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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May 24. 2020

소득세와 그린백의 탄생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32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은 언제나 돈을 필요로 한다.


전투에 필요한 군수품(총, 화약, 보금품 등) 구입은 물론 병사의 급여까지 모두 경제력(자금)이 뒷받침되어야만 유지될 수 있다.


북부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에 필요한 돈은 계속 늘어만 가고, 이와 반대로 점점 줄어만 가는 금 준비금을 보면서 당시 재무장관 체이서(Salmon Portland Chase, 1808~1873)는 강력한 방식으로 업무를 추진했다.



1862년 9월 앤티텀(Antietam) 전투   <출처: 위키피디아>


소득세(income tax) 신설


첫 번째로 세금수입을 늘리기 위해 1861년 8월 최초로 소득세(income tax)를 신설, 도입했다. 이 법당시  중산층 가정의 평균 소득인 800달러 이상에는 3퍼센트의 세금을, 1만 달러 이상에는 5퍼센트의 세금을 부과했다.


다만 영구적 징수가 아닌, 1861년부터 1871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 세금이었다. 아울러 세금 대상

적용 품목을 늘렸고 세율 또한 상승시켜 일상생활 지출에서 세금의 비중이 증가했다.


그린백(Greenback) 발행


두 번째는 링컨 대통령(Abraham Lincoln, 1809~1865)의 의견을 받아들여 불태환 지폐인 ’ 그린백(Greenback)‘을 발행했다. 이 지폐는 뒷면이 녹색 잉크로 인쇄되어 ‘그린백(Greenback)’이라 불렸다.

 


5달러 그린백  <출처 : 위키피디아>


남북전쟁 이전에 연방정부가 발행한 것은 지폐가 아닌 금과 은화였다. 이는 귀금속 자체적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에, 지폐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은행권이라 불리는 지폐는 연방정부가 아닌, 일반 은행(주법은행 포함)에서 발행한 것이다. 


남북전쟁 이전까지 연방정부의 헌법에는 지폐 발행에 관한 규정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초기 그린백이 제안되었을 때 법을 위반한다는 위헌 논쟁이 제기되기도 했다.


링컨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전쟁의 발발을 예상하고 돈의 중요성에 대해 간파했다. 그래서 체이서를 재무장관에 기용하고 그에게 전권을 맡겼다.



앤티텀(Antietam)에서의 링컨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체이서 장관은 북부의 경제력으로 봐서, 전쟁은 오래가지 않고 필요한 비용이 관세수입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누구도 이 전쟁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갈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예상은 바로 깨졌고 관세수입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급히 뉴욕의 은행가들에게 전쟁자금을 융자받으려 했으나 이들은 24~36%의 고금리를 요구했다. 수용할 경우, 나라의 미래가 은행가들에게 넘어갈 판이었다.


링컨은 단번에 거절하고 대안을 모색, 연방정부가 직접 지폐를 찍기로 결심했다. 이 결과로 탄생한 것이 ’ 그린백‘이다.



Demand Notes 10달러 <출처 : 위키피디아>



그린백은 2가지 형태에 걸쳐 탄생했다. 


1861~62년에 발행된 Demand Notes와 1862~65년에 발행된 United States Notes의 형태다. 일반적 그린백은 이 ’United States Notes‘를 말한다.


그린백은 금의 태환이 금지된 기준으로 탄생했다(1861년 12월). 이것은 미국에서 금본위제가 중단되었음을 의미했다.


참고로 Demand Notes는 1861년 7월 의회에서 5,000만 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승인을 받았다. 'United States Notes‘를 포함한 그린백은 남북전쟁 기간 동안 도합 4억 5000만 달러 어치 발행했다.


당시 북부의 경제 기준으로 엄청나게 많은 돈이 시중에 풀렸다. 다행히도 약 80%의 물가 상승률은 연방정부의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린백의 홍수를 묘사한 그림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그린백의 단점인 금태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 지폐의 속성이 액면가의 가치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북군이 전쟁에 지게 될 경우, 말 그대로 종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의 상황에 따라 그 가치가 롤러코스터를 타게 다. 


전쟁이 한창 중인 1863년에는 금화 100달러 대비 152로 할인되어 유통되다가, 게티즈버그 전투 이후 131(금화 100달러 대비)로 상승했다. 1864년에는 258까지 떨어졌다가 1865년 4월 전쟁이 끝났을 때는 150으로 급반등 했다.


북군의 승리를 알리는 뉴욕타임스 <출처 : 위키피디아>


결국 이러한 두 가지 방식(소득세의 신설, 그린백의 발행)과 제이 쿡의 채권 판매를 통해 북부는 남부에 비해 원활한 전쟁 비용이 마련되었다. 결과적으로 남북전쟁의 승리와 함께 연방 통일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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