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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Jun 29. 2020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68

2004년 5월, 연준의장에 앨런 그린스펀이 연임됐다.


다섯 번째 연임으로 연준의 역사를 새로 썼다. 재임기간 동안 ‘대안정기’ 라는 타이틀이 붙을 만큼 안정적 운영을 했다. 이 기간 동안 특별한 경제 공황이 없었다.


자유 메달을 받는 그린스펀 <출처 : 위키피디아>


위기의 전조


다만 시장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겨둘 만큼 규제가 약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지속적인 자산 가격의 상승(부동산)은 버블의 징조를 나타낸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부분 무시되었다.


이전 1999년에 뉴욕 월스리트로부터 크게 환영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글래스 스티걸 법안'이 폐지된 것이다(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 일명 '그램-리치-블라일리법(Gramm-Leach-Bliley Act, 1999, 금융서비스현대화 법)' 이었다.


이로써 연방정부의 금융회사 견제 장치는 사실상 유명무실 해졌다.



'그램-리치-블라일리법'에 서명하는 클린턴 대통령 <출처 : 윌리엄 J. 클린턴 도서관>



2005년 11월 벤 버냉키(Ben Shalom Bernanke, 1953 ~ ) 연준 이사가 그린스펀의 뒤를 이어 제14대 연준 의장에 취임했다. 취임할 당시, 미국의 증권시장에는 유동성이 넘쳐 났다.


2가지 원인으로 추정되었다.


하나는 너무 낮은 저금리로 인해 유동자금이 투자처를 찾으러 몰렸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아시아 국가들의 저축률 증가로 갈 곳없는 투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저금리의 경우 부시 대통령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해 온 결과였다.  2003년 1월에 1%에 달할 정도였다. 대출금리도 덩달아 낮아지면서 돈을 빌리기가 쉬워졌다.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가격이 상승했다.  



연준 기준금리 변화 내역    <출처 : tradingeconomics.com>  



일반 대출자들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서프프라임 단계(subprime, 3가지 단계중 가장 낮은 단계)의 대출도 가능해졌다.


그린스펀은 급격히 올라가기만 하는 부동산 가격와 유동성을 조절하고자 했다. 일명 ‘그린스펀의 아기걸음마(Greenspan’s babystep)’라 하여 기준금리를 25bp(0.25%포인트)씩 상향시켰다.


사전에 금리의 완만한 상승을 고지함으로써 경제 정책에 대해 사전 대응을 준비토록 했다. 2004년부터 진행된 금리 인상은 총 17차례 진행됐다. 2006년에는 5.25%까지 상승했다. 이 지점에서 유지했다.


서브프라임(subprime) 모기지(Mortgage) 사태


금리가 오르자 부동산 가격의 성장세가 주춤했다.


문제는 금리의 인상으로 저신용자들의 연체율이 서서히 올라갔다. 장기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수요도 점점 감소했다.


연쇄효과로 큰 이익을 보았던 주택담보(모기지) 대출회사와 은행들이 일순간 당황했다. 모기지 대출의 이익보다는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backed securities, 주택담보대출 회사가 대출자의 주택 저당권을 담보로 하여 발행한 채권)’ 판매가 줄어들어 수수료 수입이 감소했다.


연체율이 올라가면서, 채권의 상환에도 위험 신호가 발생했다.



프레디 맥 로고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상품을 팔면서 시장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특히 ‘서브프라임(subprime) 모기지 대출’은 프레디 맥(Freddie Mac, 연방주택담보대출공사)과 페니 메이(Fannie Mae, 연방 모기지 협회)가 앞다투어 발행을 했다.


두 회사가 발행한 MBS는 규모가 약 2,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연관된 금융 기관까지 합칠 경우 약 1조 달러(약 1,200조)가 넘는 규모였다.


문제는 서브프라임 대출이 연체 위험성이 높은 상품임에도 신용평가 회사의 산출 등급이 높았다.  ‘AAA(Triple A, 최우량 등급)’를 부여하여 발행 규모를 더 키웠다. 도덕적 해이가 시장에 불을 붙였다.


증권사와 투자회사를 통해 팔려나갔고, 수수료 수입이 높았던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건수 1997 ~ 2007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주택가격의 거품이 내려 앉고 금리가 올라가면서 서브프라임(subprime) 모기지 연체율이 올라갔다. 대출금 회수가 불가능해 지면서 손실이 발생했다.


결국 모기지 증권 전체의 불신으로 거래가 감소했다. 연관된 금융회사의 부실이 발생했다.


무너지는 금융 회사들


2007년 2월 부터 금융회사에 영향을 끼쳤다.


이 해 4월까지 약 50 개가 넘는 모기지 회사가 파산을 선언했다. 가장 큰 곳은 '뉴센추리 파이낸셜(New Century Financial)'이었다.


이 회사는 1995년에 설립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행에서 'HSBC Finance'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컸다. 연관된 대형 금융사와 증권회사의 파산이 이어졌다.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뉴센추리 파이낸셜 본사   <출처 : 제이미 렉터 사진>


이 와중에 주목받는 금융 회사는 리먼브라더스(LehmanBrothers)였다. 공격적인 영업으로 이 시장의 큰 손이었다.  


점차 커지는 신용 경색은 일반 기업들의 경제 활동에 영향을 끼쳤다.


이때만 해도 연방정부는 공식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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