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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담는 사람 Oct 08. 2020

엄마이기도, 딸이기도 해요

요즘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돌보고 있다. 외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시지만 흐트러짐이 없으시고 늘 정정하셨다. 할머니 댁에 가면 방에 머리카락 한올도 떨어져 있지를 않았고, 화장실에는 물 한 방울 떨어져 있지 않았다. 늘 쓸고 닦으셨고, 사용한 그릇은 바로 씻을 만큼 깔끔하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치매라는 병이 올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외가에 사촌들이 많아, 이름을 조금 헷갈려ㅊ하시는 정도였다. 나한테 사촌 언니 이름을 부르기도 하셨고, 내 이름을 부르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못 알아보실 때도 있다. 혼자서는 신발을 제대로 신지 못해 신발을 신겨드리던 나에게 연신 미안해요, 미안해요 하셨던 할머니다.

매일 할머니 집으로 발걸음 하는 엄마에게는 때로는 손녀라고 말씀하시고, 때로는 딸이라고, 때로는 며느리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조금씩 기억이 뒤섞이고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장면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와 닮은 부분들을 많이 발견하고 있는데, 엄마 역시도 할머니를 보며 그런 점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엄마와, 엄마는 엄마의 엄마와 그런 부분들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엄마와 딸은 떨어져 있으면 애틋하고, 붙어있으면 싸우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관계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치매까지 앓고 계시니 엄마와 매일 투닥투닥 한다. 서로 닮은 점을 보며 더 날카로워지는 것도 같다. 엄마는 할머니의 밥을 차리고, 목욕을 시키고, 청소를 하고, 반찬을 만드는 일을 매일 반복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그날의 기분에 따라 별일 없이 넘어가는 하루가 있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빨래를 던지기도 하고 엄마에게 모진 말을 하기도 하신다. 그리고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나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놓는다.

엄마의 엄마와, 엄마와 나, 우리가 함께 시간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나이 든 엄마를 돌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의 엄마가 세월을 머금은 만큼, 엄마도 나이가 들었다. 나이 든 우리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돌본다.

그 어떤 효녀도 효자도,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처럼 돌볼 수는 없다는 말도 맞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마음은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엄마는 할머니를 더 다정하고 정성스럽게 돌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살갑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마음이 아프다. 외할머니가 걱정이 되지만 나는 사실 엄마가 더 걱정이 된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걱정하듯, 나도 나의 엄마를 걱정한다. 엄마가 요즘 들어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엄마가 편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엄마다. 우리는 모두 처음이다. 딸도 처음이고, 엄마도 처음이다. 그래서 서툴다. 지난밤에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딸을 걱정하며 엄마라는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우리네 엄마의 모습을 담은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엄마 하기 싫다며, 나도 우리 엄마 보고 싶다며 우는 당신의 목소리에서 누구보다도 엄마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책임감을 느꼈다.


우리는 평생,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또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며 살아간다. 나를 향한 당신의 책임감으로 나는 지금까지 당신의 날개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당신이 세월을 아주 많이 머금은 때에는 나도 자식 된 도리를 하기 위해 또 다른 책임감으로 당신을 돌보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책임감과 마음도, 나를 향한 당신의 것들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세상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나는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엄마처럼 할 자신이 없다. 당신의 사랑과 마음에 감사를 보낸다. 엄마임과 동시에 누군가의 딸인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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