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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여 Oct 29. 2019

아기의 사주

미신인 건 알지만

나는 개인적인 병력 때문에 임신 전부터 제왕절개가 예정돼 있었다. 혹시나 하는 응급 상황에 대비해 대학병원에서 아기를 낳기로 했다. 담당 교수는 임신하고 30주가 넘어서자 출산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자연분만 산모는 아기가 신호를 보낼 때까지 출산을 기다려야 한다. 회사 동기는 40주가 넘어서도 진통이 없어 매일 저녁 산책하면서 아기가 내려오길 바랐다. 나 같은 제왕절개 산모는 보통 38주에 수술이 잡힌다. 진통이 걸리지 않아야 안전하게 수술을 할 수 있어서다.


"언제 출산을 할지 정해서 오세요."


담당 교수는 O월 첫째 주 목요일과 둘째 주 화요일 또는 목요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대학병원 의사는 수술을 는 요일이 정해져 있다. 우리 부부 보고 아기의 생일을 정하라니. 설레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마치 신의 일을 대리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흥미롭게도 양가 어머니 모두 똑같이 반응하셨다.


"사주를 한 번 보자."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미신에 기대고 싶지 않다"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아니었다. 나는 사주를 맹신하지 않지만 해마다 토정비결을 보고 참고한다. 일이 풀리지 않으면 운세를 본다. 내가 이렇게 사주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친정 엄마 영향이 크다. 친정 엄마는 주역을 공부하시고 A대 평생 대학원에서 강의도 들으셨다. 삶이 고단했던 친정 엄마는 주역을 공부하면서 당신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엄마 덕에 공짜로 운세를 보고 있다.


친정 엄마는 당장 담당 교수가 준 날짜를 따져보더니 그 주 토요일에 수술을 하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대학병원은 응급 수술이 아닌 이상 토요일에는 수술을 하지 않는다. 친정 엄마는 토요일에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옮기기까지 권했다. 하지만 나는 난색을 표했다. 담당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지만, 남편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꼭 화요일 또는 목요일 중에 골라야 한다는 내 말에 친정 엄마는 머리를 싸매시더니 담당 교수가 제안한 날 바로 다음 주인 셋째 주 화요일이 가장 베스트라고 했다.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바로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이 남자는 이성적 사고로 똘똘 무장한 사람이다.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으면 동의를 하지 않는다. 사주는 그에게 미신이다. 나는 "우리 아기에게 가장 좋은 날짜를 골라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운명론에 사로잡히는 걸 원치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담당 교수가 준 날짜 가운데 어떤 기준으로 아기의 생일을 정할 것인가. 남편도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편은 일단 친정 엄마가 말한 날짜에 담당 교수가 수술이 가능한지 물어보자고 했다.


다음 진료 날. 담당 교수는 셋째 주 화요일에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을 많이 겪어봤다는 듯 산모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엄마의 뱃속에 오래 있으면 아기에게는 더 좋아요"라고 했다. 남편은 그제야 얼굴이 폈다. 그는 진료실을 나오면서 "아기에게 좋다니까 그날로 정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사주 때문에 결정한 게 아니라는 확인이었다.


우리는 아기의 생일을 결정한 부모다.(출처=pixabay)


아기를 만나는 날이 정해졌다는 사실에 설렌 시간도 잠시였다. 친정 엄마는 아기 생일 당일 가장 좋은 시간까지 알려주셨다. 사주는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말한다. 주역에서 생시는 노년운과 자녀운에 해당한다고 한다. 친정 엄마는 오후 3~5시, 신시가 제일 좋다고 했다. 머리가 아팠다. 몰랐으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이 시간에 아기를 낳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어떻게 말할지 자신이 없었다.  


담당 교수에게 기습적으로 질문을 한 건 그래서였다.


"교수님 혹시 3시 이후에 수술되세요?"


옆에 앉은 남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엄청 화가 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화를 억누르며 "잠깐만 왜 그런 질문을 해?"라고 말했다. 담당 교수는 또 이런 일을 많이 겪었다는 듯 "마지막 수술이 3시"라며 "당일 수술 상황과 건수에 따라 시간이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다"라고 했다. 남편은 "교수님이 되는 시간에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이런 식의 결정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투였다.


진료가 끝나고 남편은 왜 자신에게 상의를 안 했는지 따졌다. 나는 "상의하면 받아줄 것도 아니잖아"라고 받아쳤다. 그렇다. 남편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 비겁한 방법을 썼다. 하지만 좋은 날, 좋은 시간에 낳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나는 못나게 말했다.


"내가 10개월 동안 아기를 품고 배까지 갈라서 낳는데 이 정도 결정권도 못 줘?"


남편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나를 두고 병원을 떠났다. 나는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임신한 와이프를 두고 그냥 가느냐고 오열했다. 남편은 일단 화를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장모님이 좋다고 말씀하신 날짜와 시간에 아기가 태어난다고 쳐.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테지만, 아기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장모님이 자책하실까 봐 그게 걱정돼. 정말 네가 원하면 전문가한테 날을 받자."


나는 남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단순히 미신이 싫어서 화를 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사려 깊은 이유가 있을 줄은 짐작도 못했다. 부끄러웠다. 나는 "다음 진료 때 교수님이 되는 시간에 수술한다고 할게"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수백수천 쌍의 부부를 상대했을 담당 교수는 그러나 산모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남편은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나는 담당 교수가 차트에 '3시 이후'라고 쓰는 걸 봤다. 정말 수술 당일 3시가 지나 내 수술 준비가 시작됐고, 3시 반쯤 수술실에 들어갔다. 하반신에 마취를 시작하고 30분이 흘렀을까. 아기는 우렁찬 목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왔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벅찬 감동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내가 수술을 받는 동안 남편은 내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놨다. 사주는커녕 신도 믿지 않는 남자가 기도를 했다고 한다. 모금함에 헌금까지 하면서 아내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기를, 아기가 건강하게 나오기를 빌었다. 남편은 "착한 남편, 착한 아빠가 되겠다"며 "행복하게 살자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라고 약속했다. 2018년 O월 O일 오후 4시 10분 남편은 그렇게 아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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