갈까?"


지금 생각해 보면 50일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차로 3시간 넘게 걸리는 길을 가자 한 건 대책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때는 몸도 어느 정도 추스른 데다 아기도 외출을 조금씩 했던 터라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싫지 않은 기색이었지만, 내가 왜 시부모님이 오시는 보다 시댁에 가는 걸 선호하는지 궁금해했다.


"아무래도 집으로 오시는 게 더 불편하지."


시부모님이 오시면 집도 치워야 하고 음식도 차려야 한다. 물론 남편이 청소를  테고, 음식은 시키면 된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시부모님이 불편한 게 아니라 시부모님이 오실 때 머리를 써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게 불편한 거다. 반대로 시댁에 가면 맛있는 것도 먹고 편하게 있다가 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하기도 전에 남편의 얼굴이 굳어 버렸다. 남편은 "그냥 오시지 말라 할게"라며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서재방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효자의 등장에 나는 황당했다. 이럴 땐 꼭 O 씨 집 아들이 된다. 나는 남편이 진짜로 시부모님께 오시지 말라고 전화할까 싶어 재빨리 서재로 들어갔다. 대체 왜 그러냐는 내 물음에 남편은 "아니 진짜 네가 안 불편했으면 좋겠어"라고 답했다. 누가 들어도 나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본인 부모님 오는 게 불편하다고 말하는 아내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였다.


아기가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출처=unsplash)


나는 "당신이야말로 우리 부모님 불편해하잖아"라고 말했다. 시부모님께 거리낌 없이 영상 통화를 거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내 부모님을 매우 어려워한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불만이 없다. 물론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살갑게 구는 친구 남편들의 얘기를 들으면 부러운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남편에게 살가움을 강요하지 않는다. 남편이 원래 어른들과 함께 자리하는 걸 편해하는 성격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여보, 우리는 한 팀이야."


나는 남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이나 형님은 우연히 당신의 가족이 됐지만, 나는 당신이 선택한 유일한 가족이야. 만약 내가 당신의 가족으로 인해 불편해하면 당신이 그런 불편함을 막아줘야 하고, 반대로 당신이 내 가족 때문에 불편하면 내가 그런 불편함을 막아줘야지. 그게 선택한 가족에 대한 책임이지."


그리고는 "심지어 나는 당신 부모님을 불편해하지도 않잖아!"라고 덧붙였다. 남편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이내 "오오"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깨가 으쓱해진 나는 환한 얼굴로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는 남편을 뒤로하고 거실로 나왔다. 


남편은 그  내가 친정 문제로 불만을 얘기하려고 하면 "우리는 한 팀이야"라고 말한다. 나의 '거룩한 명언'을 입막음 용으로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 내 남편이 원래 이렇게 응용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나. 새삼 놀라고 있다.


시부모님은 아기 50일에 맞춰 우리 집에 오셨다. 몸 푼 지 얼마 안 된 며느리와 핏덩이 손자가 먼 길을 오겠다는 걸 반기실 분들이 아니었다. 시아버지는 아기를 안으시고는 "OO 어렸을 때는 이렇게 안아주지도 않았어"라며 크게 웃으셨다. 아기 볼에 스스럼없이 뽀뽀까지 하셨다. 남편은 손자에게 세상 다정한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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