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을 담는 사람 Sep 12. 2022

사랑이, 사랑을 낳았고

엄마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

우리 외할머니는 언제나 군더더기가 없으셨다. 무릎이 불편해도 할머니는 매일 방을 닦고 모든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화장실이든 부엌이든 물 한 방울 떨어져 있는 일이 없었다.

할머니는 손주인 우리 모두를 애틋하게 생각하셨다. 늘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며 칭찬하고, 아마도 한 명 한 명을 위해 기도하셨으리라. 외가에서 막내인 나를 정말 많이 예뻐해 주셨다. 우리 참한 연지, 이런 아가 어딨노. 하시며 팔은 늘 안으로 굽었다. 할머니의 사랑과 칭찬이 늘 넘쳤다.


언젠가 사춘기 시절, 아빠와 크게 다툰 날 할머니 집으로 간 적이 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긴 봉지에 담긴 종합 전병 과자를 사 가지고.

할머니 저 왔어요! 이거 할머니 좋아하시잖아요- 하고 찬장을 열면 똑같은 종합 전병 과자가 있었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종합 전병 과자는 아파트 아래 슈퍼마켓에 늘 같은 자리에서 손님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할머니와 함께 슈퍼에 갈 때도 그 자리에서, 혼자서 할머니를 생각하며 사갈 때도 같은 자리에서 과자를 샀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 집은 바람이 잘 들었다. 현관문을 열어두고 거실 창문을 열어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만들었다. 초여름 날이면 살랑살랑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잤다. 그리고 일어나서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반찬들과 밥을 먹었다. 할머니의 손길이 닿는 모든 살림들은 정갈했다. 음식의 맛도 양도 그랬다. 한 번도 과한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외출할 때마다 옷을 곱게 다려 입으셨다. 할머니 방에 걸린 옷들은 늘 단정하고 반듯했다. 할머니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왠지 모르게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할머니의 기억들이 점점 흐려져 갈 때 즈음 할머니는 내 이름을 자주 깜박하셨다. 다시 말씀해 드리면 할머니는 머쓱하게 웃으며 맞다 연지. 연지- 하셨다.

그리고 기억이 조금 남아있던 어느 때에는 당신 삶에 대해 얘기해주신 적이 있다. 할아버지를 만났던 이야기, 일찍 혼자가 되어 다섯 남매를 키웠던 이야기, 그리고 이귀주의 삶에 대해서. 그때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삶의 지난날을 기억하고 계셨다.


할머니가 이전 같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은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을 크게 문제로 여기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왜 살다보면 너무 기억할 일이 많아지니까, 하나씩 잊혀지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꽤 많은 날이 지나고부터 할머니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신발을 제대로 신지 못하는 할머니께 신발을 신겨드리던 날에, 할머니는 나에게 아이고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병환이 꽤나 깊어졌고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매일 보살피기 시작했다. 꼬박 삼 년이었다. 엄마는 매일 할머니를 보러 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타러 병원 몇 군데를 돌아다니고, 이모들과 장을 보거나 반찬을 만들어 할머니 집의 냉장고를 채웠다. 엄마의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아기가 되어갔다.

엄마는 가끔 집에 돌아와 울었다. 어느 날에는 속상해서 울고, 어떤 날에는 갑자기 화를 내는 엄마 때문에 울었고, 또 다른 날에는 엄마가 안쓰러워 울었다.


서서히 다가오는 마지막을 조금은 예감했지만, 괜찮은 이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를 떠나보낸 자식들은 많이 울었고 또 울었다. 당연했던 것을 한순간에 잃은 사람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나는 울 겨를이 없었다. 그 슬픔의 모양을 가늠할 수도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치고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벌써 그립다. 할머니가 쓰다듬어 주시던 손길,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다시는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이 삶을 이루고 있다고 여길 때가 많다. 삶의 처음부터 있었고 끝까지 있을 것이라 당연히 여겨지는 삶의 요소들로.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것은 뜻하지 않은 이별이나 결핍의 순간에서 깨닫게 되면서도, 살다 보면 또 잊게 된다. 나의 소중함을 아는 일이 늦지 않기를,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그럼에도 사실은 정말 이별을 배우고 싶지 않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잊고 산다. 마치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영원할 줄 아는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슬픔의 크기를 감히 가늠도 못할 일이지만, 우리는 잃고 나서야 그 슬픔의 크기를 마주한다. 

우리가 사는 동안 그런 모양의 슬픔이 많다는 것을 모른 척하고 살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슬픔을 미리 겁내지는 말고 그 대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많이 사랑하고, 표현하고, 마음껏 껴안으며 살아야지. 


할머니,  많이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이제 편히 쉬세요. 그곳에서 고운 옷도 입으시고, 아픈 무릎도 나아서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보러 꽃구경도 다니세요.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요.

어제는 날씨가 무척 좋더라고요. 할머니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으니 이제 여행 많이 하세요.

할머니를 만날 수 있어 정말 좋았어요. 사랑하는 나의 멋진 할머니! 많이 보고 싶어요.


  


이전 04화 엄마이기도, 딸이기도 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