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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담는 사람 Oct 26. 2020

조금 수다스러운 딸입니다


작년부터인가, 아빠랑 종종 집 앞 산책로를 따라 두어 시간 걸었다. 아빠는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좋아하는 아빠를 보면 나도 좋아서 몸이 조금 힘들어도 저녁 시간마다 산책을 하려고 시간을 냈다. 집에서 나는 막내이고, 딸로서 나름의 역할(?)이 있다. 애교라고는 전혀 없지만 수다스러운 막내딸 역할이다. 오죽했으면 가족끼리 차를 타고 어디를 갈 때도 내가 조용하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냐며 내가 마치 에피소드 자판기라도 된 듯, 나의 재미난 이야기를 기다리는 가족들이다. 그 말인즉슨 내가 조용하면 우리 집은 사운드를 채울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집 안에서 나름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에피소드 자판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열심히 집 안에서, 집 밖에서 이야기들을 모으고 있다. 


아빠랑 산책을 할 때면 나는 두 시간 내내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인지 웃기게도 산책을 다녀오면 다리가 아픈 게 아니라 목이 아프다.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아빠 앞에서 정말 열심히 떠든다. 그게 내가 아빠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이다. 효도를 해본 일이라고는 없는 것 같지만 그게 내 나름의 효도의 방식이다. 그러다 보면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고,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은 생각들을 나누게 되기도 한다. 모든 주제에 답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얘기를 하다 보면 적어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는 있으니까 좋은 것 같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아빠를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사실 ‘아빠’라는 것도 주체가 나인 것이니까, 나에게 아빠는 언제나 아빠였으니까- 하지만 나의 아빠의 모습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당신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아빠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한 사람으로서 당신을 바라볼 때면 충분한 이해가 따라오기도 했다. 아빠로서의 당신은 성실함으로 이날 이때까지 가족들을 책임져왔음이 분명한데, 한 사람으로서의 당신의 삶이 참 고달프고 애틋하게 여겨졌다. 무엇이 당신을 열심히 살게 했을까, 무엇이 당신을 아프게 했을까 생각했다. 나의 원철씨. 그 모든 것의 이유는 우리였겠지, 우리가 당신이 당신으로서의 삶보다 아빠로서의 삶을 살게 했다는 것도 안다. 난 그것을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당신에게 받은 것보다 더 큰 것들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어린 우리가 뛰다가 넘어질까 걱정하며 우리의 뒤를 늘 지켜주던 아빠, 이제는 당신의 뒷모습을 내가 바라본다. 조금 작아진 어깨, 조금 느려진 몸동작이 세월을 실감케 한다. 몸이 가볍고 체력이 좋던 우리 아빠도 이제는 많이 늙었다. 오늘은 산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아프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 아빠를 보며 마음이 그랬다. 우리 아빠,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싶다. 하긴 내가 벌써 서른이네요.

오늘도 두어 시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또 열심히 떠들었다.

당신이 아빠라는 이유로, 어떤 책임감이 이날 이때까지 나를 자라게 했듯 내가 당신께 할 수 있는 어떤 책임감은 수다스러운 딸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효도이자, 아빠가 기뻐하는 일이기에 나는 앞으로도 부지런히 이야기를 모으고 떠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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