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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Oct 29. 2020

'제1 미국은행'과  '제2 미국은행'의 역사

니콜라스 비들 6

'제1 미국은행'의 역사(1791~1811)


'제1 미국은행(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은 초대 재무부 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1755 or 1757 ~ 1804)에 의해 1791년 설립되었다.


해밀턴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국가의 신용을 안정화하고 연방정부의 금융 업무 처리를 개선하기 위해 국립 은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은행의 면허 기간은 20년(1791 ~ 1811)이었다.



제1 미국은행 건물   <출처 : 위키피디아>


설립 위치는 필라델피아였고, 영국의 잉글랜드 은행을 모델로 하였다. 자본금은 1000만 달러였다. 사실상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 격이었다.


의회를 통과한 설립 안에 대해, 국무장관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 1826)과 공화파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 은행 권력의 집중화가 건전한 통화 시스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북부의 이익을 위해 남부가 희생한다는 의미라고도 했다. 중앙은행의 설립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추가했다.



10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알렉산더 해밀턴  <출처 : 위키피디아>



해밀턴은 이 의견에 대해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아울러 워싱턴 대통령을 설득하여 최종 확정을 하였다.


지금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약칭 연준, Fed)'와 차이점은, 지분의 일부가 외국인 소유였고, 은행권(지폐) 공급에 대해 100퍼센트 유통이 보장되는 구조가 아니었다.


당시 기준으로 약 20퍼센트의 '제1 미국은행'권이 유통되었고, 나머지는 주법은행(State Bank, 각 주의 은행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은행)에서 발행한 은행권이 사용되었다.


현재는 '연방준비제도'에서 발행한 달러(USD)만이 100퍼센트 유통되고 있다.



앨버트 갤러틴   <출처 : 위키피디아>


'제1 미국은행'이 유지되는 기간 동안, 공화파의 견제가 심했다.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한 사람이 당시 재무부 장관인 앨버트 갤러틴(Abraham Alfonse Albert Gallatin, 1761~1849)이었다.


결국 1811년 매디슨 대통령(James Madison Jr., 1751 ~ 1836) 시대에 기간이 만료되었다. 상원의 공동 투표에서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 1739~1812) 부통령의 반대로 최종 확정된 것이다.


이후 은행의 소유권은 스티븐 지라드(Stephen Girard, 1750~1831)에게 매각되었다. 나중에 지라드 은행(Girard Bank)으로 통합됐다.


중앙은행의 부재로 매디슨 대통령은 '1812년 미국-영국(War of 1812) 전쟁' 때,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제1 미국은행 건물 도면   <출처 : 위키피디아>


현재 이 건물은 역사적 장소로 지정(1966년) 받았다. 1987년 5월에 ‘국립 역사 랜드마크(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추가 지정되었다.



제2 미국은행의 역사(1816~1836)


'제2 미국은행(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은 1816년 의회의 승인을 받아 설립되었다. 면허 기간은 동일한 20년이었다.


매디슨 대통령은 '1812년 미국-영국' 전쟁 중에 남발된 화폐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바로 중앙은행 설립이 추진되었고, 의회에서 승인되었다. 장소는 동일한 필라델피아였다.


 이것이 바로 '제2 미국은행(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이었다.


제2 미국은행 건물  <출처 : 위키피디아>


설립 시, 자본의 20퍼센트는 단일 최대 주주인 연방 정부였다. 나머지 80퍼센트는 4천여 명의 개인 투자자가 소유했다. 대부분 부유한 미국인이 소유했고 일부는 유럽인도 있었다.


주요 역할은 연방정부의 재정 업무를 통해 민간 은행 기관(주법은행)에서 발행한 공적 신용을 규제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건전하고 안정적인 국가 통화를 설정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주법은행(State Bank, 각 주의 은행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은행)의 은행권(지폐)을 관리 감독하고 자체적으로 전국 유통이 가능한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는 권리였다.



니콜라스 비들  <출처 : 위키피디아>


1대, 2대 은행장 시대에는 제대로 중앙은행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3대 은행장인 니콜라스 비들(Nicholas Biddle, 1786~1844) 시대에 비로소 안정적인 운영과 체계적인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은행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던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1767~1845) 대통령은 의회를 통과한 기간 연장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은행은 1836년 최종 기간 만료가 되었다.



20 달러 지폐의 주인공 앤드루 잭슨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이후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생기기 전까지 미국은 중앙은행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제2 미국은행'이 없어진 다음 해, 모든 연방 토지 지불을 금 또는 은으로 요구하는 행정 명령인 ‘정화유통령(Specie Circular)’이 시행됐다. 


이 영향으로 급격한 통화량의 감소가 진행됐고, ‘1837년 공황(Panic of 1837)’ 이 발생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자유은행시대와 '국립(연방)은행법', 그리고 '연방준비법'


이후 1837년부터 1862년 까지를 ‘자유은행시대’라 부르며, 주법은행이 활성화된 시대였다.


1863년 '국립(연방)은행법'이 시행되었고, 이는 1913년까지 유지되었다.


(‘1863년 '국립(연방)은행법'의 시행 내용' 은 기 작성된 내용을 참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863년 '국립(연방)은행법'의 시행



이후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대에 '연방준비법'이 시행되면서 지금의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연준, Fed)’ 가 창설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미국 중앙은행이다.



(‘연방준비법'에 관한 내용은 기 작성된 내용을 참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드로 윌슨과 '연방준비법'



연준(Fed)은 1951년에 미국의 재무부로부터 완전한 독립성을 인정받는 협정에 서명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출처 : 위키피디아>



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2012년부터 연준 이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제롬 파월(Jerome Powell, 1953~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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