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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May 25. 2020

1863년 '국립(연방)은행법'의 시행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33

남북전쟁 기간 중 1863년에 요한 법안이 의회에서 승인됐다. 일명 ‘국립은행법(The National Banking Act of 1863 〜 1864, 또는 '연방은행법', '국법은행법'이라고도 함)’이다.


 법은 링컨 대통령에 의해 남북전쟁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 은행 체제의 기반이 잡히는 '국립은행(National Bank, 연방은행이라고도 한다)'이 시행된 것이다.



연방통화감독청(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 OCC) 국기 <출처 : 위키피디아>


'국립은행법(The National Banking Act)'과 연방통화감독청(OCC) 설립


아울러 은행권 발행 등 이에 대한 감독을 담당할 연방통화감독청(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 OCC)도 신설되었다(이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지원 기관에서 규제 기관으로 전환하게 된다)


‘국립은행법’을 이해하기 전에, 미국 은행의 역사(History of banking in the United_States)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1781년부터 1836년 까지를 ‘북미 은행과 제1, 제2 미국은행(Bank of North America, First and 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 시대라 부르며, 독립 이후 해밀턴에 의해 설립된 중앙은행이 존재한 시대였다.



제1 미국 은행(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  <출처 : 위키피디아>


이후 잭슨 대통령에 의해 ‘제2 미국은행’ 기간이 종료되고 난 이후인 1837년부터 1862년 까지를 ‘자유은행 시대(Free Banking Era)’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사실상 ‘주법은행(state banks)’의 시대였다.



자유은행 시대(Free Banking Era)의 문제점


이러한 ‘자유은행 시대’는 근본적으로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른바 ‘들고양이 은행, 살쾡이 은행(wildcat banking)‘이라 불리는 은행들이 존재했다. 이 은행들은 설립한 장소가 사람들이 다니기 힘든 곳이나 외진 산간지역이었다. 은행권을 갖고 금이나 은으로 태환을 하러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시골 외곽 지역에 위치한 은행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은행의 가장 큰 수입원은 화폐(지폐) 발행이었다. 


화폐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담보와 태환에 필요한 금과 은을 소유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미국 전역에 다양하고 많은 양의 온갖 화폐가 유통되고 있었고, 당연히 액면가보다 낮게 할인되어 취급되고 있었다.


심지어 수천 종의 화폐에 추가적으로 이를 모방한 위조 화폐까지 더해졌다. 구별하는 안내서가 인기리에 판매될 정도였다. 


당시 은행의 평균 수명은 약 5년 내외였다. 은행의 약 50퍼센트 이상이 불안한 재무상태였고, 약 3분의 1은 금태환이 불가능하여 파산을 했다.


혼탁한 화폐를 정리할 필요성과 보다 더 엄격한 기준 마련이 필요해 1863년 ‘국립은행법’이 도입된 것이다. 


이 시기부터 연방준비제도가 창설된 1913년까지를 '국립은행 시대(National Banks, 1863~1913, 연방은행 시대)'라고 부른다.

 


살쾡이 은행(wildcat bank)에서 발행한 은행권  <출처 : 위키피디아>


국립은행 시대(National Banks, 연방은행 시대, 주법은행 시대)


이 법을 통해 기존 주법은행들을 일정한 기준에 적합한 국립은행으로 전환을 유도했다. 


참고로 주법은행은 주 정부가 인가한 은행이지만, 국립은행은 연방정부가 인가를 내준 은행이라는 뜻이다. 설립과 운영은 동일하게 민간이 주도했다.


국립은행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지켜야 하는 기준이 있었다. 


당시 상당히 큰 금액인 5만 달러를 자본금으로 소유하고 있어야 했고, 이중 3만 달러를 연방정부 채권으로 보유하여야 했다. 아울러 허가를 받아 발행하는 은행권은 반드시 자본금과 채권으로 전환된 준비금 이내여야 했다. 


이를 통해 국립은행에게 연방정부의 채권을 손쉽게 매각할 수 있었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에 비례하여 부여된 특권은 전국 단위로 유통이 가능한 은행권을 발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담보 여력이 부족한 주법은행들의 화폐는 할인되어 유통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믿을 수 있는 은행권이라는 인식은 그 자체가 강력한 신뢰도를 갖고 있었다.



제2 미국 은행(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 필라델피아) <출처 : 위키피디아>


연방정부는 많은 주법은행들이 국립은행으로 전환 신청할 것이라 믿었지만, 바로 실행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연방정부는 1865년 주법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지폐)의 액면가에 10%에 해당하는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드디어 눈치를 보고 있던 주법 은행들이 국립은행으로 줄지어 전환 신청을 하게 됐다.


1865년에는 1,500개의 국립은행이 생겨났고, 1870년에는 1,638개의 국립은행으로 늘어났다. 주법은행은 325개였다. 


결국 부실한 주법은행(살쾡이 은행 포함)과 수천 종의 화폐가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혼란스러웠던 은행권이 일순간에 정리 되었다.


연방정부가 발행한 그린백과 국립은행이 발행한 은행권만 유통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바탕으로 1879년에 금본위제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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